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 이승학 KIST 물자원순환연구단장 | 물을 저장하라
- planetdami
-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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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7 이담인 기자
이승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자원순환연구단장은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박사후과정과 현대엔지니어링 연구기획부를 거쳐 2010년 KIST 물자원순환연구단 선임연구원으로 합류했다. 현재 물자원순환연구단 책임연구원이자 단장을 맡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학연교수 및 연구부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2016년 '세계 토양의 날' 환경부 장관 표창, 2020년 토양환경업무 유공 환경부 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으며 2023년 환경기술개발 우수성과 20선에 선정된 바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토양 지하수 오염정화와 지중환경 오염물질 거동특성 평가 등이다.

흙에서 시작된 물에 대한 관심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그중에서도 토양의 역학을 연구해 왔는데, 지도교수님이 토양 오염 문제를 다루시는 분이었다. 오염된 지하수의 정화 기술 개발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며 자연스럽게 물이라는 자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은 단순히 생명 유지의 수단만이 아니라 지구의 물질을 이동시키고 순환시키는 핵심 매개체다. 질소, 인, 탄소 등 다양한 물질이 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동한다. 오염물질 또한 이 흐름에 실려 전파되기에, 물을 관리한다는 것은 곧 생태계 전체의 흐름을 관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염물질 제거는 기본, 물 자원의 회복탄력성을 고민하는 물자원순환연구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자원순환연구단의 역사는 길다. 수질환경연구센터, 환경복원연구센터 등 상황에 따라 조직명이 몇 번 바뀌기도 했다. 1966년 KIST 창립 직후 사회적 필요에 따라 하수처리 기술을 연구하는 조직으로 출발했다. 물을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는 것은 물 안에 들어있는 물질 중 우리가 사용하지 못하는 것들을 분리해내거나 없앤다는 개념이다. 우리 전문 분야가 바로 수질 관리여서 초기엔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후에는 담수화, 물 재이용, 자원 회수 등 점차 고도화된 기술 개발로 방향이 확장되었다. 최근엔 우리가 버리는 물 속에서 희귀금속이나 유기물 같은 유가 자원을 회수해 다시 활용하는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물자원순환연구단은 수자원의 다변화, 순환, 회복탄력성을 키워드로 삼아 연구의 폭을 넓혀왔다. 물에서 오염을 없애는 기술에서 나아가 어떻게 물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이 물이 새로운 자원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기술은 점점 더 융합적이고, 다기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물 속 자원을 어떻게 회수하고, 그것이 생태계 순환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와 있는 셈이다.
상수원의 93%를 지표수에 의존... 한국의 기형적인 상수원 포트폴리오
비처럼 땅에 떨어진 물은 '지표수'와 '지하수'라는 두 가지 형태로 바뀐다. 지표수는 강, 호수, 저수지처럼 지형을 따라 흐르는 물이고, 지하수는 땅 속에 있는 물이다. 인류는 지표수와 지하수 모두 상수원으로 활용하는데, 한국은 상수원 구조가 매우 획일적이다. 상수원의 93% 정도를 지표수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기형적인 구조다. 지표수, 지하수, 재이용수, 담수화수 등 '상수원 포트폴리오'가 다양할수록 한 수원(水源)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수원이 이를 보완해줄 수 있다. 이를 수자원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수원이 존재해야 기후위기 시대에 안정적인 물 공급을 보장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이미 물 공급원에 대해 일정 비율 이상 재이용수와 지하수를 포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물 스트레스 국가'다. 상수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여 수자원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높여야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이 가능하다.
물을 저장하는 '인공함양', 탄소까지 제거하는 '탄소 고정화' 기술 개발
상수원 다양화 과정에서 지하수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러나 지하수는 잘 보이지 않고, 눈앞에 흐르지 않기 때문에 오염이나 고갈의 위협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하수의 재충전 속도가 매우 느리다. 비가 내려도 대부분 지표수가 되고, 실제로 땅속에 흡수(함양)되어 지하수가 되는 비율은 30% 내외다. 도시화 된 지역에선 도로 포장으로 인해 이 비율이 더욱 낮아진다. 따라서 지하수를 마치 무한정 존재하는 자원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 연구단은 '인공함양'이라는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비나 정화된 하수 등 잉여 수자원을 땅속에 인공적으로 주입하여 지하수로 보관하고, 필요할 때 꺼내쓰는 방식이다. 토양층이라는 뚜껑의 보호를 받는, 땅속에 만들어진 저수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뚜껑이 있으니 수량과 수질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인공함양의 장점은 저장 기능에만 그치지 않는다. 땅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에서 물이 토양의 자정 작용을 거치며 더 깨끗해진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인공함양 과정에 '탄소 고정화' 개념을 접목했다. 물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하로 함께 이동하는 동안 지하의 칼슘이나 마그네슘과 반응하여 '탄산염'이라는 광물로 고정되는 것이다. 'CDR(Carbon Dioxide Removal)' 기법의 일환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탄소 제거 기술 중 하나다. IPCC 6차 평가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탄소 중립만으로 충분치 않다. 대기 중에 이미 누출된 탄소 제거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물을 저장하며 탄소를 제거하는 연구는 물 부족 해결과 기후위기 대응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지하수 오염 저감 역할을 하는 토양 불포화대
지하수 관리에서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불포화대'다. 지표면에서 지하수면 바로 위까지의 층을 불포화대라고 부르는데, 이 구간은 물이 일부만 차 있고 나머지 공간에 공기와 미생물도 존재해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거나 확산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불포화대의 자정 작용이 적절하게 일어나기만 한다면, 지하수까지 도달하는 오염물질의 농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이에 착안해 불포화대의 특성에 따라 오염물질 저감 효과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 중이다. 토양의 수분 포화도, 토양을 구성하는 요소와 같은 데이터들을 활용하여 불포화대의 오염저감능을 예측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제안했다.
