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윤효원의 지구와 정치ㅣ우크라이나 해법은 영세중립국

 

우크라이나 전쟁 영세중립국 해법,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냉전 이후 서방의 확장주의에서 비롯된 비극이라고 분석하며, 유엔 주도의 영구중립국 체제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2025-2-27 윤효원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제프리 삭스, "데이터는 정치적 편견보다 진실에 가깝다"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는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다. 1980년대 볼리비아·폴란드의 초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킨 ‘쇼크 요법’의 설계자에서, 1990년대 초반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들의 시장경제 전환을 위한 자문을 거쳐, 2000년대 UN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의 기반을 만든 ‘글로벌 개발의 구루’로, 그리고 지금은 ‘전쟁의 외교적 해결을 호소하는 현실주의자’로 변모해 왔다.

지금은 컬럼비아대학교 지구연구소 소장이자 UN 고문으로 활동하며 삭스는 늘 “데이터는 정치적 편견보다 진실에 가깝다”는 신념으로 현안을 분석해 왔다. 그의 눈에 비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푸틴의 광기’나 ‘우크라이나의 자유 수호’ 서사가 아니다. 이 전쟁은 “냉전 이후 서방의 확장주의가 낳은 비극적 귀결”이며, “외교적 대화 대신 군사적 승리를 추구하는 어리석음”이 재앙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2014년 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제5차 '가이다르 포럼(Gaidar Forum)에서 참석한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가이다르 포럼은 매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경제 분야 회의로 소련의 경제학자 예고르 가이다르를 기념해 이름이 붙여졌다.  사진_위키커먼즈, Новости - Правительство России
2014년 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제5차 '가이다르 포럼(Gaidar Forum)에서 참석한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가이다르 포럼은 매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경제 분야 회의로 소련의 경제학자 예고르 가이다르를 기념해 이름이 붙여졌다. 사진_위키커먼즈, Новости - Правительство России


냉전의 유령이 부른 재앙, NATO 확장


1991년 소련이 해체되던 날, 서방은 러시아에 “NATO가 동쪽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겠다”는 암묵적 약속을 했다. 당시 소련 외무장관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는 “미국이 독일 통일 조건으로 NATO 비확장을 약속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종이 조각으로 남았다. 1999년 폴란드·헝가리·체코의 NATO 가입을 시작으로 2004년 발트 3국까지 확장되자, 러시아는 서방의 신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삭스는 “러시아의 반발은 단순한 패권 욕심이 아니라, 생존적 안보 위협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라고 말한다.

2008년 4월, NATO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미래 가입 가능성”을 공식 선언했다. 이는 푸틴 정권에 경종을 울렸다. 당시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면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기지(흑해 함대 본부)를 잃는다”며 격노했다.


러시아의 ‘레드라인’,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삭스는 “2008년 4월 NATO 선언은 러시아의 적대감에 공식적으로 초대장을 보낸 것”이라며 “NATO 확장은 유럽의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산복합체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러시아는 2008년 이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NATO 가입을 ‘레드라인(금지선)’으로 규정하며, 군사적 개입을 포함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권이 유럽연합(EU) 가입 협정 서명을 거부하자 촉발된 마이단 시위는 서방의 지원 아래 친EU 정부를 탄생시켰다. 삭스는 이를 “서방 주도의 정권 교체”로 규정한다.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미명 아래, 우크라이나 내 친러·친서방 세력의 균형을 무시한 선택이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어권 지역의 반발을 초래했다. 이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이 이어졌다.


2021년 12월 미국의 협상 거부와 이듬해 전쟁의 발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021년 12월, 러시아는 NATO의 우크라이나 가입 철회와 동유럽 군사 시설 축소를 요구하는 ‘안보 협정 초안’을 미국과 NATO에 전달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협상 불가”로 일축했다.

삭스는 “이 협상 거부가 푸틴에게 침략의 명분을 제공했다”라고 분석한다. “러시아의 요구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최소한 협상 테이블에 앉아 검토해야 했다. 외교의 첫 단계는 상대방의 두려움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라고 일갈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특별 군사 작전’이라는 미명 하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에 대응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F-16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공급하며 “승리”를 외치는 것에 대해 삭스는 냉소했다. “러시아는 핵 보유국이다. NATO군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승리는 불가능하다. 무기 지원은 고통만 연장시킬 뿐이다.” 삭스는 2022년 3월 이스탄불에서 이뤄진 휴전 합의가 서방의 압력으로 무산된 사례를 들어, “전쟁 초기 기회를 놓쳤다”라고 아쉬워한다.


