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기후협약을 활용해 북한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고 한반도 안보를 도모할 필요 있어
2024-11-08 황희정 기자
이경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학과에서 학사, 퀸 메리 런던 대학교에서 '지구화와 개발'이라는 전공으로 석사,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9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객원연구원, 2020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WWF(세계자연기금) 기후변화대응팀 과장으로 있었다. 2021년 6월부터 지금까지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 책임연구원직을 맡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개성공업지구 정·배수장을 매개로 한 남북한 물 협력 연구」(2019), 「한반도 평화공존과 개발협력: 포스트 코로나 남북관계와 그린뉴딜」(2020), 「중장기 한반도 미래 시나리오 예측 연구」(2024),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접경지역협력 종합연구: 재해재난관리시스템과 남북협력 방안(2/3년차)」(2023), 「한국의 NDC 이행을 위한 파리협정 제6.2조에 기반한 남북협력 연구」(2024) 등이 있다.
개발 협력의 관점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다
한국외국대학교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동독과 서독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언어를 전공하다 보니 국제기구에서 인턴할 기회가 많았다.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인턴하면서 개발 협력의 관점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런던에서 석사를 했는데 지리학의 큰 분파에서 세부 전공인 '지구화와 개발(Globalization and Development')를 공부했다. 영국이 역사적으로 대영제국이었던 경험이 있다 보니 지리학이 굉장히 발전했다. 이때 기후변화나 환경 이슈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수업을 들을 때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하면 교수님들이 다들 새마을운동을 얘기하시고, 한국은 '디벨로핑 컨트리(developing country)'에서 '디벨롭디드 컨트리(developed country)'로 전환된 너무 희귀한 사례인데 그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외국에서 봤을 때 남과 북을 잘 구분을 못해 여행할 수 있는 곳인지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경험들을 쌓고 한국에 돌아와서 '개발 협력'을 더 깊게 공부할지, '지역학'을 더 깊게 공부할지 고민했다. 북한을 빼놓고 남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얘기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한국에서 '북한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기후 환경의 관점으로 한반도를 바라보다
기후, 환경 측면에서 한반도를 바라보게 된 중요한 계기는 박사 학위를 따고 나서 WWF 기후변화대응팀에서 일한 것이다. 그때 기후변화를 좀 더 실무적으로 접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이 정말 중요하며 한반도 수준에서 깊게 살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게 됐다. 이 점은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서는 1년에 한 권씩, 소속 박사들이 쓰는 중점 연구라는 책자가 있다. 본인이 1년 동안 중점으로 삼고 싶은 연구의 내용이 들어가는데, '신 기후 체제하에서 한반도의 기후변화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방향성'을 주로 연구한다. 기후변화 대응을 북한이 어떻게 하는지, 그 현황을 살피는 건 분석적인 부분이고, 앞으로의 방향성이나 전략을 연구하는 건 좀 더 연구자의 생각이 들어가야 하니, 둘을 함께 살피는 게 재미있다. 북한은 기후변화로 발생한 재난, 재해로 인적, 물적 유출 피해가 매우 크다.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의제를 앞세워 정상 국가로서의 면모를 부각한다. 이런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지원을 요청한다. 북한의 이런 사정을 알리고 싶다.