기후변화는 물의 양과 질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이 연구를 하며 특히 의미 있었던 발견은 기후변화가 물의 양뿐만 아니라 물의 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의 강우 패턴이 달라졌다. 집중호우가 짧은 시간에 쏟아지고, 가뭄이 길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 시간적 여유를 줄이고, 대부분의 빗물이 빠르게 지표면을 따라 유출되게 만든다. 단기적으로는 지하수 함양이 감소하고, 장기적으로는 물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토양 속에 남은 농약 등 오염물질이 강한 강우로 인해 빠르게 침투하며 불포화대를 통과하고, 이것이 지하수의 질산성 질소 오염 취약성을 높인다는 것도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기후변화라고 하면 가뭄 문제를 주로 떠올리기 때문에 수량 해결에 집중하게 되는데, 수질 문제 역시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우리 연구단이 개발 중인 불포화대 분석 기법은 향후 특정 지역의 토양이나 지형을 바탕으로 지하수 오염 취약 지도를 작성하고, 지하수 개발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우리 연구단 전체가 공동참여하는 기관 고유 과제 주제 중 '인공함양 기반의 무약품 먹는 물 처리 시스템'이라는 주제가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수돗물 정화를 위한 약품 처리에 거부감과 우려가 있어 과다한 돈과 시간을 쓰곤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땅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잘 조절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염소 같은 약품 처리 없이도 먹는 물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현재 상용화를 위한 중요 요소들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지속가능한 상수원 시스템, 강력한 정책이 이끌어야
전자 기술, 로봇, 제약, 바이오 분야 등 다양한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원동력은 바로 수요자의 니즈(needs)다. 우리 모두에게 더 편하고, 더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 것이다. 반면 에너지와 환경 분야 과학기술의 발전의 원동력은 정책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수돗물 생산과 정화에 얼마나 많은 세금이 쓰이는지 잘 모른다. 너무나 공적이고 거대한 규모로 움직이기 때문에 수요자, 다시 말해 우리들이 혜택을 받고 있음을 거의 체감하지 못하는 분야다. 그래서 기술과 정책이 함께 가는 수준이 아닌, 정책이 한 발 앞서 기술의 발전 방향을 설정해주는 수준이어야 한다. 여러 국가가 모여 파리협정을 체결하고 'RE100'이라는 기준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설정했기에 환경과 에너지 분야 기술이 따라서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수자원 기술도 마찬가지다. 국민 대다수가 이미 우리나라에 물이 넘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해수담수화, 물 재이용화 같은 수자원 기술을 더 개발하자는 주장은 지지를 받기 힘들다. 한국의 상수원 시스템은 매우 획일적이라 기후변화 변동성을 보았을 때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취약한 구조인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상수원 회복탄력성 확보를 위해서는 강력한 정책이 방향성을 잡아주며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물은 돌고 돌아 다 같은 물, 아껴 쓰고 다시 쓰자
그간 우리나라 정책은 국민들이 직접적인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는 노력이 부재했다. 최근 「물관리기본법」 제27조에 따라 새로이 수립된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 국민들의 물 절약 노력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물을 생산하고 정화하는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에,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의 큰 방향성인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개개인의 물 절약 노력이 여전히 중요하고, 심지어 효과도 있다.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닌 저장하고, 정화하고, 재사용하고, 나아가 탄소까지 제거하는 복합적 자원이자 물질 이동의 매개체다. 물을 단편적 시선이 아닌 순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다양한 상수원 시스템 도입과 물 재이용 등 기술 개발을 적극 진행해야 할 때다. '어떻게 물이 다 같냐'는 말을 듣곤 하는데, 물은 정말로 모두 다 같은 물이다. 물은 돌고 돈다.
너무나 옳은 말씀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