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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 식물의 사회생활, 식물의 위기는 인간의 위기다

 

황희정 기자 2024-10-04

이영숙 식물생리학자. 식물이 지닌 여러 기능의 근본 원리를 유전자 수준, 세포 수준, 개체 수준에서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식물학과,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박사. 하버드대 연구원, 1990년부터 2022년까지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한국식물학회 부회장, 《뉴파이톨로지스트》 편집자, 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 활동했다. 특히 식물의 생장과 발달에 필수적인 식물 ABC 수송체 유전자들에 관한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미국식물학회의 교신회원상, 미국학술원의 코차렐리상을 수상했다. 한국과학상, 삼성행복상 창조상등을 수상했다.

이영숙 교수는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코네티컷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박사 과정 후 1년간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원 근무했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후 2021년 부터 명예교수로 있다. 2004년 6월부터 2005년 5월까지 국가 과학기술 대통령 자문위원회 위원, 2004년부터 2009년까지 과학기술 홍보대사, 2011년 4월부터 2012년 1월까지 국가과학기술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한림원 회원이다. 로레알 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미국 학술원 논문상(Cozzarelli Prize), 한국과학상, 삼성행복대상 창조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미국 식물학회 교신회원으로 선출됐다. 저서로는 『식물의 사회생활』(이영숙, 최배영, 2024)이 있고, 지금까지 14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반려견 복자와 복자가 낳은 강아지들의 이야기를 유튜브 ‘시바견 복자’ 채널에 올리고 있다. 과학적이지만 따뜻한 말과 글로 일반대중과 학생들에게 온기가 있는 과학을 전해주고자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식물과 동물을 좋아했다.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식물을 공부하는 게 정서적으로 더 나을 듯해서 식물학과를 선택했다. 일반사회, 지리, 문학도 좋아했지만 그런 분야는 취직이 어렵다는 말이 많아 이과를 갔다. 서울대학교 식물학과 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미국 코네티컷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박사 과정에서는 잎을 움직이는 식물 중에서 밤에 잎을 접는 식물을 대상으로 어떻게 생체시계가 작동해 잎을 움직이고, 그런 움직임을 일으키는 힘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연구했다. 대학원에서 루쓰 새터 선생님이 지도교수였다. 제자 사랑,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 등에 감명받았다. 선생님이 운동을 너무 안 한다고 염려하시면서 자전거를 주셨다. 학교에서 탱글우드까지 40km를 타고 갈 수 있어야 졸업시켜 주시겠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길러졌다. 몇 년 후 정말 자전거를 타고 탱글우드라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캠프가 있는 곳까지 선생님과 함께 갔다. 기억에 남는다. 많이 모자르지만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잘 하려고 애썼다.


식물ABC수송체 연구로 세계 선두를 달리다


식물의 생장과 발달에 필수적인 식물ABC수송체 유전자들을 연구했다. ABC수송체는 세포막에서 물질을 수송하는 단백질인데, 박테리아부터 곰팡이, 식물, 동물, 사람까지 거의 모든 생명체의 세포에 있다. 이 ABC수송체는 독성 물질을 제거하고 독성 물질에 대한 내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세포에서 ABC수송체는 독성 물질을 제거할 뿐 아니라, 생장발달에 필요한 물질들을 운반한다. 2000년대 초, 식물이 중금속에 노출되었을 때, 독성을 견디게 하는 유전자가 있는지를 찾다가 ABC수송체 중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 후 2022년까지 우리 실험실에서 23가지 식물의 ABC수송체들을 연구해서 그들이 하는 일들을 밝혔다. 그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연구는 스트레스 호르몬 앱시스산, 독성 물질 비소, 식물 생장 호르몬 사이토키닌을 나르는 것과, 지방산을 수송해서 지방 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활발한 연구로 우리 실험실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20년까지 식물ABC수송체의 연구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갔다. 그 업적의 탁월성을 인정받아 2013년 미국 식물학회 교신회원으로 선출됐다.


식물도 사회생활을 한다

『식물의 사회생활』 은 한곳에 뿌리내린 식물이 다른 식물, 미생물, 동물, 인간과 맺는 친밀하거나 적대적인 모든 관계를 풀어낸다. 먹고 먹히며 살아 남고 살아가는 식물들의 전략적 삶에서 기후위기의 시대, 어떻게 이 모든 생명체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식물의 사회생활』 은 한 곳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이 다른 식물, 미생물, 동물,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소개한다. 먹고 먹히며 살아 남고, 살아 가는 식물들의 전략적 삶에서 기후위기의 시대, 어떻게 이 모든 생명체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식물은 한 곳에 뿌리내려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사회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옆에 있는 다른 식물, 미생물, 동물, 인간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 상호작용 중에는 서로 돕기도 있고, 경쟁도 있고, 싸움도 있고, 이용하기도 있다. ‘사회생활’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해 『식물의 사회생활』이란 책을 쓰게 됐다. 식물이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할 때, 식물은 수동적으로 내주기만 하고 싸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받아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다른 생명체들은 식물에 의존해서 살기 때문에 식물이 많은 것을 준다는 생각은 맞다. 하지만 실제로 식물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도, 순순히 모든 것을 다 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많은 생명체를 자신의 성장과 생식에 이용한다. 박테리아나 곰팡이들과 공생관계를 맺어 영양분을 얻고, 곤충들을 생식에 이용하기도 한다. 더욱이 식물은 병균이나 초식동물의 공격에 대응하려고 여러 독성 물질을 만들었다. 식물을 먹는 생물들은 이런 독성 물질을 해독하는 방법들을 또다시 발전시켜야 했다. '식물의 사회생활'은 다른 나라의 위협에 대비한다고 경쟁적으로 무기를 개발하는 현대 국가들의 군비 경쟁과도 유사하다.


식물의 위기는 인간의 위기다


식물은 다양한 사회생활로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든다. 그렇게 이웃 생명체들과 맺는 친밀하거나 적대적인 여러 관계 속에서 식물이 사회생활에 성공할 때, 인간 사회에도 좋은 영향이 온다. 식물을 작물로 개량해 재배하면서 인간은 엄청난 양의 잉여 칼로리와 물자를 얻게 됐다. 그 결과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증가한 사람들이 먹고 입고 쓸 것을 마련하며 자원을 소비한 결과, 지구환경은 빠르게 변화했고 이는 식물의 사회생활과 생존을 위협한다. 식물을 비롯한 여러 생명체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보호해야 인간은 이 지구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과거에도 많은 도전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잘 극복해 왔다. 현재 직면한 위기는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해 보이지만, 정확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그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힘을 합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희망한다. 병이 난 지구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생명체들을 이해하고 모든 생명체가 같이 어울려 안정적으로 살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 그 기초는 광합성해서 양식을 제공해 주는 식물이 지구 생태계의 중심으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식물에게 시간과 공간을 충분하게 주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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