진실을 가리는 서방의 정보 전쟁


2022년 9월 북해의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 가스관 폭파 사건은 삭스가 서방 언론의 편향성을 비판하는 대표적 사례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자작극이라 주장하지만, 스웨덴·독일의 조사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의 관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이 서방의 정보 전쟁을 드러낸다”며 “진실보다 정치적 편의가 우선되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삭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민간인 피해를 들어 외교적 해결의 긴급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부차 사건에서 러시아군의 학살은 명백한 전쟁 범죄이지만, 아조프스탈 포위 당시 우크라이나군의 민간인 인질 활용 역시 조사돼야 한다”라고 말한다. 양측의 비극을 공정하게 보도해야 진정한 평화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해법은 ‘영구중립국’ 체제


삭스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모델의 ‘영구중립국 체제’를 우크라이나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포기와 러시아의 추가 영토 확장 중단을 동시에 약속해야 한다. 유엔 주도로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위를 협의하고, 안보 보장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그는 “서방과 러시아 간의 불신이 너무 깊어 유엔이나 미국 주도의 협상은 불가능하다”라고 진단한다. 대신 비서방 국가들의 중재를 제안한다. “중국이 2023년 2월 제안한 12개항 평화 계획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인도와 브라질은 남반구(Global South)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중립적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다.”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중국은 (1)모든 국가의 주권 존중 (2)냉전적 사고방식의 폐기 (3)적대 행위 중단 (4)평화협상 재개 (5)민간인 보호 및 포로 교환 (6)핵무기 사용 금지 (7)원자력발전소 안전 유지 (8)곡물수출협정 유지 (9)러시아에 대한 일방적 제재 반대 (10)글로벌 공급망 안정 (11)전후 재건 지원 (12)군사동맹 강화 금지 및 군사개입 자제를 촉구했다.


평화는 완벽하지 않지만 전쟁보다 낫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1세기 힘의 정치가 초래한 가장 암울한 사례다. 제프리 삭스는 이 전쟁이 NATO의 무분별한 확장, 서방의 외교적 무능력, 군산복합체의 이익 추구가 만들어 낸 인재(人災)라고 단언한다.

그의 주장은 이상주의가 아닌, 냉정한 현실주의에서 출발한다. “푸틴을 악마화하며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도, 서방도 이 전쟁에서 ‘정의’를 완전히 실현할 수 없다.” 협상만이 유일한 출구인 것이다.

삭스의 경제학자적 시선은 전후 재건 방안에서 빛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고, 서방은 대러 제재를 해제하는 거래가 필요하다. 유럽은 에너지 협력을 재개함으로써 평화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만들 수 있다.”

삭스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우리는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군사적 해결의 실패를 겪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평화는 완벽하지 않겠지만, 전쟁보다 낫다.” 트럼프 정권의 귀환을 맞아 그의 목소리가 외교적 해결의 물꼬를 트는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인가.



  • 제프리 삭스 (Jeffrey David Sachs)

1954년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29세인 1983년에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다. 하버드 국제개발연구소장(Harvard Institute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HIID)으로서 개도국 거시정책 및 경제개발이론에 많은 연구를 수행했으며, IMF, 세계은행, UNDP, OECD 등 국제기구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뿐만 아니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폴란드 러시아 등의 경제고문을 역임했다. 지난 86~90년 볼리비아의 대통령 자문역을 지낼 당시 인플레이션을 연 4만%에서 10%대로 끌어내렸고, 1980년대에 처음으로 부채 감축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폴란드와 러시아, 슬로베니아, 몽골 등에서 사회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자문을 하기도 했다. 2002년 7월 뉴욕의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특별 자문관으로 선임되어 유엔의 밀레니엄 개발 계획 프로젝트에서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 마련을 연구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국제통화기금)와 미국 정부가 한국에 적용했던 고금리 처방이 한국 기업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한 비판을 가하면서 한국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국내에 출간된 저서로는 『빈곤의 종말』(2006), 『커먼 웰스: 붐비는 지구를 위한 경제학』(2009), 『문명의 대가』(2012) 등이 있다.( 알라딘 저자 소개글)


 
 

Comments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이 기사를 읽은 회원

​로그인한 유저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로그인 후에 이용 가능합니다.

이 기사를 읽은 회원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