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생물다양성의 최후 보루, 보호지역을 보호하라
- planetdami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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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8 이담인 기자
생물다양성은 생태계의 회복력과 인간의 생존을 떠받치는 근간이다. 보호지역은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핵심 수단이지만, 우리나라는 중복 지정과 부처 간 관리 혼선으로 인해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생태 보전을 위해서는 통합된 관리 체계 구축과 지역사회 참여 기반의 보전 전략 마련이 요구된다.

다양한 유전적 형질을 가진 종들이 많을수록 건강한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음은 상식이 되었다. 생물다양성은 지구상의 생물종(Species)의 다양성,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Ecosystem)의 다양성, 생물이 지닌 유전자(Gene)의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다. 생물다양성은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기에 마치 그물과도 같다. 한 부분이 훼손되거나 끊어지면 그물망 전체가 망가진다. 생물다양성이 건강하다면 외부 위협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빠른 회복이 가능하게 된다.
생물다양성 없이는 인간도 없다
인간은 생물다양성 없이 살 수 없다. 우리가 마시는 깨끗한 물은 수변 식생과 토양 속 미생물이 정화해 준 결과이고, 안정된 기후는 숲과 바다의 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조절한 결과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량도 대부분 벌, 나비 등 곤충들의 수분 활동에 의존하고 있다. 생물다양성이 줄어들면 이런 생태계 서비스 역시 사라지게 된다. 인간의 삶의 질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심할 경우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뜻이다.
식량과 건강, 산업 역시 생물다양성과 깊게 연결돼 있다. 전 세계 주요 작물의 75%는 동물의 수분 활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현재 시판 중인 의약품의 약 70%는 자연에서 유래한 생물 자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생물 유전자와 효소, 천연물질은 바이오 기술과 친환경 산업의 미래를 여는 핵심 자원이다. 생물다양성은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자산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점은, 생물다양성은 단절된 조각들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된 관계망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종이 사라지면 그 종과 관계된 다른 종까지 영향을 받는다. 꿀벌이 사라지면 과일 생산량이 줄고, 농민의 소득이 줄고, 그 여파가 과일값 상승으로 나타나 도시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 종의 멸종은 곧 연쇄적인 사회적 파장을 야기한다. 생물다양성 손실은 인간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과 직결된 위기인 것이다.
인류의 서식지 파괴가 초래한 여섯 번째 대멸종 시대
멸종은 늘 있던 일이었다. 약 4억4000만 년 전 빙하로 인한 하수면 하강으로 발생한 ‘오르도비스기 대멸종’부터 약 6600만년 전 지구에 운석이 부딪혀 공룡시대 막을 내린 ‘백악기 대멸종’까지, 지구는 다섯 번의 멸종을 겪었다. 다섯 번의 멸종은 모두 천재지변 때문이었다. 최근 도래한 여섯 번째 대멸종은 순전히 인류가 초래했다는 점에서 성질이 다르다. 제6차 유엔환경총회(UNEA-6)에 따르면, 지구 생물종의 6분의 1이 금세기 안에 멸종할 수 있다. 현재 생물의 멸종 속도는 자연멸종 속도의 수백 배에 이르며 인류가 나타난 이후 무려 1000배 이상 빨라졌다. 멸종 속도는 앞으로 수십 년 안에 1만 배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이는 모두 인류의 활동에 따른 남획과 밀렵, 대기 및 수질 오염, 외래종과 질병, 기후변화, 그리고 서식지 파괴 때문이다. 멸종은 단지 해당 종의 멸종이 아닌, 그 종이 수행하던 생태계 기능의 상실을 야기하고, 생태계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연쇄적 사건이다. 생물다양성이 줄어들수록 인류의 멸종이 자명해지고 있다.

