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 기자 2024-04-02
이유미 박사는 식물분류학자다.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에서 석사, 동 대학에서 식물분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수목원 연구사로 시작해 원장이 되었다. 국립세종수목원이 만들어질 때는 초대원장이 되었고 2대 원장을 거쳐 현재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로 활동 중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문화재 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내 마음의 들꽃 산책』(2021), 『우리 나무 백가지』(2015, 개정), 『내 마음의 나무 여행』(2012),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2011), 『한국의 야생화』(2010),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2004), 『어린이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과사전』(2005) 등이 있다.
식물학자에서 산림청 최초, 여성 고위 공무원까지
어머니가 식물과 꽃을 굉장히 좋아했다. 봄이면 항상 어머니와 함께 집 마당에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키웠다. 꽃과 식물이 주변에 가득했고 감정적으로 가까웠다. 식물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당시 이과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가 매력이 없었다. 산림자원학과는 서울대에서 가장 오래된 학과다. 내가 여섯 번째 여학생이었다. 당시에는 여자라서 어떻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남자들과 똑같이 산에 가고 똑같이 힘든 일을 했다. 식물과 관련된 일이 정말 좋아서 열심히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다. 언론에서 산림청 개청 이래 최초의 여성 고위공무원이라고 썼다. 그 이후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는 여성 후배들을 돕고 지지하고 이끌어 주는 것이 사회에서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앞에 여성이 붙은 활동을 많이 해본 적은 없지만, 틈틈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처음에 '식물학 해서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지금은 부러워한다. 자연을 공부하고, 평생 이 분야에서 일하며 산 것이 정말 감사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만들다
식물학은 굉장히 포괄적이다. 식물을 연구하는 게 식물학인데, 세상에 정말 많은 게 식물이다.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식물에 대한 기초를 다지고 데이터를 쌓아 왔다. 그것을 기반으로 응용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워낙 빨리 발전하다 보니 기초를 탄탄히 하는 게 취약했다. 내가 평생 일했던 국립수목원에서 산림 자원에 대한 기초 조사를 정말 오랫동안 공들여 해 오고 있다.
식물이 자원이다. 식물 주권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의 식물이냐, 아니냐를 알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그 식물에 대한 시간적, 공간적 기록이다. 이게 증거가 되는 표본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다 타버리고 없었다. 그래서 이 식물이 우리나라 자생종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는 표본판을 만들고 우리나라 식물 주권의 기초가 되는 일들을 했다. 당시 한국은 식물명조차 정리가 거의 안 돼 있었다. 식물명을 제대로 이름 붙이는 것은 식물학의 시작이다. 그래서 분류학회와 국가가 함께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만들었다. 멸종식물보존사업, 보존연구도 오래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사라지는 식물들을 찾아내고 정리하고 보존하고, 또 자생지에서 사라진 것들은 복원하는 일, 이런 기반에 해당되는 일을 정말 많이 했다.
세계적인 시드볼트,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우리나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전 세계 시드볼트 두 곳 중 하나다. 시드볼트는 쉽게 말하면 노아의 방주다. 재난을 대비해 안전하게 블랙박스에 넣어, 깊은 지하시설에 종자를 저장하는 시설이다. 하나는 스발바르 시드볼트로 우리가 당장 먹는 식량 자원을 저장했다.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시드볼트는 더 나아가 야생 종자를 저장한다. 야생 종자를 저장한 시설로는 세계 최초다.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전 세계에서 부러워한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국제원예박람회에서는 한국관이 금상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주의 정원이 트렌드다. 식물을 소모적으로 쓰지 않고 자연과 벗 삼는 우리나라의 정원 문화가 자연주의 정원 트렌드와 맞물리고 있다.
숲과 사람사이에 수목원과 정원이 있다
숲과 사람 사이에 수목원과 정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민들이 이러한 수목원과 정원을 좀 더 친밀하고 가깝게 느끼고 활용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목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수목원은 인력, 소재, 연구, 교육, 자원의 보존 등에 있어 많은 일을 하는 꼭 필요한 곳이다. 우리나라는 수목원을 1년에 한 번 꽃 구경하는 곳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때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잎이 나는 게 다르니, 자주 와서 식물을 가까이하면서 내 삶이 초록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자연은 어느 날은 영감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평화이기도 하다. 자연이 우리에게 돌려주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시선을 조금 더 가까이하면 식물은 정말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며, 우리의 친구가 돼 줄 거라고 생각한다.
사라지는 식물들, 그리고 돌발병원균들
평생 식물을 찾으러 다녔다. 연구자로 열심히 뛸 때는 희귀한 식물을 찾으러 1년 중 반을 산과 들에서 살았다. 머릿속에 이때쯤 한라산 무슨 자락에 복수초가 피어 있고, 지금 설악산 어디쯤 바람꽃이 필 때라는 예상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 벚꽃축제 시즌인데 올해는 벚꽃이 안 펴서 난리다. 작년에는 너무 빨리 펴서 난리였다. 벚꽃 피는 시기도 예측을 못한다. 벌, 나비와 같은 폴리네이터까지 생각하면 기후위기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한라산은 우리나라 생물 다양성의 핫스팟이었는데 지금은 키 작은 대나무로 덮여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불리는 구상나무는 정말 인기가 많다. 그런데 지금 거의 사라지고 있다. 돌발병원균, 돌발해충들도 이런 맥락에서 발생한다. 그 균과 곤충이 예전에 없었던 게 아니다. 그동안 자연 속에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서로 조화롭게 살았는데 기후 이상으로 균형이 깨지면서 돌발병원균, 돌발해충으로 변해버린 거다.
기초과학을 세워야 한다
식물분류학은 숲을 구성하는 다양한 식물 하나하나를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각 식물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흘러갔고, 서로 어떤 혈족 관계인지를 살펴 분류하는 학문이다. 우리나라 희귀 멸종식물을 보존하고 자원화하는 첫 단계는 '무슨 식물인지를 아는 것'이다.
식물학에는 식물분류학도 있고 식물생태학도 있고 식물생리학도 있다. 식물분류, 식물생태, 식물생리 분야가 기초과학이라면, 산림자원학은 응용이다. 기초를 잘 다지고 나서 산업적으로 응용해야 한다. 대학이 성과와 실적 중심으로 변하고 학생들의 취업이 최우선이 되다 보니 기초과학이 사라지고 있다. 공공기관, 국가기관이 기초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식물학과가 하나로 통합되고 기초과학이 약화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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