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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지구와 정치ㅣ현대판 제사장 계급의 출현

 

현대 사회에서 전문직 관리자 계급(PMC)이 고대 제사장 계급과 같이 사회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들은 겉으로는 진보적인 모습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힘을 약화시킨다.


윤효원 2025-2-14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전문직 관리자 계급(PMC)의 역할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은 늘 존재해 왔다. 고대에는 제사장 계급이 신과의 매개자 역할을 하며 권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신성한 지식을 독점하고, 일반 민중을 ‘무지한 자’로 규정하면서 통제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역할은 신과의 교감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 권력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이 제사장 계급의 역할을 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전문직 관리자 계급’(Professional Managerial Class, PMC)이다. PMC는 ‘진보’와 ‘윤리’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제사장처럼 지식과 도덕성을 독점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캐서린 리우(Catherine Liu)의 저서 『덕을 독점하는 사람들: 전문직 관리자 계급에 대한 비판(Virtue Hoarders: The Case Against the Professional Managerial Class)』은 이러한 현대판 제사장 계급의 위선을 폭로한다. 겉으로는 사회정의와 평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 계급의 연대를 무력화하고 기존의 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PMC의 본질을 비판하는 것이다.

미국의 문화이론가이자 학자인 캐서린 리우는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UC Irvine) 영화 및 미디어학, 비교문학, 영어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는 ‘전문직 관리자 계급’(PMC, Professional Managerial Class)과 문화 권력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현대판 제사장 계급인 '전문직 관리자 계급'을 비판한 책, Virtue Hoarders를 쓴, 캘리포니아대학교 캐서린 리우. 사진_UCI Irvine 대학 사이트에서(Virtue hoarders | UCI School of Humanities)
현대판 제사장 계급인 '전문직 관리자 계급'을 비판한 책, Virtue Hoarders를 쓴, 캘리포니아대학교 캐서린 리우. 사진_UCI Irvine 대학 사이트에서(Virtue hoarders | UCI School of Humanities)

PMC는 어떻게 현대의 제사장 계급이 되었는가


고대의 제사장들은 신과의 교감을 독점하며 사회적 권위를 유지했다. 일반 민중이 직접 신과 접촉할 필요 없이, 제사장이 ‘올바른 방식’을 알려 주고 의식을 수행하는 것이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PMC는 이 ‘올바른 방식’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올바른 사고방식, 올바른 언어, 올바른 윤리 기준을 설정하고, 노동계급이 여기에 순응하도록 만든다.

PMC는 자신들의 도덕적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윤리적 독점 구조를 만든다. 이들은 환경운동, 페미니즘, 반인종차별, 세대 갈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옳은 가치’를 주장한다. 하지만 그 ‘가치’는 대개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문제를 외면한 채, PMC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설정된다.

PMC는 노동계급을 계몽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과거 제사장 계급이 민중을 ‘무지한 자’로 보고, 자신들이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PMC는 노동계급을 ‘반지성적’, ‘뒤처진’ 존재로 묘사하면서 계급적 연대를 무너뜨린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며 투쟁하면 PMC는 그것을 ‘과격하다’거나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폄하한다. 대신 ‘이성적 토론’과 ‘합리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노동운동의 단체행동을 무력화한다.


PMC는 '정치적 올바름'을 활용한다


PMC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제사장의 의식처럼 활용한다. 과거 제사장이 신의 뜻을 독점적으로 해석했듯이, PMC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며 ‘옳은 말과 행동’을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는 노동자들은 ‘보수우익’, ‘무식한 사람’, ‘위험한 존재’로 낙인 찍힌다. PMC가 주도하는 대학과 언론과 사회단체에서는 이런 담론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결국, PMC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윤리와 지식을 독점하는 제사장 계급으로 기능하며, 노동자 계급의 사회정치적 힘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PMC는 ‘좌파적’ 언어를 쓰지만, 실제로는 ‘우익적’이다


