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생물들은 화석연료를 고갈시키지도 않고 지구를 오염시키지도 않으며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으면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전부 해 왔다. 이보다 더 좋은 모델이 어디에 있겠는가.
2024-12-13 김사름 기자
이인식은 지식융합연구소장(1995~)이며 청색기술연구소장(2024~)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1968)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2004~2006), KAIST 겸직교수(2009~2010), 문화창조아카데미 총감독(2016~2017)을 역임했다. 고정 칼럼 720편, 신문 550편, 잡지 170편, 일본 전문지 PEN(산업기술종합연구소)에 칼럼 연재(2011. 7~2011. 12), 저서는 53종(기획공저 및 편저 15종 포함)으로 『공학이 필요한 시간』, 『4차 산업혁명은 없다』, 『2035 미래기술 미래사회』, 『융합하면 미래가 보인다, 『지식의 대융합』,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미래 교양 사전』, 『나노기술이 세상을 바꾼다』 등이 있다. 특강은 융합 관련 강연 300회(2008. 11~현재), KBS-1 TV <일류로 가는 길>(2010. 9. 4) 등이 있으며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2005),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2007),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2008)을 수상했다. 중고등학교 국어, 사회, 영어 등 교과서에 칼럼 16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를 읽고 충격받아
1945년 광주에서 태어나 6세 때 부모님을 잃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광주서중과 광주제일고를 졸업했는데 문학을 좋아했지만, 돈을 벌고 싶어서 가장 인기 높았던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에 갔다. 졸업 후 첫 직장은 럭키금성(현 LG)이었다. 문학을 버리지 못해 1975년 『환상귀향(幻想歸鄕)』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1년 가을, 미국의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을 보고 충격받았다. 논리학자 괴델, 화가 에셔, 작곡가 바흐가 서로 어떻게 지성적으로 융합돼 있는지 분석한 책이다. 갑자기 뭘 하며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작정 사표를 냈다. 1992년, 당시 46살이었다. 퇴직금을 털어 『정보기술』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해외 기술 동향을 소개했는데 광고 수주를 못하니 결국 2년도 안돼 문을 닫았다. 그때부터 프리랜서가 되었다.
과학기술의 얼리 어답터
언론에서 '과학칼럼니스트 1호'라고 부른다. 첫 칼럼은 1992년 4월 『월간조선』에 나노기술을 소개한 글이다. 국내에 나노기술을 처음 소개한 글이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인공생명, 신경컴퓨터 등 당시에는 낯선 과학기술들을 국내에 소개했다. 『동아일보』 등 신문칼럼 560편, 잡지에 170편 등 700편 이상의 칼럼을 썼다. 저술한 책은 총 53권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160여편 글이 수록됐다.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도 받았고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2006년 『과학동아』 창간 20주년 최다 기고자 감사패를 받았고, 2008년 서울대 자랑스러운 전자동문상을 받았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날아가 버린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나중 되면 다 알게 된다. 얼리 어답터가 된 이유다. 글을 쓸 때 남이 알고 있는 주제나 소재는 쓰지 않으려면 최신의 정보를 알아야 한다. 과학칼럼은 자료가 생명이다. 자료들 사이의 관계를 읽어 낼 줄 알아야 한다. 널려 있는 자료들 가운데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뿌리를 봐야 한다. 최신 자료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연원과 맥락의 뿌리가 있다. 그걸 알아내고 정리할 수 있어야 진짜 칼럼니스트다.
‘지속가능 발전’을 향한 접근
1972년 초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를 냈다. 인구 팽창, 공업화, 자원 고갈로 이대로 간다면 전 세계가 파멸한다는 경고의 메세지였다.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펴낸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는 당시 의장이었던 노르웨이 총리 이름을 따서 '브룬트란트 보고서'라고도 하는데 ‘지속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정의했다. ‘지속가능 발전’은 후손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채우는 발전이다. 정리하자면 지속가능 발전은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발전이다.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 설정이다. 자연이 중심이고 스승이며, 인간은 자연에 지식과 생존을 의존한다는 새로운 관점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혁신,'생체모방'
1997년 미국의 생물학자인 재닌 베니어스(Janine Benyus)는 『생체모방Biomimicry』에서 지속가능 발전의 추진 방법을 제시했다. 이 책을 계기로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물영감(bioinspiration)'과, 생물을 본뜬 '생물모방'이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로 떠올랐다. 베니어스는 '생물모방'을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혁신(innovation inspired by nature)’이라고 정의했다.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은 자연 전체가 모델이어서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다. 2005년 미국의 물리학자 요세프 바 코헨의 ‘생물모방학(Biomimetics)’은 생물학, 생태학, 생명공학, 나노기술, 재료공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인공생명, 신경공학, 생체전자공학(바이오닉스),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 건축학, 에너지 등 최고의 첨단 과학기술이 다 포함되어 있다. 자연 혹은 생물은 이미 38억 년의 R&D를 거쳐 우리가 지금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해결해 놓았다. 자연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모방하면 최상의 ‘지속가능한’ 기술이 된다는 것이 '생체모방'이다. 자연은 우리가 찾고 있는 해답을 이미 다 갖고 있고 자연을 멘토로 삼아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자연에는 과학적이지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군터 파울리의 '블루이코노미(The Blue Economy)'
2008년 10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회의에서 발표된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Nature’s 100 Best)'은 생물로부터 영감을 받거나 생물을 모방한 2100개 기술 중 가장 주목할 만한 100가지 혁신기술을 선정했다. 이 보고서를 만든 사람이 재닌 베니어스와 군터 파울리다.
