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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은수 | 과학은 늘 시험대에 오른다, 『스켑틱(SKEPTIC)』

 

홍석근 기자 2024-04-18


 『스켑틱』 한국어판을 이끌고 있는 바다출판사의 김은수 기획편집부 팀장. 사진_ 바다출판사 제공


한국 사회는 과학적 인식과 전통적 관념 사이 어딘가에서 행진 중이다. 우리 사회의 과학적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매체로 『스켑틱(SKEPTIC)』을 꼽을 수 있다. 『스켑틱』의 한국어판인  『스켑틱 코리아』는 1호에서 39호까지 국내외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들려 주었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 역시 제공했다. 요즘 과학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열풍이 아마도 이 잡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스켑틱 코리아』의 출간을 책임지고 있는 바다출판사의 김은수 기획편집부 팀장을 인터뷰했다.


 

과학과 비과학의 사이에서


대학 때 이곳저곳을 떠돌다 철학을 복수 전공하게 됐다. 철학사에 치중된 공부에 점차 지쳐갈 때쯤 과학철학이라는 수업을 만났다. 수업의 인연으로 폴 데이비스의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와 『신의 마음』을 2년 동안 강독하며 과학철학의 재미를 알았다. 그렇게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으로 진학해 생물철학자 장대익 교수의 지도로 일반 과학철학과 과학철학의 특수 분야인 생물철학을 공부했다.

이때 대니얼 데닛의 시선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근간에 있는 철학적 문제를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 가령 도킨스가 말하는 유전자는 현대 분자 생물학자들이 사용하는 유전자 개념과 상당히 다르게 사용되는데, 이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물리적 대상일 뿐인 유전자에 심리적 속성인 이기성을 부여하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이 외에도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 문제와 과학의 방법론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공부했다.

공부의 재미와 별개로 학자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 아닐지 의심할 때쯤, 『스켑틱』의 한국어판을 2015년 창간한 대학원 동기 박선진 편집장이 함께 해 보자고 제안했다. 대학원에서의 배운 것과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아 합류했다. 3호부터 합류해 13호까지 2인 체제로 운영하다가 13호 이후 편집장으로 『스켑틱 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스켑틱』의 '과학적 회의주의'는 검증을 통해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


미국에서 『스켑틱』이 창간한 1992년은 창조과학, 뉴에이지, 사이비 과학, 사기와 속임수와 같은 반과학 움직임이 한창이었다. 『스켑틱』은 이들에 반하는 과학 운동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클 셔머를 중심으로 뜻을 함께하는 리처드 도킨스, 제러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핑커, 도널드 프로세로, 제임스 랜디 등이 편집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런 정신은 비범한 주장들을 검증하고, 과학과 이성을 증진시키며, 건전한 과학적 관점을 찾는 이들에게 교육적 도구를 제공한다는 『스켑틱』의 기치에 잘 반영돼 있다.

『스켑틱』이 추구하는 ‘과학적 회의주의’는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 방법의 본질을 표방한다. 과학적 방법은 모든 사실이 잠정적이며 늘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본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생각이 검증의 대상이며 이를 통해서야만 보다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한국 스켑틱 편집부가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며 그 가치를 잡지에서 녹여낼 수 있도록 늘 고민하고 있다.



대중 과학 문화가 성숙하면서  『스켑틱』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껴


『스켑틱 코리아』는 2015년에 창간했으며 현재 37호까지 출간되어 곧 10주년을 앞두고 있다.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올리버 색스 등의 과학 대중서가 본격 도입되고, 1세대 국내 과학 저술가의 등장하면서 2000년대는 대중 과학 문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 들어 과학 문화가 점차 성숙함에 따라 우리도 『스켑틱』의 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고 봤다.

일본, 프랑스 등 다른 언어권에서는 미국 『스캡틱』을 현지화한 것은 『스켑틱 코리아』 외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국의 『스켑틱』이나 호주 『더 스켑틱』, 미국의 『스켑틱 인콰이어러』 등 회의주의를 표방하는 잡지들이 있지만, 마이클 셔머가 발행하는 미국의 스켑틱 매거진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켑틱 매거진을 현지화한 것은 국내가 유일하다고 알고 있다.