서식지 파괴(Habitat destruction)는 현재 생물다양성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인이다.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CBD)이나 IPBES(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서비스에 관한 정부간 과학정책 플랫폼) 보고서 등에서도 서식지 파괴를 생물다양성 손실의 ‘1순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생물은 어느 순간부터 있었던 존재가 아니라 특정한 환경에 맞춰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 온 존재다. 숲, 습지, 강, 해안, 갯벌, 초지 등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이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서식지가 인간의 개발로 인해 파괴되거나 단절되면, 그곳에 살던 생물은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어버린다. 대체할 공간이 없기에 인간처럼 이사를 가지도 못한다. 서식지를 잃은 종은 로드킬, 먹이 부족 등으로 점차 사라지고, 이는 결국 생태계의 연쇄적 붕괴를 초래한다. 실제로 산림을 벌채하거나, 습지를 매립하거나, 해안을 정비하는 행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생물다양성을 훼손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육상 16%, 해양 5%, 허울뿐인 '서류상' 보호지역
서식지 파괴를 막고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설정하는 것이 바로 ‘보호지역’이다. 보호지역은 멸종위기종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기후 조절, 정수, 토양 형성 등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류의 생존 기반을 유지하는 보루로 기능한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함과 동시에 생태계 기능을 유지하는 생명 유지 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CBD)과 2022년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lobal Biodiversity Framework, GBF)’는 서식지 파괴로 인한 생물다양성 감소를 막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관리하자는 ‘30x30’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도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20여 종의 보호지역을 운영 중이다. 국립공원, 생태·경관보전지역, 습지보호지역, 해양보호구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등이 있으며, 환경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지자체 등 부처별로 관할한다.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22 국가생물다양성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한국의 보호지역은 육상 약 15.7%, 해양 약 4.7% 수준이다. 목표인 30%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해양보호지역은 지정은 됐지만 실질적인 관리가 부족한 곳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태가 보전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보호지역이 실질적인 보호 기능을 하고 있느냐’이다. 보호지역을 둘러싸고 중복 지정과 관리 이원화, 사후관리 부족, 개발 압력과 갈등처럼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모니터링조차 되지 않는 지역도 많다. 보호지역 내에서 불법 어획이나 훼손이 일어나도 단속이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현장 관리자나 시민단체의 제보로 겨우 조사가 이뤄지는 곳도 있다. 개발사업과 보호지역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실질적 보전’이 아닌 ‘서류상 보호’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보전 vs 개발, 충돌 사이 망가져 가는 보호지역
보호지역 지정이 주민들의 갈등과 반발을 유발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보호지역 인근 주민들은 생계 위협과 정부의 일방적인 지정 방식에 불만을 표시한다. 2017년 해양수산부가 통영시 용남면 화삼리 앞바다의 견내량 잘피군락지를 해양보호지역으로 지정하려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 찬반 갈등이 일어났다. 반대 측 주민들은 어로 제한으로 생존권이 침해될 것을 우려했고, 찬성 측 주민들은 보호지역 지정을 통해 어가 소득 증대를 기대했다.
이미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을 관광 목적으로 개발하려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 환경단체, 정부 간 대립이 발생하기도 한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가리왕산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활강 스키장으로 활용된 후 정부가 복원을 약속했다. 일부 주민들이 올림픽 이후에도 복원 대신 곤돌라 시설의 지속적 활용을 주장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수용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가리왕산은 천 년 넘게 보존돼 온 천연림으로 생태자연도 1·2등급 지역에 해당한다. 국립공원보다도 보전 강도가 높은 수준이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보호지역 등급 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속한다. 스키장 개발로 인해 하봉 정상부에 위치했던 학술적 가치가 높은 초대형 철쭉 군락이 모두 파괴됐다. 동계올림픽 경기장 조성으로 가리왕산 산림 78만㎡가 훼손됐으며, 잘려나간 나무가 5만8천여 그루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정만 있고 관리는 없어
한국은 GBF에 따라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24~2028)을 수립했다. 이 전략은 보호지역 확대, 생태계 복원, 유전자원 보호, 지역사회 기반 보전 등을 담고 있다. GBF 이행을 위해 세계환경기금(GEF)이 만든 탈리펀드(TALY fund)는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국가들의 이행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한국 역시 GBF에 의거해 보호지역의 질적 개선, 지역 공동체 참여 확대, 생태관광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보호지역을 확대하면서 ‘30x30’ 목표 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면적 위주의 관리가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우려가 많다. 일부 지역은 형식적으로 보호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실제론 출입 통제도 없고, 생물 모니터링도 이뤄지지 않는다. 법령은 있지만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보전보다는 행정 편의가 우선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보호지역 확대가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개 부처, 17개 법률 ... 뒤엉킨 보호지역 관리 체계