PMC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겉으로는 좌파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노동계급 운동을 억누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첫째, 계급투쟁을 도덕적 문제로 변질시킨다. PMC는 빈부격차와 착취 문제를 ‘윤리적 기업’의 부재로 설명하며, 노동자 계급의 조직적 투쟁보다는 기업문화를 바꾸거나 CEO의 도덕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노동자들이 연대와 투쟁을 통해 시스템을 바꾸려 하면, PMC는 ‘착한 기업’의 사례를 들며 ‘좋은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둘째, 노동조합과 계급투쟁을 폄하한다.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노동권 강화를 요구하면, PMC는 그것을 ‘비이성적’이거나 ‘낡은 방식’이라고 비난한다. 그 대신 ‘공정한 경쟁’, ‘능력주의’, 그리고 ‘기회의 평등’과 ‘공정’을 강조하며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행동보다는 개인의 각성과 노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퍼뜨린다.

셋째, ‘착한 소비’, ‘윤리적 경영’으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PMC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더 윤리적인 소비’, ‘더 공정한 기업 운영’, ‘소수자 친화적 문화’과 같은 대안을 내놓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한다. 결국 이는 노동계급이 연대와 투쟁 대신, PMC가 제시한 ‘진보적 시민’이나 ‘착한 소비자’가 되는 길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처럼 PMC는 마치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노동자 계급의 조직적인 저항을 억누르고 자본주의 질서를 보호하는 현대판 우파의 역할을 수행하는 계급이다.


진보적 가치라는 ‘정치적 올바름’을 너머


과거의 제사장 계급이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신성한 질서’를 설파했다면, 오늘날의 PMC는 ‘정치적 올바름’(PC)에 기반한 ‘진보적 가치’를 통해 계급적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이 PMC가 제시하는 ‘진보 정치’에 계속 종속되는 한, 실질적인 사회 변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PMC의 도덕적 독점과 지적 지배를 경계하고, 계급 기반의 경제적 요구를 중심으로 정치적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조합 강화, 부유세 확대, 공공서비스 확충과 같은 경제적 요구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PMC가 창조하여 주도하는 ‘올바른 가치’의 ‘진보정치’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로서 조직되고 행동해야 한다. PMC가 만들어낸 ‘진보의 탈’을 벗겨내고, 노동자 계급이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 설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캐서린 리우(Catherine Liu),  『덕을 독점하는 사람들: 전문직 관리자 계급에 대한 비판(Virtue Hoarders: The Case Against the Professional Managerial Clas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20)
캐서린 리우(Catherine Liu), 『덕을 독점하는 사람들: 전문직 관리자 계급에 대한 비판(Virtue Hoarders: The Case Against the Professional Managerial Clas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20)

캐서린 리우는 지식인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갈등에 주목하며, PMC가 진보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노동계급의 연대를 약화시키는 방식을 연구해 왔다. 그녀는 PMC가 도덕적 우월성을 독점하며 사회 개혁의 주체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체제 유지를 돕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덕을 독점하는 사람들: 전문직 관리자 계급에 대한 비판』은 그녀의 가장 널리 알려진 저서로, PMC의 위선을 분석하며 이들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힘을 약화시키는 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다.

이 책에서 리우는 PMC가 진보적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경제적 재분배와 노동운동을 저해하는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PMC가 ‘도덕적 권위’를 내세워 실제로는 체제 변화를 막는 우파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계급 기반 정치로의 회귀를 강조하며, PMC가 주도하는 도덕적 정치보다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권리를 중심으로 한 투쟁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노동계급 중심의 진짜 좌파 운동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각이 절실하다.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PMC가 지배하는 대학, 미디어, 사회단체가 ‘진보적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노동자들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PMC의 ‘가짜 진보’가 노동자 계급을 무력화하고, 노동운동의 힘을 빼앗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진정한 진보는 PMC가 제안하는 ‘윤리적’ 개혁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힘을 키우는 정치적·경제적 변화에서 시작된다. 현재와 같은 격변의 시기일수록 PMC가 만들어낸 도덕적 위선의 틀에서 벗어나, 노동자 중심의 계급 정치로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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