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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선언 | 이재임ㅣ봉인된 '주거권' 바꾸러 갑니다

 

황희정 기자 2024-09-06


이재임은 미술을 공부했고 강원도 태백에서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여인숙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강릉여인숙>을 연출했다. 그외 저작으로 양동 쪽방촌 주민들의 강제퇴거 위기 이야기를 담은 <힐튼 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여성 홈리스 구술생애사집인 그 여자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공동 집필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네 편의 만화 들어봐, 나의 몫소리를 기획 연재하며 빈곤사회연대와 인연을 맺었다. 현재 반빈곤운동단체 빈곤사회연대에서 사무국 활동가로 6년째 활동하고 있다.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다


빈곤사회연대는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곳이다. 빈곤사회연대는 다양한 조직의 연대체다. 홈리스(homeless), 철거민, 노점상, 장애인 대중 조직 등 약 60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강제퇴거 반대, 사회공공성 확보, 주거권 쟁취, 기후정의,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운동 등을 하고 있다. 빈곤은 개인의 나태나 무능 때문이 아닌,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따른 구조적 문제다.


구조적 취약함을 말하지 않는 기후위기 해결은 있을 수 없다


'홈리스행동'이라는 단체와 매주 서울역 등에 홈리스 현장 활동을 나간다. 6년간 함께하고 있다. 홈리스 당사자가 겪는 기후위기는 북극곰 살리기나 일회용품 덜 쓰기 등의 말로는 해결할 수 없다. 좀 더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쪽방 주민 조직과 함께하는 일도 많다. 쪽방 주민 분들이 겪는 기후위기는 심각하다. 우리 사회에서 더 잘 이야기되었으면 한다. 코로나 시기에도 자가격리나 거리두기를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쪽방의 근본적인 구조적 취약함을 말하지 않는 기후위기 해결은 있을 수 없다.


기후재난으로 약자들이 죽어가는 사회


코로나 시기가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각종 개인 안전 수칙들이 발표되고 줌(zoom) 회의, 홈트레이닝 등 개인들의 일상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 집이 없는 사람, 집이 있어도 집답지 못한 열악한 주거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조치들이 무용하거나 실현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쪽방에서는 거리두기가 불가능했다. 화장실이나 싱크대를 공유하기 때문에 감염에 더 취약했다. 쪽방 주민들 중에는 기저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다. 어느 쪽방 주민은 일체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방문 앞에 ‘방문을 거절합니다’ 팻말을 붙여 두고 스스로를 가두기도 했다. 이렇게 코로나 팬데믹 기간은 불평등한 위기가 집중되고 전가되는 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코로나 말고도, 수도권 집중호우로 인해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일가족이 사망하는 폭우 참사가 발생했다. 지하주거뿐 아니라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거처 등에서 화재, 폭염, 혹한 등의 재난으로 인명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출처: 이재임

땜질식 정책으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에너지 요금이 급등해 언론에 난방비 이야기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 수도관이 동파해 계단이 얼음으로 모두 뒤덮인 사진이 언론에 보도됐다. 비슷한 시기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용산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에너지바우처’를 반납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멈춰 있는 동자동 공공임대주택사업을 하루 빨리 추진하라는 요구를 했다. 한시적으로 냉난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는 에너지 빈곤도 주거 불안도 해결하지 못한다. 폭염과 한파가 오면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지원(쿨링포그, 에어컨 설치, 야간 임시 대피소 마련 등)들은 넘쳐 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쪽방을 뜯어 고치지 않으면 문제는 계절마다 반복되고 해결되지 않는다. 에너지바우처는 가난한 사람들이면 다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세간의 인식이 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소득 기준 안에서도 장애인, 노인, 영유아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받을 수 있는 선별적 지원이다. 쪽방촌에 살지만 못 받는 분들이 많다. 땜질식 기후위기 해결이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이 근본적인 기후위기 해결이다.


기후정의행진에서 주거권과 빈곤 이슈가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기 시작


기후정의행진에 꾸준히 참가했다. 변화를 체감하는 부분은 기후정의운동에서 주거권이나 빈곤 이슈가 점점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지하나 쪽방, 이주노동자의 숙소 등으로 그려지는 주거권의 모습이 기후정의와 만나는 지점이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907행진'을 통해 기후위기 속 주거권의 요구를 조금 더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멀쩡한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재개발이 아니라, 투기적인 부동산 시장이 아니라, 주거공공성이 확보된 집에서 사는 우리를 상상하며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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