이유경 기자 2024-05-09
서울대학교와 워싱턴대학교에서 임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하게 된 이후에야 산에 관심을 가졌고, 학자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숲에 대해 연구했다. 숲을 공부하다 보니 학자로서 가진 관심을 넘어 시민으로서 흥미와 애정이 생겨났다.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던 80년대부터 숲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소통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환경정의라는 단체가 생겼다. 1998년, 생명의 숲 공동운영위원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병행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의 회장, 60+기후행동 운영위원, 자연과공생연구소 이사장이다.
숲에 살지 않아도 인류의 생존은 숲에 달려 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태 구성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공간이다. 근본적으로 숲은 인간에게 삶의 공간이자 서식 공간이다. 이런 기준에서 인류의 삶은 숲에서 살던 때와 숲에서 살지 않을 때,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의 시대에서 인류의 생존이 숲에 달려 있음은 자명하지만, 숲에 살지 않는 지금도 인류의 생존은 숲에 달려 있다. 숲은 자원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숲은 임업인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재료나 목재 등의 물질 자원을 제공한다. 요즘에는 숲이 휴양이나 관광 서비스 같은 비물질 서비스도 제공한다. 실제로 삼척에서 큰 산불이 있었을 때 관광객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임업종사자나 산촌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은 숲을 통해 이로운 가치를 얻는다. 숲은 물을 저장하고, 공기를 맑게 한다. 바다 근처의 숲은 바람과 염분 피해를 줄인다. 숲이 없는 도시에서 숲의 자원이 더욱 중요하다. 녹지 공간이 없는 도심에서는 열섬 현상이 더욱 강해진다. 숲이 변하면 숲의 서비스도 변한다. 인류는 숲과 함께 변화하며 여러모로 숲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의 도시는 숲이 없는 실패작이며, 또는 실패의 과정에 들어가는 중이다
숲에서 이득만을 얻겠다는 관점은 위험하다. 숲이 숲의 상태로 유지될 수 있는 상태, 경제 물질의 지속적 생산이 가능한 정도의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을 생태적 건전성이라고도 하고 지속가능성이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숲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숲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산촌인들에게 일거리와 소득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생태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모두 고려한 개발을 이루어야 한다. 상대적이겠지만, 한국의 수도권 지역은 이런 균형 있는 개발에 모두 실패했다. 우리의 도시는 숲이 없는 실패작이며, 그린 벨트를 해제하며 더 큰 실패의 과정에 들어가는 중이다.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 요인이 나무 땔감의 대체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주민이 묘목을 생산하면 국가가 구매하고, 묘목 재배에 대한 비용도 국가가 부담했다는 점에서 국가와 개인이 함께 성공시킨 프로젝트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문제가 발생했다. 그때부터 국가는 나무를 심을 때가 아니라, 나무를 자르고 재조림할 때 돈을 지불했다. 이를 재조림 보조금이라고 한다. 이는 숲의 조성과 성장에 장애물이 되었다. 100년 동안 자랄 나무를 40년만에 자름으로써 가치가 떨어지는 나무를 생산하는가 하면, 땅의 비옥도와 생물다양성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은 이전 정권부터 더 강화되었다. 어린 나무의 탄소 포집률이 더 뛰어남으로, 나무를 빨리 베고 어린 묘목을 심는 것이 탄소중립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정책에는 함정이 있다. 어린 나무가 탄소를 더 많이 포집하지만, 이 탄소가 완전히 흡수되어 땅에 고정되기 전에 나무를 베기 때문이다. 탄소가 축적된 상태에서 나무를 베면 축적된 탄소는 대기 중으로 올라간다. 어린 나무를 심고 금방 베어내는 체계 속에서는 탄소 배출 사이클 순환 속도가 더 빨라질 뿐이다.
숲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광역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서울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30% 이하, 경기도에서는 절반 이하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건 안 될 일이다. 요즘은 수도권 인근의 숲을 훼손하여 골프장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개발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손해가 크다. 오히려 지금은 그린벨트 지역을 늘리는 것이 타당하다. 반대로 강원도나 경상북도와 같은 개발이 덜 된 지방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이 수도권보다 훨씬 크다. 숲을 보전하고 숲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광역적인 계획이 필요한 이유다. 예를 들어, 개발이 많이 된 지역에서는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에 돈을 지불하여 숲 자원이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겠다. 이런 정책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당장 가능한 노력도 분명 존재한다. 바로 곳곳에 식물을 심는 일이다. 인구 밀도가 높고 도시 경제가 활발한 한국에서는 식물을 심어 녹지를 만드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숲처럼 큰 면적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학교, 관공서, 집, 건물 옥상, 건물 외벽의 담쟁이, 주차장의 잔디와 같이 비가 잘 스며들게 하고 열섬 현상을 줄여 주며 공기를 맑게 하는 식물의 존재가 도시민의 삶에 얼마나 큰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지 상상해보길 바란다.
어릴 때부터 숲에 대한 긍정적 경험과 교육, 문화가 제공되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작은 공동체 단위에서 시작하는 문화이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녹지와 숲을 보존하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환경적인 관점도 정치적인 힘을 얻을 것이다. 주민들이 함께 보존한 숲은 공원의 역할부터 환경 교육의 장이라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모든 시민 사회에서 어릴 적부터 숲에 대한 긍정적 경험과 교육, 문화가 제공된다면 우리는 굳이 골치 아프게 지속가능성을 계산할 필요가 없다. 계속해서 지자체와 정부를 뛰어 넘는 시민의 주체적 참여를 꿈꾼다. 이런 꿈과 함께 모두가 숲을 사랑하게 되는 그날까지 실천하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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