군터 파울리가 2010년에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을 경제적 측면에서 조명한 『블루이코노미The Blue Economy』를 썼다. 하늘도 청색이고, 바다도 청색이고, 우주에서 내려다 본 행성 지구도 청색이다. 그래서 블루이코노미다. 부제가 ‘10년 안에 100가지의 혁신기술로 1억 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10 year, 100 innovation, 100 million jobs)’인데 생태계의 창조성과 적응력을 활용하는 청색경제가 고용 창출을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군터 파울리는 세계 최대의 환경기업 에코버(Ecover)의 설립자로 벨기에 출신의 기업인이다. 생태계가 하는 방식 그대로 인간도 재생 가능한 자원과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의 원리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퍼스트 무버, 블루테크놀로지(blue technology, 청색기술)’을 주창하다
2024년 올해로 79세다. 2012년 처음 '청색기술'을 제안한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를 집필한지 10여년이 넘었다. 당시에는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을 아우르는 단어가 없어 ‘자연중심기술’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라는 단어도 그때 제안했다. '블루이코노미(The Blue Economy)'에서 영감을 받았다. ‘녹색기술’이 발생된 탄소를 줄이자는 것이라면 ‘청색기술’은 원천적으로 탄소를 발생시키지 말자는 기술이다.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인류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청색기술'이다. '청색기술'은 생물에서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는 ‘생물영감’, 생물을 본뜨는 기술인 ‘생물모방’, ‘자연중심기술’ 등의 단어를 융합했다. '청색경제'와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에 『인더스트리 5.0』을 출간했다. 경제인들이 읽어야 한다. 2017년 대통령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4차산업혁명'을 공약을 내걸더니 미국에서조차 통용되지 않는 개념인 '4차산업혁명'이 대한민국의 국정 목표가 되어 있다. 4.0에는 환경이 없다. 더구나 팬더믹을 거치면서 유럽을 비롯해 세계는 '5.0'으로 움직였다. 한국만 머물러 있다. 지난달, ‘청색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2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생태기술' 뉴스레터를 보내 주고 있다. 900회가 넘었다. 대한민국이 '청색기술'로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가 되었으면 한다.
'플랜 드로다운(Project Drawdown')과 청색기술
기후위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도전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실질적이고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폴 호컨(Paul Hawken)의 『프로젝트 드로다운Project Drawdown』이다.
