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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철ㅣ전문의ㅣ기후위기와 기후미식

최종 수정일: 3월 26일

 

황희정 기자 2024-03-20


이의철은 직업환경의학 및 생활습관의학 전문의다. 14년 전부터 식물성 식사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겪는 다양한 만성질환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데 힘쓰고 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 부속의원 원장과 차의과학대 통합의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기후미식』(2022), 『채식하는 이유』(2022, 공저),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2021), 『비거닝』(2020, 공저) 등이 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조절이 안 되는 환자를 위하여


'완전한 비건'이라기에는 좀 유연한 편이다. 적당한 선에서 동물성이 없다는 식품으로 골라 먹고, 혹시 음식에 들어가 있어도 동물성 식재료만 빼고 먹는 유연한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비건 지향'이다.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과는 또 다르다. 플렉시테리언은 가끔 고기도 먹는데, 본인 같은 경우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고, 먹을 게 정 없으면 음식에서 채소만 건져 먹는 식이다. 어찌 되었든 이런 식습관들은 다 환경에 도움이 된다. 플렉시테리언이 동물성 식품을 50% 줄이면 비건의 절반 정도의 효과를 내는 거라서 그런 사람이 둘이면 비건 한 명 만큼의 효과를 낸다.

처음에는 전적으로 맡은 환자들을 치료할 효과적인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앓는 환자들이 '아무리 약을 먹어도 조절이 안 된다.'고 말할 때 의사가 환자들에게 해 줄 게 아무것도 없어 답답했다. 의사로서 회의감이 들었고 매너리즘에 빠졌었다. 그즈음 황성수 신경외과 전문의가 출연한 MBC다큐멘터리의 제작진이 출간한 『목숨걸고 편식하다』를 읽었다. 책에서 사람들의 3~4주 만에 체중이 쭉 빠지고 혈압이 떨어졌다. 책에서 나온 식사법을 자신의 진료 처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를 직접 몸에 실험해 보았다. 그렇게 시작한 식단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시작 후 체중이 6~7㎏ 빠졌고 겨울철에 겪었던 비염이나 축농증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효과를 확인했다.

 

정말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


정말 사람을 고치고 싶으면 본인 몸에 실험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환자들에게 권한 대로 실행해 보기도 했다. 술을 마셨을 때와 마시지 않았을 때, 운동을 열심히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건강하게 먹었을 때와 그러지 않았을 때의 몸 상태를 스스로 잘 알아야 했다. 의사가 경험 없이 말하면 환자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을 정말 건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급성 질환자와 달리 만성 질환자들이 그냥 약만 먹고 지내면, 점점 다른 질병들이 더 붙고 먹는 약의 종류와 양도 늘어나게 된다. 약의 부작용이 심해지고 장기들도 망가지기 시작하면 돌이키기 어렵다. 그걸 뻔히 알면서 예방할 방법을 환자에게 알려주지 못한다면 그건 반쪽짜리 의사다.


어릴 적부터 '나 혼자 잘 사는 건, 진짜 잘 사는 게 아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 TV에서 방송하는 만화영화를 보려고 집 근처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는 데,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었다. 만화영화를 볼 욕심에 모른 체하고 지나쳤는데, 만화를 보는 내내 그 할머니가 생각났다. '도왔어야 했는데' 하는 당시 심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데 나만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더라도 기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환자들은 의사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한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는 만큼, 의사는 환자를 존중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의사는 사실 사회 경제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해야 한다.


기후미식(Klimagoumet) 개념을 가져오다


'기후미식'은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행위, 혹은 그런 음식들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기후미식'이라는 단어를 쓰는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딱 두 나라밖에 없다. 독일과 한국이다. 2019년 여름휴가로 독일에 갔다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매년 열리는 ‘기후미식주간(Klimagoumet Woche)’ 행사를 발견했다. 행사 깃발이 도시 곳곳에 붙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고 엄청 흥분했다. 정말 멋진 단어라고 생각해 한국에 이 개념을 가지고 왔다. 기후미식은 비거니즘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비거니즘은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후미식은 비거니즘 측면에 더해 쓰레기와 폐기물도 최소화하고, 조리나 가공에서도 에너지 사용을 최대한 적게 하는 것 또한 염두에 두는 개념이다. 그야말로 생산과 가공, 소비, 폐기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까지 고려한 식단인 것이다.

보통 환자에게는 동물성 식품, 식용유, 설탕 이렇게 세 가지를 최대한 줄이라고 강조한다. 채식 위주의 식단만을 차리면 비타민B12와 비타민D가 부족해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동물성 식품을 전혀 안 먹는다면 비타민B12는 충분히 섭취하기 어렵다. 유일하게 김을 하루 2~3g 정도를 매일 먹으면 하루 권장 섭취량은 충족할 수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보충제로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비타민D는 지용성 비타민이라서 동물 조직을 식재료로 해야 먹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비타민D는 음식보다는 햇볕을 받아서 합성해야 하는 성분이어서, 햇볕에 충분히 노출되면 된다.


전기차 보급만큼 채식도 보급해 보자


현대 의학은 우리가 겪는 여러 건강 문제들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기보다는 그 증상을 해결하는 쪽으로 발달했다. 원인을 따져 보면 결국 생활습관과 우리가 사는 환경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왜 건강한 식사를 못할까? 실제로 건강하지 않은 음식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음식에 고기, 설탕, 식용유가 들어 있다. 이런 음식을 피할 수 없으니 실천이 어렵다. 식생활 환경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전기차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전기차를 보급하기 위해서 정부는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보조금을 준다. 충전소 설치도 지원한다. 마찬가지로 식물성 식품에도 보조금을 지원하고 순식물성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내연기관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동물성 식품 섭취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은 비슷하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지원을 하는 만큼 식물성 식품 위주의 식품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지원해야 한다. 이런 정책 결정에는 국민적인 동의도 필수이다. 그걸 위해서는 교육도 해야 한다. 모든 게 다 맞물려서 같이 진행돼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계속해서 권하고, 기고하고, 나아가 책에 써서 알릴 수밖에 없다.


키가 클수록 기후위기도 커진다


전 세계적으로 평균 키가 커지는 지역에서는 여지없이 암 발생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또 키가 클수록 암 발생률이 예외 없이 더 높다. 성장을 촉진하는 육류와 우유가 정상적인 세포뿐만 아니라 암세포의 성장까지 촉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큰 키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고기와 우유를 못 끊는다. 큰 키 집착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면 건강도 얻을 수 없고, 동물성 위주의 식단에서도 벗어날 수 없고, 동물성 식품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온실가스 문제도 막을 수 없게 된다. 비교와 성장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 우리 지구에 정말 합리적인 사고에 기반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의철 저서 링크 :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 http://aladin.kr/p/oy0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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