북의 심각한 '물 문제'와 기후변화 대응의 어려움을 공론화하다
의외로 사람들은 북한의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에는 공장도 별로 없는 시골과 같으니 물이 매우 깨끗하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북한은 물 문제가 심각하다. 박사 논문으로 북한의 물 문제를 썼다. 물, 식수 문제는 생존에 치명적이고, 기후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북한 어린이들은 물이 없어서 교육을 받을 권리,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할 권리, 살아갈 권리를 위협받고 있다. 굉장히 비극적이다. 북한도 다양한 측면에서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이행하기 위해 국제기구에서 요청하는 자료들을 제공한다. 이렇게 제공된 자료를 분석하면, 상하수도로 제공되는 물의 비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식수로 인해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의 수를 보면 심각한 상황이다. 1950~1960년대에 설치됐던 상수도를 여전히 쓰다 보니 물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유실 양도 많고 오염도 크다. 질과 양 모두가 문제다. 기후변화도 그렇고 물도 그렇고 여러 측면에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싶다. 이제는 과거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그걸 위해 파리협정을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 '물 문제'를 풀기 어려워
북한의 물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은 노후화 된 시설을 다 교체하는 것이다. 엄청난 재정적 지원이 들어가야 한다. 재정적 지원이 크게 들어가려면 국제사회의 합의가 조성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2016년부터 굉장히 강력한 제재가 들어가 있다. 북한과 남한과의 관계, 국제적 관계를 봤을 때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대규모 재정적 지원은 월드뱅크나 국제금융기구가 나서야 하는데, 가입 요건이 까다롭다. 사실은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이 어렵고 대규모 차관도 어렵다. NGO에서는 우물 파기, 정화수도 시설 처리와 같은 소규모 지역 프로젝트 정도를 해 왔다. 북한도 NDC(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했고, 무엇을 하는지 국제사회에서 발표한다.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오폐수 처리' 문제다. 식수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 외부의 지원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재정적, 기술적 역량이 안 된다. 북한도 그걸 알고 있기에 지원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을 받기 위한 전제적 조건이 '관계 개선'이다.
북이 기후위기에 진심인 이유는 실제로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
북은 국제사회에 기후변화에 관련한 의지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이 정말 기후변화에 진심이냐고 묻는다면 진심이기도 하고, 전략적 의도도 있다고 답한다. 피해가 큰 것도 맞다. 피해에 대처하지 못하면 북이 주장하는 경제 발전,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인적, 물적 피해가 너무 크다. 두번째로, 정말로 기후변화 의제를 통해 정상 국가로서의 외교적으로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국제사회에 '지원 시그널'을 계속 보내는 것이다. 피해가 실질적으로 너무 크고, 김정은 정권 이후로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거버넌스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산림 황폐화의 정도가 여전히 심각하지만, 조금은 개선되고 있다.
북은 기후 변화 취약국, 상황이 안 좋아도 지속적으로 공론화되어야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의제이고 우리 미래의 삶과 직결된다. 한반도는 붙어 있다. 북한이 겪고 있는 기후위기에서 절대로 남한이 자유로울 수 없다. 북한은 기후변화 취약국으로 계속 평가받고 있다. 그 말은 북한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고 미리 선제적으로 준비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장 큰 피해는 남한이다. 북한의 물 관리는 북한과 접견하는 남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북한에서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피해가 홍수다. 먹을 게 없고 에너지가 없으니 나무를 다 베서 홍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이때 북한이 황강댐을 열면 물이 우리 접근지로 내려온다. 1시간에서 1시간 반밖에 안 걸린다. 무단 방류를 하면 우리는 모른다. 2009년 황강댐 무단 방류로 우리 국민 6명이 사망했다. 이게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과 남한은 한반도 안에서 지리적으로 접해 있다. 북한의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은 결국 우리 한반도 안보의 취약성과 굉장히 밀접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속적으로 공론화되고, 논의되고,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지 연구해야 한다.
