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운명적으로 ‘기후공동체’, 접경지 지방정부의 개발 협력이 한반도 평화를 이끄는 원천
2024-11-07 박성미 총괄
이인영 국회의원은 5선 국회의원으로 1964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언론대학원에서 정보통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6월 민주항쟁을 이끌었다. 같은 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이 되어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 섰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으로 정계에 입문,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서울 구로구 갑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 제19대, 제20대,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2020년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남북 교류 협력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법안 개정에 힘썼다.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 고문, 더불어민주당 평화안보대책위원회 위원장, 국회 남북경제협력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현재 22대 국회 서울시 구로구 갑 의원으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접경지 주민을 말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민통선을 걷는다. 2017년부터 시작해 8년째 해 왔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부터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350km를 걷는다. 그 길은 접경지 지방정부의 길이지만 우리들의 평화 협력의 꿈이 절실하게 묻혀 있는 길이기도 하다. 남북 평화 협력과 지방정부의 역할을 말하고자 하는데 지역을 좁혀 접경지 지방정부의 역할을 말하고자 한다. 최근 한반도는 위기 경보 등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어느새 꿈 같았던 평화는 멀어졌고, 남북은 말 폭탄을 주고받더니 대북 전단이 날아가고 오물 풍선이 날아오게 되었다.
군사 행군과 첨단 무기 경쟁은 한반도에 더 짙은 먹구름을 예고하고 있다. 가장 걱정이 많고 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분들이 접경지 주민들과 접경지 지방정부의 단체장들이다. 접경지 주민들에게 지금의 긴장 상태와 위기는 생활의 현실이자 생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그런 점에서 남북 평화 협력에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절실한 당사자가 접경지 주민들이라고 생각한다. 기괴한 기계 소리의 소음으로부터 파괴된 일상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강화도에서 오신 주민은 무릎 꿇고 국정감사장에서 절규했다. 그 사진 한 장이 우리 모두의 절박한 바램이 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악순환을 가장 먼저 선순환으로 바꿀 분들도 접경지 주민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는 지난날의 일장춘몽이 아니라 오늘 당장의 절박한 요구이고, 미래를 향한 웅대한 꿈들을 펼쳐나갈 비상과 같기 때문이다.
남북은 운명적으로 기후공동체이다
접경지에서의 평화 협력은 통일의 시작이다. 접경지인 강원도 고성군, 양구군, 화천군, 철원군, 연천군, 파주시, 인천의 김포, 강화군에 이르기까지 분단된 시군이 참 많다. 6‧25 이전 북쪽 땅이었던 곳이 남쪽 땅이 된 곳도 있고, 반대가 된 곳도 있다. 분단만 된 것이 아니라 지난 70년이 넘는 세월을 남북은 서로 다른 발전 경로를 밟아 왔다. 많은 것이 다르고 또 맞지 않는 부분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여전히 우리는 같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념과 제도는 다르지만 말과 글이 같고 정서가 통한다. 아직도 우리가 하나였던 시절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추억 삼아 종종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 주셨다. 이런 말과 글이 같고 정서가 통하는 그 힘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공유하지 못할 평화 협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협력 사업의 토대가 된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고, 백두대간으로 이어져 있고, 임진강 물결도 하나로 흐르고 있다. 지난 10월 초, 강원도 고성군에서 진행하는 평화통일 걷기대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진부령에서 시작해 남쪽의 최북방 향로봉까지 걷는 코스였다.향로봉 정상에 서면 건너편 왼편으로 금강산 줄기가 보이고, 오른쪽 건너편으로 설악산 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로 눈앞에 북쪽의 GP도 보인다. 여의도에서 남산 보는 것보다도 가까운 거리다. 산줄기만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물길도 하나다. 북의 황강댐에서 홍수가 나면 곧장 철원, 연천 일대도 물난리가 난다. 북의 금강군에서 흘러내린 물길은 인제군, 양구군에 영향을 준다. 평화와 협력에 특히 기후 협력의 태생적 요구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이미 운명적으로 기후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남북은 휴전선으로 끊어진 듯 보여도 끈질기게 서로 이어져 있다. 그 상징성이 바로 접경지다.
접경지는 독일의 그뤼네스반트와 같은 평화 협력과 개발 협력이 모두 가능해
접경지는 남북의 공통분모이자 가장 큰 교집합이다. 접경지 평화 협력은 이런 동질성을 찾아나가는 길이다. 너무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은 길이다. 접경지의 평화 협력은 남북의 통일을 마중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접경지에서의 평화 협력은 다른 모든 지방정부의 협력처럼 개발 협력으로 지향되어야 한다. 등거리 등면적 공유지대를 충분히 활용해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하고 발전된 것으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의 남북관계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더욱 강력한 축적의 관계로 후퇴하지 않는 관계로 만들어 가야 한다. 모든 지방정부의 남북 협력도 그렇지만 특히 접경지에 평화 협력은 단순한 상호 방문이나 인도 협력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태, 농업, 공업, 지하자원 개발, 관광, 첨단 의료 등 정말 다방면에서 낮은 수준이라도 개발 협력을 지향하는 협력의 고도화를 이뤘으면 좋겠다. ODA 사업도 처음엔 인도적 지원으로 시작하지만 개발 협력과 상생 협력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남북 사이에 생활이 긴밀히 연결되고 경제적 이익이 충분히 공유하는 단계로 나아갈 때 우리의 협력도 더 공고해지고 평화도 더욱 강력하게 단단해지며 통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치 군사적 문제가 일정 정도 해결된다면 당장이라도 철원에서는 공동 역사 발굴이 가능하고 DMZ를 생태평화공원으로 조성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DMZ에 옥류관을 세우고 그 수익금으로 일제강점기에 동원돼서 희생됐던 분들을 위한 공동기금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은 남북 사이에 오래전부터 오간 이야기들이었다.
