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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 한국노동연구원 | ‘먹고 사는 문제’와 ‘죽고 사는 문제’

기후 위기 적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동조합의 과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국제협력실장

영국 워릭대 경영학 박사(노사관계 및 조직행동)

이정희 외(2023),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 주요 산업별 현황과 과제, 한국노동연구원

박태주·이정희(2022), 정의로운 에너지전환과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이정희 외(2021), 기후위기와 일의 세계, 한국노동연구원


 

인간과 인간은 연결된다

인간은 ‘노동’으로 타인과 연대한다. 일터에서 내가 만들어 낸 재화와 서비스는 누군가의 수요를 충족시킨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들은 나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또한 내가 만들어 낼 것들의 중요한 원료와 연료가 된다. 전기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건물을 짓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자전거와 자동차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버스와 지하철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식료품을 가공하거나 판매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휴대폰을 제조하거나 통신망을 유지·관리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나의 삶을 그대로 영위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인간과 인간은 연결된다.

     

인간은 자연과 연결된다


인간은 또한 자연과 연결된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숨을 쉬는 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해 필요한 것들은 모두 자연에서 확보한다. 석유나 석탄, 가스와 같이 자연에서 얻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우리는 기계를 돌리고 생산품을 만들며 각종 전자기기를 사용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자연을 마구 훼손할 뿐 아니라 자연생태계에 위협이 되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또한 사용가치를 다해 버려지는 가정용·산업용 쓰레기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기후 위기는 성장 중심의 산업주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하는데, 생산/노동이 자연(생태)을 ‘타자화’해 왔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인간과 자연과의 연대에서 중요한 것


인간과 인간 간의 연대가 깨지면 전쟁, 학살, 혐오, 차별, 증오, 불평등, 불신이 자라나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는 것처럼 인간과 자연 간의 연대가 깨지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폭염, 혹한, 폭우, 폭설, 가뭄, 산불 그리고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과 같은 재난의 확산으로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 이를 위해 사회경제체제 전반을 개혁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인간과 자연과의 연대를 구축하는 방안 가운데 특히 인간과 인간 간의 연대를 매개하는 노동이 이뤄지는 공간, 즉 ‘생산의 지점’에서 노력이 중요하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죽고 사는 문제’로 돌아와


노동자들은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특정 기업(들)을 위해 일을 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일의 결과로 만들어진 상품이 유통되고 사용되고, 또한 폐기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자연에 위해가 되는 온실가스 등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산업 활동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과 그것이 자연에 끼치는 위험은 텀블러와 손수건 사용과 같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위험이다. 실제 2022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6억5450만톤) 가운데 70% 이상이 산업부문(37.6%·2억4580만톤)과 발전(전환)부문(32.7%·2억1,390만톤)에서 발생하였다.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것은 그 대가로 임금(보수)을 받기 위함이지만, 지금과 같은 생산방식 하에서는 자연생태계에 위해를 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좁은 의미에서 노동은 ‘먹고 사는 문제’이지만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로 확장하면,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악순환은 자연생태계를 점차 파괴하고 결국 인간에게도 ‘죽고 사는 문제’로 돌아온다. 생산의 지점에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의 방향성


노동조합 운동 진영에서 실천해야 할 것은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기후 위기가 노동 및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기후 위기가 초래한 자연재난에 맞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한 일자리의 상실을 수용하며 녹색일자리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노력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들의 생산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당장 일자리 상실의 고통이 있지만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지지하는 것, 내 일터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노사가 함께 조사하고 감축방안(에너지효율방안, 폐기물절감방안, 온실가스 저배출 생산품으로의 전환 등)을 마련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구체적 실천 방안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아래의 4가지를 검토할 수 있다.    

첫째, 전국-산업·업종-기업 수준에서 ‘녹색’ 활동을 담당할 활동가를 발굴·선정하는 것이다. 이 녹색 담당자는 노조가 실천할 수 있는 녹색 활동을 발굴하고 관련 활동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둘째, 녹색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임금과 노동조건, 복리후생, 노조 활동 등에 관해 노사가 합의한 규범인 단체협약에 ‘녹색’을 담자는 제안이다. 기후 위기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기후 위기→노동자)과 생산·유통·소비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통해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것(노동자→기후 위기) 모두를 포괄한다.   

셋째, 전국-산업·업종-기업 수준별로 다양한 거버넌스를 구성·운영하는 것이다. 전국 수준에서는 현재 노동자 대표가 단 한 명도 없이 운영되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대표성 확대 및 운영의 내실화를 꾀하는 한편, 산업전환 추진으로 당장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잃고 있는 발전산업과 자동차부품산업을 중심으로 양질의 녹색일자리로의 전환을 위한 교육훈련, 전직지원, 생계지원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기업 수준에서는 기후 위기 대응을 의제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및 에너지 활용 현황을 공동 조사하고 배출 감소 및 에너지 효율화 방안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여야 한다.

넷째, 적록동맹을 형성하고 노동정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운동과 환경/기후정의운동과의 불화(“환경운동은 자연에 어떤 피해를 끼치든 상관없이 일자리를 지키려 한다고 노동조합을 비난했고, 반면에 노동조합들은 환경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의 일자리의 필요성, 실제로는 생존의 필요성을 자연의 뒷전에 놓는다고 비난했다.*”)를 극복하고 기후를 말하는 노동운동과 노동을 말하는 기후운동 간의 동맹을 형성하는 일을 말한다.


노동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이러한 노동조합은 노력은 국제노동기구(ILO) 헌장에서 천명한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를 만드는 과정일 것이다. 이는 노동의 이행을 둘러싼 조건(고용, 임금, 노동3권, 사회보장 등)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과 함께 노동 그 자체가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체제를 말한다.** 기후 위기 시대 적응전략과 함께 생산의 지점에서 자연에 위해가 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 노동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전망을 포함하여 노조의 대응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 대기업의 페놀 유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삼진그룹토익반>(감독 이종필)에서 이자영(고아성 분)과 동료들은 고졸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기업의 부조리한 행위로 지역사회와 사람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알게 된 뒤, 그 비리를 파헤치면서 구조적 모순에 맞선다. “왜 이렇게까지 고생하느냐”라는 한 동료의 말에 이자영은 이렇게 답한다. “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 일이 좀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일이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면 좋겠고…” 노동조합 버전으로 말하자면 이는 사회적 노조주의(social unionism)의 정신이기도 하다.



*우젤·래첼(2019), “노동과 자연 사이의 단절 고치기 – 환경주의 노동연구의 경우”, 래첼·우젤 엮음/김현우 옮김,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이매진, p23


**박제성(2023),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에 관하여’, 노회찬재단, 노회찬 5주기 추모 심포지엄 – 복합위기의 시대,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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