한반도 안보의 불안, 파리기후협약을 활용하자
'잠재적인 기후변화'가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인 무력 갈등'의 가능성은 커진다고 본다. 기후위기로 인한 한반도 안보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파리협정을 활용해야 한다. 두 국가가 서로 합의했을 때 한 국가가 마음이 변하면 지속하기 힘들다. 합의의 과정도 쉽지 않다. 파리협정에는 공동의 규범이 있고, 북한도 UNFCCC 당사국이기 때문에 파리협약과 같은 제도하에서 함께 행동하는 게 유효할 듯하다. 파리협정을 활용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계속 얘기하고 있다. 파리협정에 의하면 모든 국가들은 NDC를 수립하고 달성해야 한다. 북한도 똑같이 16%라는 목표를 말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지원해 주면 50%까지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 40%인데 그중에서 우리가 국외 감축분으로 11.5%를 말했다. 지속가능한 협력의 핵심은 공유할 수 있는 이익이다. 이익이 실질적이라면 협력이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파리협정의 틀을 활용해서 북한도 남한도 NDC를 달성하게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파리협정 제6조에서는 해당 국가들이 자연스럽게 협력하면서 NDC를 달성할 국제 탄소시장의 요건을 제공한다. 한국은 10위 안에 드는 탄소 배출 대국이고 NDC 목표 달성이 중요하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적으로는 불가능하니 국외 감축분을 늘려 다른 나라에서 가져오겠다는 게 전략이다. 북한은 그들도 NDC를 달성해야 하지만 사실 이걸 통해 거래할 수 있다. 돈이 된다는 말이다. 이게 남북한이 둘 다 공유할 수 있는 큰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이익을 나누려면 파리협정의 조건에 부합해야 하고 그 틀에 맞게 해야 한다.
남북문제 해결, 북에 대한 다학제적 연구가 절실
앞으로도 계속 한반도의 기후변화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싶다. 북한학의 가장 큰 한계는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북한에서 낸 자료와 국제기구에서 낸 자료, 남한에서 넘어온 자료, 이 세 가지를 교차로 보고 그 간격을 확인하고, 왜 간격이 생기는지를 고민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북한에서 하는 얘기를 열심히 듣는 거다. 『노동신문』, 북한에서 내는 자료집 등을 보면서 북한의 정책을 이해하는 게 기본적인 일이다. 북한학은 다학제적 접근이 매우 필요하다. 북한과의 협력을 위해 파리협정을 접목시키고자 할 때, 이게 가능한지 국제법 전공한 분들에게 물어보는 게 필요하고, 국립산림과학관 같은 전문 수행기관에서 일하는분들을 통해 북한의 실태를 파악하고 현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학자들도 되게 필요하다. 북한학은 정말 다양한 분들이 다같이 연구해야 하는 필요성이 큰 학문이다. 지금 내가 속한 한국수출입은행에 국제 감축팀이 있다. 개도국을 대상으로 국제 감축 사업을 하는데 많은 자문을 얻고 있다.
남북 기후 협력은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하고, '중단', '재개'가 반복되지 않는 지속성이 있어야
작년에는 파리협정 제6.2조에 기반한 남북 협력 가능성을 연구했고, 올해는 제6.4조가 나온다. 남북 간 사이가 좋아지면 제6.2조를 활용해서 북한은 뭘 준비해야 하고 우리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반대로 사이가 악화되면 제6.4조를 활용해 어떻게 해야 할지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시사점을 도출하는 연구를 했다. 이게 말이 되는지 전문가에게 물으면서 너무 허황되지는 않다는 판단도 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일반 개도국하고도 기후협정을 체결해서 제6.2조, 제6.4조 사업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북한과는 가능할까? 더구나 북한과는 안 좋은 전례들이 너무 많았다. 남한 지원의 중단과 재개가 지속해서 반복해 왔기 때문에 북한이 마음의 문을 닫아서 더 어렵다. 담론화하고 의제화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건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의 재앙은 남한의 재앙으로 이어진다. 사업을 재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 조성'이다. 스웨덴, 스위스와 같이 개도국의 개발 협력 사업을 열심히 하는 주요 공여국들의 특성을 보면 국민적 합의 조성이 잘 돼 있다. 그 배경에는 여론을 쌓는 정부의 작업들이 있다. 기후변화는 좌우가 없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연구자는 연구자로서 정책적인 시사점들을 연구함과 동시에,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이해할 기반을 좀 더 만드는 작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수준에서 진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남북간 기후협력은 중단없이 지속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