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기자, 김동혁 영상기자 2024-04-17
5남 2녀의 가정에서 태어나 은행원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상고에 진학했다. 어릴 적부터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걸 좋아했던 그는, 결국 상고를 졸업하고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 34년간 미술 교사로, 온전히 작업에 집중하는 오늘까지 이승무 화백은 자신의 모든 삶을 구상화에 담았다.
단순하게, 느리게
처음 그림을 그릴 때에는 풍경화와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지금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어느 순간 묘사와 재현보다 색상과 형태라는 단순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면도, 선도, 형태도 모두 단순하게, 대신 더 많은 메시지와 감상을 담을 수 있도록 구상화에 열중했다. 색이 주는 느낌, 물성을 주는 방법,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은 한지를 이용해 작업하고 있다. 캔버스에 한지를 붙여 목공풀을 바르고 바싹 말린다. 그런 뒤 다시 물을 뿌리고, 말리고, 찢는다. 이 과정을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한다. 너무 덜 마르면 한지가 나이프에 밀려나고, 너무 많이 마르면 나이프가 한지를 찢을 수 없다. 딱 적당한 만큼을 얻기 위해 신중해야 한다. 뜯고 요철을 만들고 유화를 올리고 광택을 죽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따스함과 세련된 느낌을 얻는다. 이런 인고의 과정이 자연을 닮았다. 상처 난 자리에 싹이 자라고, 옹이에는 새가 자리를 잡고,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하나의 세상이 되는 것처럼, 이승무 화백의 작품도 그러하다.
아침 텃밭의 식물과 계절마다 다른 바람을 느끼며
오래도록 청도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매일 아침 텃밭의 식물들이 얼만큼 자라났나 들여다보는 것이 낙이다. 계절마다 다른 바람을 느낀다.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것이 늘 신기하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웃들과의 교류가 많다. 서로가 키운 작물을 나누고, 어울려서 밥도 먹고, 그냥 일상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늘 어울린다. 태어나서부터 쭉 시골에 자라기도 했고, 이런 정서와 생활이 모여 작품이 되었다. 어떤 이는 작품을 보며 ‘참 문학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간, 공간, 인간이 조화롭게 짜인 것이 결국 문학이기 때문이다.
사이間를 거닐다
2024년 4월 10일부터 4월 16일까지 이루어진 이승무 화백의 전시 주제는 ‘사이間’와 관련한 것이었다. 間이라는 한자 안에 시간, 공간, 인간에 모두 들어 있다. '사이'는 곧 삶이고, 그런 삶이 작품에 녹아들었다. 13년 전부터 지금까지 일궈낸 열매이다. 작가와 작품이라는 것은 느릴지언정 항상 변화해야 한다.
느리게 자라나는 숲처럼, 모든 삶의 사이를 거닐다 보면 변화는 자연스레 찾아온다. 구상화의 단순한 색, 면, 선을 본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감상을 말하고 그 감상에서 말미암아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 이런 경향성이야말로 작업의 힘이 된다. 보는 대로 느끼고, 느낀 것을 말하고, 들은 것을 그리는 게 다시금 사이를 걷는 일이 된다. 앞으로도 끝없이 사이를 거닐 예정이다. 그렇게 더욱 활기 넘치는 방향으로 작품을 해 나가려 한다. 전시가 끝난 뒤, 오랜만에 작업실로 돌아가 텃밭의 작물들이 얼마나 자라났는지 둘러보고, 다시금 이웃과 교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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