’드로다운(drawdown)’은 기후 용어로 온실가스가 최고조에 달한 뒤 매년 감소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말한다. 폴 호컨은 이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 각 나라의 과학자들, 공공 정책 전문가들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그리고 전 세계의 가장 권위 있는 기관에서 폭넓은 학문적·전문적 경험을 쌓아온 이들이 답장을 보내 왔다. 그렇게 모인 70명의 연구진이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기후변화 대책 100가지를 집대성한 것이 '프로젝트 드로다운’이다. 2017년 처음 공개된 연구로 100개의 방법론에 순위를 정했는데 1위부터 25위까지를 보면 15개가 '청색기술'이고 60%를 차지한다. '청색기술'이 기후위기 해소 기술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CE)는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경제모델이다. ‘자원 채취(take)-대량 생산(make)-폐기(dispose)’의 3단계 또는 ‘생산-유통-소비-수거 및 폐기’의 4단계로 끊어지는 기존 선형경제(Linear Economy: LE)의 대안이다. 순환경제는 원자재가 폐기되기 전까지 기획(Design), 생산(Production), 소비(Use), 데이터 기반(Consumption), 재생(Reuse, Repair, Re-manufacturing), 재활용(Recycle)의 단계로 순환하는 체계다. 1989년 영국의 환경경제학자 피어스와 터너가 발전시킨 개념인데 유럽연합(EU), 중국의 제11차 5개년 계획, 파리기후협정, 세계지식포럼 등에서 이 순환경제를 수용하면서 대안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선형경제를 바로 순환경제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경로를 바꾸면 경제가 무너진다. 조금씩 순환경제의 개념을 현 경제 구조에 집어넣어야 한다. 여기에 ‘청색기술’이 중요하다. 금융 자본주의가 몰락해 가고 있다. 지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연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불끄는 방법, 'ABC 혁신 국가'론
2020년, 21대 국회에서 ‘청색기술개발 촉진법안’이 입법 예고됐었다. 법안에서 '청색기술'을 자연현상, 생태계 또는 생명체의 기본 구조 또는 원리를 응용하여 개발된 기술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청문회에 갔더니 청색기술이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결국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기후위기라고, 불났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불 끄는 방법을 말해야 한다. 지구도 지키고 경제도 살리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이 '지속가능 발전'이고 '청색기술'이다. 중국은 이미 '청색기술' 교육을 시작했다. 군터 파울리의 '우화 (Gunter's Fables, 군터의 우화)' 365권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초청까지 했다. 군터의 우화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성공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세계적인 교재다. 중국의 학생들은 이미 자연을 모방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청색기술'을 배우고 있다. 정부의 리더들이 변해야 한다. ABC혁신 국가를 만들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ABC혁신국가의 'A'는 인공지능 기반의 디지털 전환이고 'B'는 블루테크놀로지, 청색기술 기반의 생태적 전환이다. 'C'는 컬쳐, 문화기술의 인본적 전환이다. 'A'는 기계고, 'B'는 자연이고, 'C'는 사람이다. 사람과 기계,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문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ABC 혁신국가론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연'이다. 이대로 가면 큰일난다.
인공지능(AI)이 아니라 기계지능이라고 불러야
199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지과학 개론서인 『사람과 컴퓨터』를 출간했다. 32년 전에 오늘날 인공지능 분야에서 다뤄지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 소개했다.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한 존 홉필드도 그때 처음 소개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스스로 의미를 찾는 학습능력, 시각인식·음성인식 등의 지각능력, 자연언어를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능력 등 5가지가 다 구현되어야 인공지능(AI)이다. 알파고는 5가지 능력 중 두 번째인 학습능력, 즉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에 국한된 연구 산물이다. 인지과학의 출발이 인공지능이었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 마음을 연구하는 것이다. 뇌는 생물학적으로 신경세포가 전기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다 알지만 '마음'은 설명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기계지능'이라고 말해야 한다. 기계의 지능이 지금 좋아지는 것이다. 인간의 머릿속에 무의식이 98%다. 신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정서, 무의식이고 사람의 마음은 인지와 정서의 융합적 산물이다. 인간이 알파고처럼 무조건 이기려고 하지 않는 이유다. 양심과 양보, 배려심, 측은지심 때문에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 인간의 행동은 90% 이상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것을 알고리즘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정부가 인공지능 국가위원회를 만들고 엄청난 돈을 쓰겠다고 한다. 한국은 인공지능에서 할 게 없다. 인공지능 원천 기술 개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할 일은 활용 기술이다.
엔드 유저 테크놀로지(End User Technology)
다음 시대의 리더는 '민생기술'을 해야 한다. 과학기술로 모든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나라가 돼야 한다. 과학기술은 '따뜻한 기술(Friendly Technology')이어야 한다. 민생기술을 영어로 하면 '엔드 유저 테크놀로지(End User Technology)'다. 최종 사용자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국가 전략 과학기술 12가지가 있다. 반도체, 모빌리티 2차 전지 등인데 산업기술이다. 5천만 국민을 위한 민생기술이 없다. 민생기술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벤처를 키워야 한다. 두 번째는 ESG 개념을 가지고 사회 양극화를 해소시켜 줘야 한다. 세 번째는 기후 기술, 탄소중립 실현이다.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키는 기술이 민생기술이다. 청색기술은 벤처 창업이 되고 ESG 개념이 충족되고, 기후테크다. 민생기술 개념을 실천하는 것이 청색기술이고 그것을 통해 ABC혁신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서 개개인의 삶을 지켜주는 것이 '인간 안보 기술'이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국가의 리더는 인간 안보 개념을 가져야 한다. 국가는 민생기술, 인간 안보 기술을 추진하고 산업 현장에서 청색기술로 현실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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