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독일 기후 공약 | ④ 새로운 독일 연정 합의문과 기후 정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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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8 이상호
지난 4월 9일 합의된 새로운 독일 연정 합의문에 담긴 탄소중립 정책을 분석했다.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의 흑적 연정이 합의문인 ’독일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완수할지는 예단할 수 없다. 다만 사회적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생태적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전환을 추구하는 중도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의 대타협과 사회통합이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독일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상호 박사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용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국회 정책보좌관, 민주노총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폴리텍Ⅱ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2024년 9월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산학협력단 부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흑적 연정,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의 연합정부
드디어 독일에서 새로운 연합정부가 출범한다. 지난 4월 9일 기민련(CDU)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 사민당(SPD) 공동대표 자스키아 에스켄과 라르스 클링바일, 그리고 기사련(CSU) 대표 마르쿠스 죄더는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연합정부 구성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독일을 위한 책임’이라는 제목을 지닌 144쪽 짜리 연정 합의문은 독일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이 현재 독일이 봉착하고 있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집권 플랜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다.
지난해 11월 초 사민당, 녹색당과 자민당의 신호등 연정이 붕괴된 지 5개월, 연방의회 선거가 치루어진 지 45일 만에 구성되는 ‘흑적 연정(Schwarz-Rote Koalition)은 큰 이변이 없는 한 각 당의 추인 과정을 거치고 나서 5월 둘째 주에 공식적으로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계속되고 트럼프의 미국 중심주의적 대외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의 연정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 독일이 봉착하고 있는 대내외적인 위기 국면에 대한 인식 공유가 중도 좌우익을 대표하는 두 정치세력의 대타협을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연정합의문은 탄소중립 사회로 갈지를 확인하는 바로미터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된 에너지, 산업, 교통, 주거 정책에서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은 선거 과정에서 격렬하게 논쟁을 벌릴 정도로 입장 차이가 컸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연정 합의문 내용은 향후 독일이 탄소중립 사회로 과연 나아갈 수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그렇다면 연정 합의문에서 기후 보호와 관련된 정책들은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는가? 이번 연정 합의문은 독일이 직면하고 있는 복합 위기, 즉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인프라 노후화 등에 대한 포괄적인 대응 전략을 담고 있다. 신 정부는 독일과 유럽의 기후 목표를 지지하며,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적 문제이고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파리기후협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2045년까지 독일이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먼저 기존 신호등 연정의 기후 보호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탄소중립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외에, 수소경제 기반 확충, 탄소포집·저장(CCS) 기술 확충, 탄소국경조정세 도입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신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 소비의 최소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는 2011년 탈원전 결정 이후 재생에너지 확대를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기존 독일과 유럽연합이 합의한 기후 목표 달성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
그러나 독일 산업의 가치사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EU 산하 다른 국가에서 이뤄지는 이산화탄소 감축 프로젝트도 공급망 실사법에서 제한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러한 예외 조치는 EU의 기후보호법 및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에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유럽그린딜(European Green Deal)과 청정산업법(Clean Industrial Act)을 산업 경쟁력과 기후 보호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연립정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기후정책 수단의 핵심 기제라는 점을 인정하고 배출권거래제 2단계(ETS 2) 도입을 지지하고, 2027년까지 독일의 국가 배출권거래제(BEHG)를 유럽연합의 체계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해 산업 경쟁력과 기후 보호의 유연한 결합