이슈 속에서도 본질적인 주제들을 다뤄 오랫동안 읽을 수 있도록 구성


『스켑틱 코리아』의 원고 구성은 크게 커버스토리, 포커스, 컬럼, 뉴스앤이슈, 테마, 어젠더, 집중연재로 구성이 된다. 커버스토리와 포커스는 특집 주제로 해당 시기의 이슈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특히 커버스토리의 경우는 한 주제를 놓고, 될 수 있으면 한 호에서 찬반 입장을 독자들이 모두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보통은 과학의 결과나 과학적 사실들이 이미 결판이 난, 결정된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과학에서 모든 사실은 단지 잠정적일 뿐이다. 그렇기에 과학은 논쟁을 통해 발전한다. 한국어판에서는 특집에서 논쟁의 찬반 입장을 제공하여 형식에서도 이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뉴스앤이슈나 컬럼은 최신의 이슈들을 주로 다루고, 어젠더와 테마는 보다 묵직한 주제들을 다룬다. 집중연재는 무엇보다 국내 저자들의 장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긴 호흡으로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스켑틱』과 『스켑틱』 한국어판을 비교해 보자면, 한국어판이 좀 더 단행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볼륨도 두껍고, 실리는 기사의 수도 미국 『스켑틱』보다 좀 더 많다. 이는 잡지의 특성상 이슈를 다루기는 하지만 이슈 속에서도 본질적인 주제들을 다뤄 독자들이 오랫동안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30대와 40대 여성 독자가 늘어나는 중


『스켑틱』 한국어판 창간 초창기에는 확실히 전문직과 과학자 중심의 50~60대 남성이 주를 이뤘다. 전통적인 과학서의 소비층이 스켑틱에 먼저 반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다가 최근 2~3년 사이 30대와 40대 여성 독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수학과 과학이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통념이 깨지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반가운 마음이다.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스켑틱』의 주제들. 사진_ 바다출판사 제공


특히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호들을 꼽자면 1호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14호의 ‘정신질환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21호 ‘코로나19와 질병 X의 시대’, 29호 ‘양자역학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32호 ‘성격이란 무엇인가’, 35호 ‘교양 과학서의 문제적 질문들’이 있다. 1호는 창간호여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아 2만 부 가까이 판매되었다. 35호의 경우는 국내 저자들이 적극 참여해 최근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교양 과학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리뷰 중심으로 구성을 했는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자체 편집권으로 국내 이슈를 다룰 수 있으며, 국내 과학 저술가 개발에 노력


기본적으로 『스켑틱 코리아』는 미국 『스켑틱』의 기본 관점에 대해 동의한다. 각 호를 준비할 때 어떻게 하면 스켑틱의 본연의 가치인 과학적 회의주의가 잘 구현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앞서 말했듯 특집 섹션에서는 찬반의 입장을 될 수 있으면 모두 담으려고 노력한다.『스켑틱 코리아』는 미국 『스켑틱』의 기사를 바탕으로 출발하지만 미국 『스켑틱』이 미국 상황에 기반하고 있어서, 그 특수성이 부각되는 기사들은 독자의 관점에서 배제하는 편이다. 이런 이유로 『스켑틱 코리아』와 미국 『스켑틱』의 특집이 항상 같은 건 아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 호가 다른 주제들을 특집으로 다뤘다. 자체적인 편집권을 갖고 있어 좀 더 국내 이슈들에 대해 다룰 수 있어 단순 번역보다는 더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더불어 『스켑틱 코리아』는 국내 과학 저술가 개발을 우리의 의무라고 여기고 적극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최신호인 37호를 예를 들면 , 커버스토리로 ‘인간의 권리, 동물의 권리’를, 포커스로 건강을 다뤘다. 건강 관련 주제는 미국 『스켑틱』의 특집 주제였는데 국내 맥락에서는 좀 약한 주제로 보였다. 그래서 최근 국내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동물권을 다뤄보기로 했다. 국내 저자들에게 글을 청탁했고 동물과 인간 사이에 윤리적 경계가 존재하는지, 둘 사이의 경계가 없다면 그 경계는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지, 육식을 하면서도 동물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와 같이 기존의 통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성을 마련했다.


