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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 이순형 교수| 에너지 정책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다

2025-04-15 박성미 총괄

 

'에너지 전환'에서 '계통 전환'으로, 전기공학자 이순형교수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


동신대학교 전기공학과 이순형 교수 planet03 DB
동신대학교 전기공학과 이순형 교수 planet03 DB

이순형 교수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에너지안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동신대학교 전기공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전기공학자이다. 전력계통 운영과 신재생에너지 접속 문제, 분산형 전원 기술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주도해 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과제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 표준모델 실증’ 연구의 책임자로서 농촌 기반 에너지 전환의 현장모델을 설계했다. 2020년 은탑산업훈장, 2024년 전라남도지사 표창과 대한전기학회 춘계학술대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대표 강의는 ‘전력계통’, ‘에너지변환공학’, ‘신재생에너지공학’ 등이며, 저서로는 『신재생에너지공학』과 『계통연계기술』 등이 있다. '데이터센터'와 '해상 풍력'에 관한 책을 집필중이다. 전라남도 정책자문위원회 전략산업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지역 기반 에너지 정책의 실용화와 대중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에너지는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타이어가 미래인지, 말발굽이 미래인지, 그걸 결정하는 게 정책이에요. 정책은 단지 숫자와 구호로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방향성과 설계,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전기공학자 이순형 교수는 한 문장으로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허점을 찔렀다. 그에게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확충이나 설비 건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과 철학 위에서 설계되어야 하는 시스템의 문제"다. 지금 한국의 에너지 논의는 '탈원전 대 친원전', '재생에너지 몇 % 확대' 같은 정치적 구호로만 소비되고 있다. 이 교수는 그것이야말로 에너지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단언한다.

30년 넘게 전력계통과 전력공학을 연구해 온 그는, 말한다. “지금은 ‘설비를 얼마나 깔았는가’만 보지만, 전기는 흐름입니다. 흐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에요. 기술 없이 외친 구호는 전기처럼 흘러가지 못합니다.” 실제로 그는 전국을 돌며 계통 포화 문제, 출력 제한 현장을 수없이 봐 왔다. 발전소는 지어졌지만, 계통이 없어서 수년째 멈춰 있는 태양광, 풍력 설비들을 "죽은 전기"라 표현한다. “발전은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전기는 아무 데나 보낼 수 없어요. 이 단순한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책은 현실과 충돌하게 됩니다.”

그는 ‘계통’에 대해 강조한다. 출력 제한도, 전력 대기 상태도, 지역 간 에너지 불균형도 결국은 계통망 설계 없이 추진된 전환 정책이 낳은 구조적 결과라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이 중요한 건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계통 전환’이 더 중요합니다. 이 흐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진짜 전환이에요.”

그는 스스로를 ‘정책 설계 테이블에 앉지 못한 기술자’라고 말했다. 그간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기술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고, 정치적 구호와 국제회의용 수치가 앞섰다는 것이다. “기술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래를 설계합니다. 5년 뒤가 아니라, 50년 뒤를 내다보는 거예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고, 정권마다 구호가 다릅니다. 이건 국가 시스템이 아닙니다.”

그의 말은 단순히 태양광과 풍력의 양적 확대를 반대하거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명확히 말한다. “원전도 하나의 옵션이고, 재생에너지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만들지를 고민하지 않아요. 그냥 하느냐 마느냐로만 싸우고 있죠. 그런 건 정책이 아니라 구호입니다.”

이순형 교수가 던진 화두는 명확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에는 구호는 있지만 설계가 없고, 정치적 논쟁은 있지만 기술적 기반이 없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정책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어야 합니다. 기술자와 과학자의 설계 위에 정책이 세워져야 하고, 정치는 그 책임을 지는 구조여야 합니다.”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빠진 것