남쪽의 강원도 고성군, 양구군, 북쪽에 평강군, 김화군, 천내군에는 반도체 소재인 니켈, 형석 등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 남북이 공동 탐사와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 접경지대에서의 지하자원을 통한 협력 모델은 이미 남북 예멘이나 남미의 에콰도르, 페러 분쟁 해결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다. 더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남북 간에 이런 사례들을 적용해 볼 수 있고, 독일 분단 상황에서 조성되었던 비무장지대를 그뤼네스반트(녹색띠)로 활용했던 접경지 평화 협력의 경험도 실현해 볼 수 있다. 남북관계는 상호의 실체성 인정과 잠재적 특수 관계라는 이 두 개의 기둥으로 움직여져야 한다.
적대적 '두 국가론'도 아니고 평화적 '두 국가론'도 현실 가능성이 적다
최근 남북관계를 논할 때 '두 국가론'이 자주 언급된다. 교전과 적대 관계라는 북쪽의 '두 국가론'도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평화 몰빵론'으로 이야기되는 남쪽 일각의 '두 국가론'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유 북진 통일을 내세우며 한반도에서 두 개의 실체를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의 통일론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에서 '두 국가론'으로 배제되어 마땅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남북관계는 한반도에서 2개의 국가의 실체성을 인정하는 것과 또 통일을 지향하는 가운데서 형성돼 있는 잠재적이고 과도적인 특수 관계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움직이는 것이어야 한다. 이 두 개의 기둥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향이며 또 유익한 방법이다. 마치 우리가 두 다리로 걷는 것이 가장 완벽한 걸음이 되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러한 전제를 잃어버리고 남북 문제에 접근하면 평화는커녕 대결과 경쟁의 심화만 부를 수 있다. 남북관계의 역사성과 구조로 볼 때 적대적 '두 국가론'도 아니지만 평화로운 '두 국가론'도 현실 가능성이 적다. 통일을 지향하지 않고 두 국가로 지내면서 평화롭게 지내고자 하는 것은 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앞에 북중러와 한미일의 진영 대결이라는 소용돌이에서 스스로 휘말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통일이라는 자기장이 사라지게 되면 북이 남북 평화를 우선할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북쪽은 남쪽과의 긴장 상태를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서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남북관계 개선은 평화가 맨 마지막으로 매겨질 뿐이다.
통일은 우리 민족만이 가진 가장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다
한반도 평화가 맨 마지막 순서로 되지 않도록 진지하게 생각할 때다. 통일을 포기한 평화는 평화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경쟁과 적대를 불러들일 것이다. 통일은 우리만의 배타적 권리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통일은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만이 가진 가장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통일의 권리는 국제법적으로도 존중받는 권리다.국제대회에서 우려는 단일팀을 구성할 수 있고 또 그때마다 세계인은 존중하고 박수를 보내 왔다. 여전히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 이것은 실체적이고 또 명시적이다. 예컨대 개성공단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원산지 예외 규정을 적용했다. 두 개의 국가는 국제법적으로 유엔과 유엔의 가입과 동시에 적용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남북관계는 하나의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특수한 관계라는 점 역시 국제법적으로 명문적 실체적으로 존중받아 왔다. 통일은 한반도 미래에 특히 경제적 번영의 블루칩이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갖지 않은 우리만의 권리이고 가능성이다. 블룸버그나 세계은행은 남북이 하나의 경제권이 될 때 엄청난 경제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것이 우리 미래의 꿈이고 실천이 되어야 한다.
접경지 지방정부의 평화 협력은 통일로 가는 출발점이다
당장의 남북관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봄은 오고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다. 가까이는 미국의 대선이 있고, 2027년에는 대한민국은 정권 교체라는 그 계기가 있다. 남북관계는 의외성과 전격성, 가변성이 늘 크게 작동해 왔다. 이런 역동적 변화를 놓치지 않고 우리가 지혜롭게 헤쳐 나간다면 통일은 포기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 둘 일이 아니다.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겨울 시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 '스토브리그'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다. '스토브리그'를 잘 보내면 남북 협력의 시즌이 왔을 때 그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힘차게 도약할 수 있다. 지방정부로부터 준비해서 키워 내는 평화 협력의 힘은 이전에 우리가 만났던 그 어떤 평화의 시간보다 강인하고 오래 갈 것이다. 다시는 냉전과 대결의 시대로 뒤돌아가지 않는 평화의 굳건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접경지 평화 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강력한 토대이며 한반도 통일의 선체험의 시간이고 통일을 마주하는 역사적 지혜의 장이다. 통일의 꿈을 뒤로 덮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 접경지 지방정부의 평화협력은 통일로 가는 출발점이다.
통일의 당위성이 희미해져가는 요즘, 통일이 우리민족의 배타적권리라는 말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