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 그린피스 최태영 | 보호지역, 보호 대신 개발?
- planetdami
- 3일 전
- 4분 분량
2025-04-09 이담인 기자
보호지역 내 경제림 중복 지정으로 생태계가 훼손되고 있다. 글로벌 흐름에 따른 보호지역 확대와 관리는커녕, 그린벨트 해제 등 규제 완화 정책이 오히려 생물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의 예산·정책 지원이 미흡한 현실에서 생태계 보전은 요원한 목표다. 보호지역은 보호되어야 한다. 보호지역은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이다.

2022년 말, 대한민국을 포함한 196개국이 UN(유럽연합) 생물다양성 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에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unming-Montreal Global Biodiversity Framework, GBF)’에 서명했다. 이 협약은 인류가 직면한 생물다양성 위기를 막기 위해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명확한 목표들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두 가지 핵심은 바로 육상 및 해양 면적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훼손된 생태계의 30%를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현실을 들여다보면 국제적 약속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린피스는 한국 정부가 GBF를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보호지역의 관리 부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보호지역도 아랑곳없이 벌채하는 한국 정부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대암산 천연보호 지역은 대한민국 제1호 람사르 습지이자,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엄정 자연보존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일반인의 출입마저 제한될 만큼 생태적으로 귀중한 곳이라 그 보존 가치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러나 2017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이곳에, 2019년 갑작스레 거대한 벌채지가 출현했다. 위성사진으로 확인된 이 벌채지의 규모는 광화문 광장의 4.6배에 달하며, 그 안에는 100년 이상 된 천연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귀중한 자연림이 순식간에 베어지고 그 자리에 어린 침엽수림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보호지역'과 '경제림 육성단지' 중복의 폐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단서는 ‘경제림 육성단지’라는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림 육성단지란 나무를 심고, 기르고, 수확하는 산림 순환 경영이 이뤄지는 곳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림 단지가 보호지역과 겹쳐 지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 단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보호지역과 경제림 육성단지가 중복된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1.2배에 달하는 약 7만 헥타르에 이른다. 중복면적엔 놀랍게도 백두대간 보호지역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두대간 중심부에 위치한 민주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위성사진을 보면, 산 능선 아래쪽에 숲이 마치 조각된 듯 베어져 나가 있는 장면이 포착된다. 벌채지는 무려 11곳이나 되었으며, 일부는 보호지역의 핵심구역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벌채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본 결과, 나무를 뿌리째 뽑기 위해 중장비가 동원되었고, 그 자리에 낙엽송과 일본 잎갈나무, 심지어는 고사 위기에 처한 구상나무까지 심겨 있었다. 인공조림이 천연림에 비해 생태적 다양성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많다.
산림청은 해당 지역이 2003년 경제림 단지로 먼저 지정되었고, 이후 보호지역이 설정되었다고 해명했다. 백두대간 보호법상 벌채가 금지된 것은 아니며 벌채는 ‘더 좋은 숲을 가꾸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보호지역의 본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해명이다. 자연림의 생태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보존하겠다는 보호지역 지정의 본래 목적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우리는 문제를 파악한 뒤 산림청과 환경부에 총 9건의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환경부는 ‘해당 지역은 산림청 소관이므로 답변이 어렵다’는 비공식적인 입장을 전했고, 산림청은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다행히도, 이러한 문제는 언론 보도와 국정감사 준비 과정을 거치며 사회적으로 조명되었고, 결국 2023년 9월 30일 산림청은 민주지산의 경제림 육성단지 지정을 해제했다.
보호지역에 덧씌워지는 개발의 그림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보호지역과 경제림의 중첩 현상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존에 겹치지 않았던 보호지역에 경제림이 새롭게 지정되는 기막힌 사례도 등장했다. 강원랜드 인근 산림자원보존구역이 대표적 사례다.
보호지역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비단 경제림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호지역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일 역시 빈번하다. 대표적인 예가 2018년 평창 올림픽 당시 알파인 스키장으로 개발된 가리왕산이다. 조선시대부터 보호되어 온 이 산은 복원을 약속받았지만, 여전히 되돌려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역시 마찬가지다. 윤석열 (전)대통령은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오히려 자연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발언했고, 이후 지리산을 비롯한 여러 국립공원에서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심지어 보호지역이 될 가능성이 큰 지역마저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정부는 생태적 가치가 높은 그린벨트 1·2등급 지역에 대한 개발 허용 방침을 내놓았다. 보호지역 확대를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 방향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국토의 재설계, 토지이용 규제 전면 혁신’이라는 명목으로, 상수원 보호구역 내 음식점, 전기설비, 모노레일 설치 등을 허용하는 안을 발표하였다. 사실상 보호지역의 기준 자체를 무너뜨리는 조치다.
아파트 한 채 값으로 자연을 보존하려 하는가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제16차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탈리펀드’가 출범했고, 지난달 로마에서는 각국의 생물다양성 전략을 평가할 지표와 체계가 마련되었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역시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이 국제적인 심사대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보호지역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국제 협약 이행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허구일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이유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이다. 대중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자들조차 보호지역의 개념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정책 지원은 뒷전으로 밀리고, 예산은 줄어들며, r그 사이 보호지역 관리는 비효율적으로 흘러간다. 보호지역 내 주민에게 생태계 보존의 대가로 일정한 보상을 지급하는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는 대표적인 성공적 제도임에도, 그 예산은 전국 단위로 고작 43억 원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돈으로 국가의 자연을 보존하겠다는 셈이다.
보호지역을 보호하라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적인 전환과 사회적 인식 개선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리고 이 변화는 정책 입안자뿐 아니라, 시민사회, 연구자, 언론, 활동가 모두의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이 자리에서 단 한 줄의 청사진이라도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시작이 될 것이다.
보호지역은 말 그대로 보호되어야 한다. 이 단순한 이치를 현실에서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린피스는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솔루션들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함께 변화를 이끌어가겠다.
기자수첩
경제림 육성단지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정책으로, 목재 생산 등 경제적 가치를 위한 산림 경영 지역을 말한다. 산림청이 지정하며, 경제림 육성단지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고, 베는 순환 관리가 가능하다. 문제는 경제림 육성단지가 보호지역과 중첩되며 생태계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림은 '자원 생산'에 중점을 두는 만큼 생물다양성과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