기후온난화에 대한 두 입장, 그리고 일반인공지능에 관한


『스켑틱 코리아』 10호에서 지구온난화의 과학에 대해 다뤘다. 지구온난화가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큰 기후 변화 흐름에 속하는 현상인지를 두고 대립되는 입장을 다뤘다. 지금은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거의 확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미국에서는 지구온난화가 인위적 개입의 결과라는 입장과 인위적 개입이 아니라는 입장이 대립해서 논쟁을 벌여 왔다. 대개 후자는 기업을 대변하는 입장이라는 의혹을 받았지만 나름 제시하는 근거들도 있었다. 10호는 두 입장을 다루면서 기후 데이터에 근거해 어떤 입장이 더 지지받는지 종합적으로 다뤘다.

6월에 38호가 나올 예정이다. 최근 기후 문제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에너지’ 문제를 다뤄보려고 한다. 대개 에너지 문제는 핵발전의 사용 여부를 두고 재생 에너지 지지파와 핵에너지 지지파로 양분돼 정치적으로 소모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런 정치적 논쟁보다는 새로운 에너지의 가능성에 대해 고찰하며 제3의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38호에서는 최근 가장 핫한 ‘일반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특집을 구성하고자 한다. 2015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 정말 AI판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 듯하다. 과연 기계가 지능을 지닌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인간의 오랜 꿈인 인간과 같은 의식을 기계 안에 구현할 수 있을지 등 흥미로운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연재를 통해  국내 과학자들이 작가로 데뷔 중


스켑틱이 발굴해서 단행본까지 출간한 저자들의 책 (왼쪽부터 이대한 교수, 김상욱 교수, 김법준 교수의 책). 사진_ 바다출판사 제공


『스켑틱 코리아』는 국내 과학 저자 발굴을 사명처럼 생각하고 있다. 최근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와 김상욱 교수는 집중연재에 3~4년간 연재해 왔던 글들을 묶어 책으로 출간했다. 특히 김상욱 교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뛰어난 진화유전학자 이대한 교수도 연재를 통해 과학 작가로 데뷔했다. 『인간은 왜 인간이고 초파리는 왜 초파리인가』라는 책에서 이대한 교수는 생명이 어떻게 진화하고 작동하는지 그 기제를 생명의 레시피에 비유해 탁월하게 설명한다. 뛰어난 과학적 성과는 물론 정말 맛깔나게 글을 쓰는 몇 안 되는 과학자가 아닐까 한다. 생태에 관심이 있다면 식물을 연구하는 생태화학자 김상규 교수의 연재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화학적 수준에서 식물과 곤충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 그리고 그 관계가 진화적 맥락에서 어떻게 형성됐는지, 또 인간의 개입으로 그 관계가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본인의 연구 경험을 통해 풀어낸다.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의 혼재 속에서 독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핵심 정보를 제공하고자

국내 기사와 해외 기사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해외 기사는 좋은 글들이 있지만 번역 관리가 쉽지 않고 국내적 맥락에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경우가 있다. 번역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 편집에서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반면 국내 기사는 우리 사회의 이슈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처음 글을 쓰는 과학자들의 글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저자들의 콘텐츠 전달 능력이 분명 좋아지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국내 저자들의 비율이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진짜 너무도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 중요한 정보와 사사로운 정보가 혼재되어 있다. 정보 홍수 속에서 잡지와 출판의 본령은 신뢰할 수 있는 핵심 정보의 제공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스켑틱도 이와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본질을 더욱 확고히 지켜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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