이 교수는 특히 ‘탈원전 대 친원전’이라는 단순 정치 구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에너지 전환은 원전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게 본질이 아닙니다. 에너지 전환은 2060년, 2080년까지 장기적으로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과학의 문제입니다.” 이 교수의 말에 따르면, 지금 한국의 에너지 정책 논의는 정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지금의 정책 프레임은 너무 단순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요. 예를 들어 원전을 없애자고 하면 곧바로 친환경인 것처럼 말하고, 반대로 원전을 유지하자고 하면 마치 기후를 무시하는 것처럼 몰아가요. 이런 식의 흑백 논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탈원전 vs 친원전’이라는 이분법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긴 안목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건 원전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전체 에너지 시스템 안에서 어떤 조화를 이루고, 어떤 역할을 하느냐입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는 구조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에너지는 50년짜리 문제예요. 근데 정책은 5년짜리 구호로 나오잖아요. 정권마다 방향이 달라지는데, 그렇게 해선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될 수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 위에서 일관된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정치적 이념 대립의 구호로 에너지 문제가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술 조합이 효율적인가, 어떤 계통 설계가 가능한가, 어떤 지역에 어떤 자원을 연결할 것인가를 장기적인 시뮬레이션과 공학적 검토를 통해 설계해야 한다. “정책은 시스템 설계입니다. 현실적 시뮬레이션 없이 구호만 외치면, 결국 모든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가게 돼 있어요.”

에너지 전환 논쟁의 정치적 이분법을 넘어, 정책이 갖춰야 할 기술적, 과학적, 철학적 기반이 무엇인지를 그는 묻고 있다. 에너지는 전기를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흐르게 할 것이냐, 그리고 그 흐름을 누가 어떻게 설계할 것이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기공학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슈퍼그리드'에서 배운다


이 교수는 손정의 회장의 책 『손정의 2.0』을 언급하며, 그 안에 담긴 에너지 철학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제안한 아시아 슈퍼그리드는 단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에요. 몽골 고비사막에서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그 걸 한국과 일본, 중국까지 연결된 송전망으로 보내자는 거죠. 기술적으로는 이미 가능합니다. 문제는 정치입니다.”

이 구상은 2011년 일본 동일본 대지진 이후, 손정의 회장이 에너지 독립을 위해 제안한 동북아 에너지 협력 모델이다. 고비사막의 풍부한 태양 자원을 활용해 초고압직류송전(HVDC)으로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전력망으로 연결한다는 내용이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 “기술이 이미 있고, 경제성도 충분한 계획이었다”고 평가한다.

“몽골은 태양광 조건이 세계 최고입니다. 평지, 건조, 일사량, 송전 거리까지 계산해 보면 우리나라보다 단가가 훨씬 낮아요. 그 전기를 받아서 쓰는 게 왜 안 되죠? 석탄이랑 가스는 왜 수입하면서 전기는 안 되는 겁니까?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니고, 마인드의 문제예요.”

그는 유럽을 예로 들며 비교한다. “유럽은 이미 국가 간 송전선이 수십 개씩 깔려 있어요. 낮에는 남유럽 태양광 쓰고, 밤에는 북해 풍력 씁니다. 독일은 프랑스 원전 전기까지 가져다 씁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경 넘는 송전선 하나 없어요. 한국은 섬이에요, 전력적으로는.”

그렇다고 이 교수가 단순히 외국 전기에 의존하자는 건 아니다. “슈퍼그리드는 하나의 방향입니다. 국내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폐쇄적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는 거죠. 협력이라는 틀을 갖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도 결국 닫힌 시스템 안에서만 맴돌게 됩니다.” 현재 동북아의 현실적 제약도 인정한다. “이걸 하려면 북한을 지나야 하는데, 그건 지금 상황에선 어렵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 논리가 모든 걸 덮고 있어요. 독일은 프랑스, 체코, 폴란드와 연결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어요.” 그럼에도 그는 이 구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입니다. 전력도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태양은 똑같이 떠 있는데, 우리는 자원이 없잖아요. 그러면 자원이 있는 곳과 연결해야죠. 지금은 안 될 수 있지만, 기술도 있고, 경제성도 있고, 상상력도 있습니다.” 그에게 슈퍼그리드는 단지 기술적 시나리오가 아니다. 에너지 체계를 ‘국가 단위’가 아닌 ‘지역 협력 단위’로 확장하는 철학의 문제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따지지 않아요. 그 대응도 국경 밖에 있어야 합니다. 슈퍼그리드는 연결을 말하는 거예요. 지금 필요한 건, 바로 그 연결을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기술은 있는데, 정책이 못 따라 가고 있다


에너지 정책이 기술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20세기의 사고방식이 21세기의 기술을 억누르고 있다’고 그는 표현한다. “우리는 아직도 중앙에서 만들고, 송전선으로 보내는 시스템에 갇혀 있어요. 그게 20세기 모델입니다. 지금은 전기를 저장하고, 제어하고, 필요한 곳에서 바로 쓰는 구조로 갈 수 있는데도 말이죠.”