환경단체 녹색연합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보호지역은 총 5개 부처가 17개 법률에 따라 각기 다른 기준과 목적에 따라 지정·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전체 보호지역의 37%가 중복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리의 공백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국토부가 관리하는 수산자원보호구역, 환경부의 특별대책지역,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구역 등 동일한 공간에 여러 부처가 다른 기준을 적용한 데 따른 현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낙동강하구는 문화재청, 환경부, 해수부, 국토부 등 무려 4개 부처가 관리 주체로 얽혀 있는 지역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해양쓰레기와 관리 부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진우도는 해수부가 보호지역임을 홍보하며 입간판까지 세웠지만, 실상은 관리 사각지대에서 ‘쓰레기섬’으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의 문섬·범섬 해역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산호삼각지대의 북방한계선에 위치해 세계적으로 희귀한 산호류와 멸종위기 해양생물이 서식한다. 문화재청, 환경부, 해양수산부, 제주도청 등이 지정한 다수의 보호지정에도 불구하고 연산호 훼손과 해양폐기물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설악산은 국립공원(환경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문화재청), 백두대간 보호지역 및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산림청) 등 5중 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지만, 실제로는 연간 30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시설 중심지로 전락했다. 대피소, 도로, 관찰로 등이 설악산의 생태계를 종횡으로 파편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반달가슴곰 서식지인 지리산 등 다른 국립공원에서도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다.
통합관리 체계 마련해 효율적으로 지정 및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보호지역이 유명무실해진 원인으로 각 부처가 개별 법에 따라 보호지역을 지정하면서 정책 목표와 행위 규제 기준이 제각각이고, 사실상 통합적 접근이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 형식적인 연례 실무회의만으로는 복잡한 관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호지역에 대한 부처별 역할은 인정하되, 공통의 생물다양성 보전 목표와 실행 계획 아래 통합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더불어 지역사회 중심의 보전 모델을 확산시켜야 한다. 주민 참여 없는 일방적 보호지역 지정은 반발을 부르고, 이는 보전 활동의 동력을 약화시킨다. 보호지역이 생계와 직결되는 공간일 때, 주민과의 협력이 없이는 어떤 제도도 작동할 수 없다. 지역 기반의 보전 모델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보호지역 내 주민이 감시자이자 관리자가 되어야 실질적인 보전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적극적인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보호지역 내 생태계서비스 가시화를 통해 보전이 지역경제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멸종을 막는 보호지역이라는 울타리
생물다양성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다. 생물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 보호지역은 생명의 연결망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다. 보호지역 지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질적인 관리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동반되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보호지역이라는 울타리를 단단히 세워야 대멸종을 막고 기후 우울에 시달리는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 울타리를 지키는 일은 언제나 어른들의 몫이다.
기자수첩
생물다양성 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
생물다양성 보전, 지속가능한 이용, 유전 자원의 공정한 이익 공유를 목표로 1992년 채택된 국제 협약이다. 현재 196개국이 가입했고, 2년마다 당사국총회(COP)를 열어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 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를 채택해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하자는 목표를 설정했다. 협약의 주요 의정서로는 유전자변형생물 규제의 '카르타헤나 의정서'와 이익 공유를 다룬 '나고야 의정서'가 있다. 한국도 1994년 협약에 가입해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이행 중이다. 생물다양성은 기후, 식량, 건강 등 인간 삶의 기반으로 국제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unming-Montreal Global Biodiversity Framework, GBF)
2022년 채택된 국제 생물다양성 보전 전략이다.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하고, 훼손된 생태계의 30%를 복원하는 ‘30x30 목표’가 핵심이다. GBF는 보전, 지속가능한 이용, 공정한 이익 공유, 재정·기술 협력을 4대 장기 목표로 제시한다. 세부적으로는 오염 감축, 외래종 관리, 기업 공시 등 23개 세부 목표를 포함한다. 한국도 GBF에 참여해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 중이지만 이행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탈리펀드(Trust Fund for the Kunming-Montreal Global Biodiversity Framework, TALY Fund)
GBF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환경 기금이다. 개발도상국이 생물다양성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제공한다. 세계환경기금(GEF)이 운영을 맡아 성과 중심의 자금 분배를 관리한다. 2024년 COP16부터 본격 운영되었으며, 공공·민간 재원과 연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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