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 안녕한 농사를 위해

 

농사 작업장은 위험한 일터다. 호미, 낫, 곡괭이 등 손쉬운 농기구부터 경운기, 피복기, 트랙터 등 농기계까지 위험이 뒤따른다. 농업안전보험, 5인 이상 농사업장 중대재해법 적용이 되었지만 안전 문제의 예방, 발생, 대안까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5-3-13 박진희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농번기가 일찍 시작되었다


논밭 가까운 길을 지나게 될 때마다 바람을 타고 퇴비 냄새가 날아오는 걸 보니, 진짜 농번기가 찾아왔다. 고랭지 장수군의 농사는 4월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는데, 기후위기는 농사의 시작 시점을 바꾸어 놓고 있다. 예년보다 농번기가 일찍 시작되었다.

16년 전 농촌으로의 이주를 결심했을 때, 내게 농사는 자연, 그리고 낭만의 이미지였다. 어릴 적에 전원일기라는 드라마를 보고 자랐지만, 전원일기의 등장인물은 흙투성이가 아니었다. 농사는 고된 일이 아니라 인간사 같았다. 대학 시절 농활을 가기도 했는데, 감자 캐기, 콩 심기, 하우스에서 오이를 따보며 세상 처음 경험해 보는 고된 일이구나 싶었지만, 며칠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므로,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농사일은 위험 가득한 작업장


귀농하고 농사일에 뛰어들고 보니, 농사일은 그야말로 위험이 가득한 작업장이었다. 호미, 낫, 곡괭이처럼 일상적으로 쉽게 사용하는 농기구는 물론이고, 경운기, 피복기, 트랙터 등 농기계 역시 위험이 뒤따라 다녔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다가 낫으로 손가락을 베어 꿰매기도 했고, 피복기에 부딪혀 다리에 시퍼런 멍이 한참을 가기도 했다. 남편은 논물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모니터가 고장이 나서 수리하려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한번은 농기계 대여소에서 콩을 쉽게 터는 기계를 빌려온 적도 있는데, 소음도 소음이거니와 손이 빨려 들어가는 건 아닌지, 사용하는 내내 겁이나기도 했다. 로터리에서 경운기 사고를 본 적도 있고, 도로에 나락을 펴고 말리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과수원 사다리차에서 떨어져 사망하신 분도 있다. 축사에서 소에 뒷발에 치여 갈비뼈 부상을 입은 사람도 보았고, 축사를 고치다가 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피복기 등 농기계의 사용이 늘어나는 농번기가 시작되었다. 농작업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농사도 지속가능하다. 사진_ 공유마당, 이혁종의 홍류동천 03535
피복기 등 농기계의 사용이 늘어나는 농번기가 시작되었다. 농작업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농사도 지속가능하다. 사진_ 공유마당, 이혁종의 홍류동천 03535

밀짚모자, 깨끗한 셔츠, 말끔한 장화를 신고 환히 웃는 농부의 모습은 환상


우리는 유기농 농사를 지었지만 남편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농약을 많이 쳤냐고 물었다. 농약이 건강에 좋을 리 없으므로 당연한 질문이었다. 남편이 농사일을 마치고 곤포 사일리지 작업을 한적이 있다. 폐암 진단을 받은 뒤에, 암발병에 관여한 원인을 찾고 싶어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뒤적여 보았는데, 그때 곤포 사일리지 작업 중 미세한 볏짚 가루가 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문을 보기도 했다. 한여름의 온열 질환도 있으니 농사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험과의 동행이다. 밀짚모자에 깨끗한 셔츠, 깔끔한 앞치마, 말끔한 장화를 신고 환히 웃는 농부의 모습은 환상이다.


농업 현장 곳곳까지 안전 의식이 스며들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참일 때, 코로나 검사를 하는 의료진의 복장을 보면서, 농약 사용 안내문에 적힌 보호복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농약을 사용하는 분들은 그 누구도 안전복장을 갖추고 일하지는 않는다. 농기계를 사용하면서 사용법을 주의 깊게 인지하지도 않는다. 농작업은 경미한 사고부터 사망사고까지 발생하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5인 이상 농사업장은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다. 그런데 농업 현장 곳곳까지 농작업 안전 의식이 스며들어 있지 않다. 누군가는 농작업 안전 관련 보험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험이 사고를 방지하지는 못한다.


농작업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농사가 지속가능하다


고령화된 농촌에 안전문제가 지속되면 앞으로 농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각만해도 막막하다.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던 농약보관통이 생기고, 농업안전보험이 생기고, 농사업장 중대재해법이 적용되고, 농업은 그동안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한걸음씩 내딛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농부와 농업노동자가 재해로부터 안전하려면, 개인 농부도, 농업경영 사업자도 안전수칙을 이해하고 매뉴얼화하고 철저히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부 역시 안전을 제일로 농부들이 생각하고, 안전 문제의 예방부터 발생 후 대안 마련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농작업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농사는 지속가능할 수 있다. 시민들 모두 농사의 안녕을 빌어주는 세상이기를 바래 본다.

Comentários

Avaliado com 0 de 5 estrelas.
Ainda sem avaliações

Adicione uma avaliação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이 기사를 읽은 회원

​로그인한 유저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로그인 후에 이용 가능합니다.

이 기사를 읽은 회원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