그는 현재 기술만으로도 계통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압 불안정? 무효전력 하나로 해결돼요. 출력 변동? ESS 쓰면 됩니다. 이미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상용화 단계고, 우리도 다 갖고 있어요. 그런데 정책 설계자가 이 기술을 몰라요. 이해가 없어요.”

정책 결정 테이블에 기술자가 없다는 점도 그는 지적한다. “정책을 짜는 사람 중에 무효전력 개념을 아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송전은 아는데, 계통 제어는 몰라요. 그러니 기술이 있어도 못 쓰는 거죠.” 그는 기술자들이 설계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해법들이 계속 묻히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그는 자신이 속한 실증 과제에서 신재생 출력 제한 문제를 지역 단위 ESS와 보상 장치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단가, 적용 범위, 파형 안정성까지 다 나왔어요. 현장에서는 충분히 작동할 수 있는데, 정책은 늘 대규모 송전선밖에 안 봅니다. ESS를 보조 기술로 보는 거죠.”

그는 이러한 접근이 결국 ‘국가적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기술이 있는데도 안 쓰면, 나중엔 예산은 더 쓰고 효과는 줄어들어요. 송전선만 늘리면 뭐합니까. 전기가 흘러야 의미가 있죠. 지금은 흐름이 막혀 있는데, 도로만 넓히고 있는 겁니다.” 결국 그는 에너지 시스템을 바라보는 정책적 시야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은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그런데 정책은 자꾸 구호로 시작해요. 기술 없이 설계된 전환은 오래 못 갑니다. 지금은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이 설계에 들어와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계통 전환'을 말할 때


이순형 교수는 지금의 에너지 정책에서 가장 간과되고 있는 핵심으로 ‘계통 전환’의 부재를 꼽는다. 신재생 발전소 설치가 곧 에너지 전환이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발전은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전기는 아무 데로나 보낼 수 없습니다. 그 흐름을 만들어 주는 게 계통이에요. 그게 없으면 설비는 다 죽는 겁니다.”

실제로 지금 전국적으로 34GW에 달하는 신재생 설비가 계통 접속을 기다리며 멈춰 있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 약 30기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기는 만들었는데 보낼 수가 없어요. 이미 다 깔아 놨는데, 한전에서 ‘접속 못해 준다’고 합니다. 5~6년씩 대기해야 한다는 말이 나와요. 이게 시스템입니까?”

이 교수는 기존의 전력 계통 구조가 산업화 시대의 소비지 중심 모델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수도권이 수요 중심이었고, 그걸 중심으로 송전망이 설계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신재생이 외곽에 깔립니다. 방향이 거꾸로예요. 그런데 계통망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이에요. 역송전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는 이러한 계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로 증설이 아니라, 계통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정부는 송전선에 58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중 일부, 7조 원만 ESS나 무효전력 장치에 썼으면 지금 문제가 훨씬 나을 거라고 봐요. 기술은 다 있는데, 그걸 왜 안 쓰는가? 방향이 틀린 겁니다.”

현행 정책이 충분한 기술적 시뮬레이션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에너지 전환은 2060년, 2080년까지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과학의 문제예요. 그런데 지금은 몇 퍼센트 늘리겠다는 목표만 있고, 그 전력이 어디서 어떻게 흐를지를 계산한 자료는 없습니다.”

