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9 이담인 기자

에너지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
환경운동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단체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가 다르긴 하나 10년 전만 해도 기후위기나 탄소중립은 주된 의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환경 문제를 다루다 보면 결국 기후위기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탄소중립은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했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어졌다.
2010년까지만 해도 우리의 걱정은 석유 고갈이었다. 화석연료가 고갈될 시기에 대비해 대체 에너지원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고갈의 문제가 아니라 화석연료가 기후위기를 야기하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에너지 전환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세계는 지금 태양광 재생에너지로 빠른 전환 중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핵 발전소의 위험성도 에너지 전환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핵 발전은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대규모 발전소 시스템은 운영상의 위험과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원전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 비율은 약 30%에 달하며 탈핵이란 의제가 정치적 이슈가 되어 제대로 된 논의조차 어렵다. 반면 많은 국가들은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빠르게 에너지 전환을 하고 있다. 주요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것은 원전이 사양 산업이 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에너지 전환은 지역 분산형 시스템으로 가야
에너지 전환은 기존의 대규모 자본과 중앙집중적 시스템이 아닌, 환경과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사람들이 에너지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지역 분산형 시스템이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전력 시스템은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전국으로 송전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다. 원전이 기저 전력을 차지하는 구조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우선적으로 사용되기 어렵다.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필요할 때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원전은 발전 과정에 중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전기는 저장이 어려운 물질이라 원전이 생산한 전력을 우선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이런 정부 주도의 중앙집중식 전력 구조에서는 재생에너지 산업을 더 키우기도, 재생에너지를 주축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을 이뤄내기도 어렵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생산에 유리한 환경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는 풍부한 일조량과 해안을 보유하고 있어 재생에너지 생산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핵융합과 같은 신기술 개발은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다. 당장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태양광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여야 한다. 물론 태양광만으로 100% 전환은 어렵겠지만, 수열, 지열, 풍력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함께 개발하며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소규모 그리드 시스템으로 개편되어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가 정착되면, 재생에너지가 더욱 안정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2023년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통과되었지만 보다 적극적인 법제화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기존의 중앙집중식 전력망을 지역 중심의 소규모 그리드 시스템으로 개편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권 교체 때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이 흔들리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은 단기적 정치 이슈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정부가 명확한 방향을 설정해서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
로컬에너지랩, 지역에너지 전환 전국 네트워크 조직 운영
로컬에너지랩은 정책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가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지역에너지전환전국네트워크'라는 연대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의 에너지 정책을 모니터링하며 공론장을 열어 의견을 전달하고 평가하는 활동을 이어 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당진 등에서는 '지역에너지센터'가 설립되었다. 지역에너지전환전국네트워크에 소속된 조직들이 꾸준히 의미 있는 시도와 성과를 보여 왔다. 정권이 바뀐 후 운영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진 센터도 재작년 운영이 종료됐다.
성당에서, 마을에서 시작된 에너지 전환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지역 에너지 전환 사례로 꼽는 여주 구양리 마을이 있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마을 공동 태양광 발전소인 '햇빛두레발전시설'을 운영한다. 발전소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마을버스와 식당 운영 등 복지 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지속가능한 에너지 모델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로컬에너지랩은 이런 사례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협업했던 곳 중 기억에 남는 사례로는 천주교 대전교구에는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이 있다. 자체적으로 ‘204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대전교구에 속해 있는 성당들 모두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성당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사용량을 줄이는 캠페인을 한다. 또 RE100 인증도 실시하고 있다. 탄소중립 선언 2년 만에 4개 본당이 RE100 인증서를 받았다. 조합원들이 에너지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실제 감축을 위한 경로를 구상하는 과정에 로컬에너지랩이 함께하며 워크숍과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병행했다.
기업, 정부, 개인이 함께 하는 '탄소중립 로드맵'
서울시 온실가스의 70% 가량은 건물에서 발생한다. 기업과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건물 소유자와 사용자들이 직접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한다. 작년에 노원구 소재 학교 10곳의의 청소년들이 '온실가스 10% 감축 프로젝트'를 했다. 학교의 어느 곳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하는지, 어떤 활동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조사해서 감축시키는 것이었다.
2022년에는 은평구 역촌동 주민들과 '동 단위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는 사업을 했다. 시민연구원 25명과 함께 여러 번의 워크숍을 진행해 건물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제안했다. 이 활동이 의미 있었던 점은 개인의 노력에 초점을 맞춘 실질적인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탄소중립 로드맵은 ‘개인이 본인의 재산과 노력을 들여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왜 필요한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물론 개인만 노력해서는 안 된다. 건물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안전한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건물 수선 정보제공' 등 정책적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로컬에너지랩의 ‘누구나 탄소중립 가이드’

로컬에너지랩 홈페이지에 ‘누구나 탄소중립 가이드’라는 메뉴가 있다. 여러 형태의 공동체에서 탄소중립 계획을 세울 때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 북과 관련 정보들을 제공한다. 특히 건물이 가장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건물의 어느 곳에서 얼마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를 대략적으로 계산하고 구분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탄소중립, 모두의 목표이자 기회
탄소중립은 국가적 목표지만, 개인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2050년이 되면 에너지 전환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화석연료 사용은 불가능해진다. 이에 대비해 개인들도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미래이기에 다양한 사례를 쌓는 게 필요할 것이다. 로컬에너지랩은 여러 단위의 공동체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사례를 만들어 이를 표준화하는 작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화석연료가 언젠가는 고갈될 에너지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실천하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는 무척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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