그 다음으로 기후 중립 산업체계로의 이행을 위해서 독일 전역에 전개되어 있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수소 핵심망(Hydrogen Core Network)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러한 조치는 대체 에너지로서 수소를 철강, 화학, 시멘트 등 고탄소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핵심적 에너지 전환 매개체로 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 탄소배출이 불가피한 산업에는 탄소포집·저장 기술 도입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이와 관련된 기술개발과 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한편 에너지 집약적 산업을 위한 산업용 전기요금제가 도입된다. 이를 위해 전기세를 유럽연합 허용 최저 수준으로 인하하고, 부가금과 송배전 요금도 줄일 예정이다. 이로 인해 최소 킬로와트시(Kwh) 당 5센트 이상의 비용 절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화석연료, 특히 가스 사용을 급격하게 감소시킴으로써 결국 난방비의 급격한 상승을 유발한 난방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건물에너지관리법을 만들기로 했다. 이에 대해 녹색당은 강력한 비판성명을 발표했지만, 가스연료의 사용 입장은 전기료 안정과 에너지 공급 확대를 위한 연립정부의 예비발전소(Reservekraftwerke) 추가 연장에 대한 타협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새로운 연합정부는 탄소유출(Carbon Leakage)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연합 차원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탈탄소 정책을 국제적으로 연계하는 "기후클럽" 창설을 주도하기로 했다. 이는 동일한 감축 기준을 가진 국가 간 산업 경쟁력을 보호하고, 기후정책의 글로벌 이행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도 보수와 진보 세력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교통 및 모빌리티 분야
한편 교통 정책 측면에서 볼 때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은 연정 협상에서 몇 가지 의제를 두고 논란을 벌렸지만, 양 진영이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을 서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타협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민당이 강력하게 요구한 독일티켓(Deutschlandticket)은 경기침체기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고 서민경제에 기여한다는 점을 기민련/기사련이 인정하면서 현행과 같이 유지하기로 결정되었다. 논란이 되었던 사용료 인상 문제는 현재 월 58유로인 티켓 가격을 2028년까지 동결하기로 결정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이와 달리 기민련/기사련이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던 고속도로 속도제한 제도 도입은 사민당의 양보로 철회되었다. 사민당은 선거공약으로 고속도로 속도를 130㎞/h로 제한할 것을 요구했고, 기민련과 기사련은 이에 대해 반대했는데, 결국 여론을 등에 업은 중도 보수세력의 뜻이 관철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일면 자동차업계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원거리에 거주하면서 출퇴근을 하는 통근자에게도 민감한 문제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속도로 속도제한 조치가 철회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는 통근자들을 위한 세제 혜택이 확대되었다. 2026년부터 출퇴근 거리에 상관없이 1km 당 38센트의 세제 혜택이 부여된다.
이러한 연정 파트너의 대타협은 항공산업의 탈탄소화 전략에서도 확인된다. 독일 연정은 항공산업의 에너지전환을 위해 기존 의무비율제도(PtL-Quote)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대신 기존 엔진에도 사용 가능한 저탄소 대체연료인 지속가능 항공연료(SAF) 확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이는 항공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 절충안이라 평가할 수 있다.
흑적 연정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자동차 산업
다른 한편 두 정치 진영의 이해가 거의 일치하는 분야가 바로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이다. 신 정부는 차량의 전기화를 원칙적으로 환영하지만, 법적으로 일률적인 할당량을 부과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이번 연정 협상에서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은 신호등 연정에서 재원 문제로 정체 현상을 보이던 e-모빌리티(이동수단의 전기화)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전기차에 대한 구매 인센티브를 높이기 위해 특별 감가상각제도를 도입하고, 2035년까지 자동차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세금 우대 대상 전기차 가격 상한선을 10만유로로 인상하고, 저소득 및 중간소득 가구를 위한 EU 기후사회기금(Klimasozialfonds)을 활용한 기후 친화적 모빌리티 전환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기로 했다. 또한 승용차 및 화물차용 전국 단위 충전 인프라 및 고속충전망을 수요자 중심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확대하고, 상업용 차량의 기지 내 충전(Depotladen)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저탄소 배출 화물차에 대한 도로 통행료 면제 조치를 2026년 이후에도 유지하고, 상용차용 수소 충전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기로 했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독일의 전략적 선택
이와 같이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의 흑적 연정은 연정합의문에서 시대적 도전과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도 보수와 진보 세력의 공동 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탄소중립 사회로의 길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가의 안정성, 미래에 대한 희망, 광범위한 개혁의 실현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의 흑적 연정이 그들이 약속한 바와 같이 ’독일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완수할 수 있을지 여부를 지금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사회적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생태적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전환을 추구하는 중도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의 대타협과 사회통합이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독일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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