계통 없는 전환, 설계 없는 구호가 만든 결과는 출력제한, 수용 불가, 전기 폐기라는 실질적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에서 꺼져 있는 신재생 설비들을 '국가적 낭비'라 표현하며, "설치가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야 전환이 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지금 전환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씁니다. 그런데 전환은 체계 전체가 바뀌는 거예요. 생산, 송전, 저장, 소비, 수요처까지 모두 새로 짜야 합니다. 그 핵심이 계통입니다. 지금은 그걸 말할 때입니다.”


에너지청이 필요하다


이순형 교수는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묻는 질문에 단호하다. “지금은 산업부 일부 부서에서 전국의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고 있어요. 세계 여섯 번째 전기 다소비국이 이런 체계로 운영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의 에너지 정책 조직 구조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 간 에너지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이 없다. “도로는 국토청이 따로 있잖아요. 왜 에너지는 그런 조직이 없는 겁니까? 중앙엔 기후에너지부가 있어야 하고, 지방엔 에너지청이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전남청, 경남청 이런 식으로요.” 그는 독일,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이 이미 중앙과 지역이 분권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나누어 설계하고 실행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는 에너지 자급률이 9.3%인데, 전남은 198.9%예요. 지역 간 수요와 공급, 송전 구조를 다시 짜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지역 맞춤형 설계는 중앙부처에서 일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역을 아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그는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행정조직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책은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지금 체계에선 전문 인력이 남지도 않고, 책임도 없어요. 그래서 에너지청이 필요한 거예요. 기술자와 행정가가 함께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죠.”


정책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다


이 교수는 '에너지 정책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정권은 5년이고, 에너지는 50년이에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출렁이면 국민이 불안해지죠. 그건 정책이 아니라 구호입니다.” 그는 지금의 정책 설계가 단기적인 정치 논리에 좌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정치인이 ‘탄소중립’, ‘탈원전’, ‘에너지 전환’ 이런 말을 먼저 던져요. 그런데 그 안에 과학도 없고, 설계도 없어요. 기술자들은 그냥 뒷수습하는 거예요.” 그는 정책이 구호와 캠페인 중심으로 흐르는 현 상황을 '거꾸로 된 정책 설계'라며 비판했다.

“정책은 기술자가 설계해야 해요. 데이터를 보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전체 시스템을 보는 사람이 설계를 해야죠. 정치인은 그 설계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예요. 기술 없는 구호가 정책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또 하나의 핵심 조건으로 ‘철학’을 꼽았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떤 에너지 구조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우리는 지역 분산형 전력 시스템을 가겠다’, ‘기저 발전은 어떻게 유지하겠다’, ‘수요처는 지역 중심으로 분산하겠다’ 같은 큰 틀의 방향이요. 그런 철학이 있어야 정책이 일관성을 갖고 가요.”

정책은 기술과 철학, 그리고 책임의 구조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설계가 없으면 정책은 그냥 종이쪼가리예요. 구호가 아니라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정책입니다. 지금은 그게 가장 부족해요.”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것


이순형 교수는 비판보다는 대안에 집중한다. 비록 지금까지의 에너지 정책이 실패했다고 진단해도 “지금 다시 설계를 시작하면 된다”고 말한다. “에너지 전환만 얘기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계통이 바뀌지 않으면 전환은 없습니다. 출력제한, 대기전력, 낭비되는 설비들… 이게 다 계통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는 ‘에너지 정책’이란 말보다 ‘에너지 시스템 설계’라는 말을 한다. “정책이라는 건 시스템 설계입니다. 이 시스템은 기술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 데이터, 제도, 그리고 철학까지 포함된 거죠. 지금 설계가 없으니 짜면 되고, 철학이 없으니 채우면 됩니다.” 이미 계통 해소를 위한 기술도 있고, 지역별 수요에 대한 데이터도 존재하며, 현장에는 준비된 기술자들도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정책이 그 모든 자원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그냥 송전선 몇 개 더 까는 게 아니라, 지역 수요와 기술, 계통 흐름을 모두 반영한 설계를 시작해야 해요. 구호는 이제 충분히 들었잖아요?” 마지막으로 그가 덧붙인다. “지금 우리가 잘못하면, 이 낭비된 설비, 막힌 전력, 떠돌이 예산이 다 국민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설계 없이 외치는 전환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됩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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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2일 전

에너지전환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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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5일 전

적극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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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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