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7 김성희 기자
제주는 우리가 마시는 물의 대부분을 지하수에 의존하는 섬이다. 화산섬 특유의 지형 덕분에 지하수는 맑지만, 기후위기와 도시화로 물이 스며들 틈조차 사라지고 있다. 수천 년간 모인 물을 우리는 너무 빠르게 써버리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의 위기를 마주할 때다.

제주는 물이 귀한 섬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푸르른 경관과 깨끗한 이미지 뒤에는, 수천 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 낸 귀중한 지하수가 존재한다. 제주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환경정책과 생태도시학를 가르치면서 환경과 지하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6년부터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에서 물 관련 국가 R&D를 수행했고, 2021년부터는 제주지하수연구센터에서 정책 연구를 이어가다 2025년 1월부터 센터장을 맡게 되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제주가 직면한 물 위기를 짚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화산 활동이 만든 물 그릇, 화산섬 제주
제주는 약 180만 년 전부터 수많은 화산 활동을 통해 형성된 화산섬으로 지금의 독특한 지형과 지질구조를 갖게 되었다.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의 약 92%가 화산 분출 시 흘러나온 용암류이며, 나머지 8%는 화산쇄설물이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퇴적암류이다. 이런 용암류가 우리가 잘 아는 '현무암'이다. 마그마가 급격하게 냉각되면서 암석 내 포함되었던 가스가 빠져나가며 생기는 구멍을 '기공'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기공이 많은 것을 '다공질'이라고 말한다. 현무암에 구멍이 많은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현무암은 다공질이기도 하며, 군데군데 균열이 있어 물이 잘 통과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용암류는 냉각 과정 중 부풀거나, 함몰되기도 하며 풍화 작용으로 입체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제주의 이러한 지질 구조로 비가 와도 물이 지표에 오래 머물지 않고 빠르게 땅속 지하로 스며든다. 그렇기에 지표수 확보가 어려운 제주는 하천이나 호수가 발달하지 않았고, 결국 지하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현무암이 빚어낸 천연 정수 시스템
지하로 스며든 빗물은 수십 미터, 크게는 수백 미터 두께에 이르는 화산암층을 천천히 통과하면서 자연적으로 정화된다. 현무암이 가진 특성에 따라 흐르는 물은 그 여정 속에서 불순물이 걸러지고 자연적으로 정화된다. 그렇게 점차 아래로 내려가던 물은 마침내 '서귀포층'이라 불리는 저투수성의 퇴적층에 도달하게 된다. 이 서귀포층은 단단한 바닥처럼 물의 하강을 막는 차수벽의 역할을 한다. 그 위에 모인 맑고 깨끗한 물이 제주의 소중한 지하수를 이룬다. 화산섬의 지질구조와 자연의 정화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 물은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느린 이동과 정화를 거쳐 비로소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귀중한 자원이다.

자연이 선물한 샘물, 용천수와 제주 공동체 문화
제주지하수는 1960년대 본격적으로 개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집집마다 상수도 보급이 이뤄졌다. 상수도 보급 이전, 제주의 물 문화는 오랜 세월 용천수와 빗물에 의존해 왔다. 용천수는 지형, 지질적인 특성으로 주로 해안 지역에 발달된다. 제주 해안 지역의 마을 주민들은 함께 천연 자원인 용천수와 빗물을 식수로 쓰고, 생활 용수로 활용했다. 채소를 씻거나 빨래, 목욕을 하기도 했고, 수량이 풍부한 용천수 주변에서는 벼농사를 짓거나 전분 공장, 주정 공장에 활용하는 등 농업, 산업 용수까지로도 이용됐다. 용천수는 ‘생명수’로 불릴 정도로 제주인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지금도 용천수는 여름철 피서지나 주민들의 쉼터로 기능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자연유산으로 남아 있다.

제주 지하수를 둘러싼 환경 변화와 위기
현재 전 세계적 이슈인 기후변화는 지하수 함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현재 제주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소중한 자원인 지하수도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제주 기후을 극한 시나리오 기준으로 적용한 결과 연평균 기온은 21세기 후반까지 최대 5.8℃ 상승하며, 폭염 일수는 약 71.1일이 증가한다고 예측했다. 호우 일수와 강수 강도도 각각 1.9일, 5.1mm/일 증가하며, 단시간 집중 호우로 인한 지표 유출이 심화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물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지하수로 스며드는 물은 줄어드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수면 상승까지 겹치면서 연안 지역에서는 침수가 예상되기도 한다. 섬 지역인 제주는 지질 구조 등으로 인해 바닷물이 지하로 들어가 담수의 이용을 제약하는 해수침투의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하수의 적은 기후위기뿐만이 아니다
도시화 역시 빗물이 지하로 침투되는 면적을 줄인다. 2020년 제주의 시가화 면적은 1980년대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빗물이 침투되기 어려운 불투수 면적 증가로 인해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 여지가 줄어들었다. 불투수 면적이 1% 증가할 때 지하수 함양량은 0.14%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농업 분야에서는 시설 하우스의 증가와 물을 많이 사용하는 작물로의 전환이 지하수 생성의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수질이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하수는 많은 오염에 노출된다. 최근 질산성질소 농도 증가가 주요 이슈이다. 농경지에 뿌리는 화학비료, 가축분뇨, 액비 살포, 개인하수처리시설 등이 주요 원인이다. 지하수는 일단 한번 오염되면 정화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오염원이 지하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속이용가능량부터 딥러닝까지…제주 지하수 관리 전략
제주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을 대부분 지하수에 의존하는 지역이다. 소중한 물 자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게 위해 2020년 10월 제주지하수연구센터가 개소되었다. 센터에서는 제주의 수자원 관리를 위한 정책 연구를 비롯하여 제주지하수를 담고 있는 지질 연구, 지하수의 수량, 수질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
제주에서는 지하수 '지속이용가능량'을 설정하여 지하수 관리 정책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 '지속이용가능량'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물수지 즉, 강수가 얼마만큼 지하수로 함양되는지, 얼마만큼 빠져 나가는지 잘 알아야 한다. 제주의 특성을 반영한 '제주형 물수지 모형' 연구와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수질 오염 예방 및 개선, 해수 침투 방지를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제주 물의 흐름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200여 개의 관측망을 통해 지하수 수위와 수질을 모니터링하며, 용천수와 우물 등 제주의 고유 물 문화의 가치를 발굴하고 기록하여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고 유산적 가치를 미래에 전달하기 위한 연구도 꾸준하다.
최근에는 기본 단순 관측을 넘어 지하수의 상태를 자동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며, 보다 효율적인 지하수 자원 관리를 위해 '딥러닝 기반의 지능형 지하수 관측망 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관측된 지하수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를 대상으로 날씨 예보처럼 지하수위를 예측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하수에서 발생하는 가뭄 영향을 사전에 파악하고 보다 능동적인 수자원 관리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지속가능한 제주 지하수의 미래를 위한 역할
제주 지하수는 제주의 자연이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 낸 소중한 생명의 원천이다. 이 생명수를 이용해 성장과 발전을 이뤘고 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함께 높아졌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지하수가 땅속으로 함양되는 시간보다 이용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지하수 부족이나 고갈이라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현재 전세계의 모든 국가가 당면한 문제가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이다. 제주는 용수는 용천수를 포함하면 약 96.1% 차지한다. 사용하는 모든 물을 지하수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체 수자원 활용이 절실한 지역이다. 빗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해수를 담수화하거나 하수 재처리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하수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우리가 처한 물 위기는 특별한 방법이나 지식이 아니더라도 물을 절약하는 습관 등의 작은 변화로 나비효과를 불러와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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