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 중국 철학자 | 연재를 마치며
- hpiri2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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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 윤지산
우주와 인간을 알기 위해서, 인간은 물어 왔다. 이 물음은 고대 중국의 '오경'으로 텍스트화되었고, 노자,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장자가 학문으로 꽃을 피웠다. 주희는 이 성현들의 텍스트를 따라 '격물치지'로 인간 외부의 규준을 중시했고, 왕양명은 격물치지하는 '내 마음[心]이 본체'라고 사유했다. 외세로 고통받던 근대 중국 철학자들은 심학[心學]에 심취했고, 유가 도통설을 제시했다. 그 비판으로 현대 중국 철학은 '도덕적 수양'이 중한지, '치국의 도'가 중한지를 논쟁하고 있다.

윤지산
퇴락한 고가에서 묵 가는 소리와 대나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선조의 유묵을 통해 중국학을 시작했고, 태동고전연구소에서 깊이를 더했다. 한양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인민대학(人民大學) 등지에서 공부했다. 『고사성어 인문학 강의』,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한비자 스파이가 되다』 등을 썼고, 『순자 교양 강의』, 『법가 절대 권력의 기술』, 『어린 왕자』 등을 번역했다. 또 『논어』, 『도덕경』, 『중용』을 새 한글로 옮겼다. 바둑에 관심이 많아 〈영남일보〉에 기보 칼럼을 연재했다. 대안 교육 공동체, 꽃피는 학교 등 주로 대안 교육과 관련한 곳에서 강의했다. 현재 베이징에서 칩거하며 장자와 들뢰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 사회 저변에 흐르는 무의식을 탐구한다.
우리는 왜 묻는가?
이 불가사의한 우주에서,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우주와 연속하는 존재일까? 아니면 우주와 격절하면서 인간만의 독특한 존재론적 위상을 갖는 것일까? 우주가 어떤 섭리를 품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일까? 아니면 여럿일까? 우주 전체를 통섭하는 절대적 진리는 있는 것일까? 그런 법칙이 있다면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간을 인간이게끔 규정해 주는 존재론적 근거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며, 삶의 가치를 구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주어진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 가는 것일까? 도대체 인간이란, 세계란, 신(神)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인간만 하는 것일까? 사유는 인간의 전유물인가? 다른 생물도 인간처럼 이렇게 묻고 구도의 길을 나서는가?
시작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인류는 이렇게 물어 왔다. 이 화두(話頭) 자체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른다.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으며, 책도, 등불도, 학교도, 선생님도 없는 암흑천지 시대에, 누군가 동트는 태양과 더불어 일어나 이렇게 자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별빛이 쏟아지는 밤에도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깊이 고민했을 것이다. 무용하다며 곁에서 타박하는 이도 있지 않았겠는가? 당장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시를 짓고 노래하며, 역사를 기록하고, 우주의 섭리를 엿보고, 사람의 길을 그려 가며, 인간의 삶을 평가하기도 했다. 중국의 경우, 이는 “오경(五經)”이라는 결과물로 역사에 나타난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텍스트 성립 자체가 경이롭다. 기적의 정의를 두고도 설왕설래하지만, 필자는 이를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물 위를 걸어야만 기적이겠는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다면, 텍스트의 성립이 이에 해당하지 아닐까? 물론 고대 중국만 위대하지도 않고, 특정 종교의 세계관을 틀렸다는 뜻도 아니다. 그 시대, 그 세계에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은 모두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다
이 지점에서 한 번 더 묻는다. 인간이라서 묻는가? 아니면 의문을 가지므로 인간인가? 모를 일이다. 너무 어렵다. 어쨌든, “오경”이 성립하자, 고대 중국에서는 좁게는 철학, 넓게는 학문 자체가 만개한다. 노자,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장자 등 여러 선생이 시차의 간격을 두고 역사의 전면에 부상한다. 시대로 조금 내려가면 동중서(董仲舒), 사마천(司馬遷)도 이 대열에 넣을 수 있겠다. ‘궁형(宮刑)’이라는 몹쓸 형벌도 감내하면서 사마천 역시 묻는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묻고, 시대의 변화를 읽으며, 세상에 한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 『한서(漢書)』, 「사마천전(司馬遷傳)」.
주희와 왕양명
이 물음은 주희와 왕양명에게도 이어진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가?” 주희는 인간을 ‘인욕(人慾)과 천리(天理)’의 전쟁터로 본다. 따라서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慾—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억제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인욕의 인간을 바로 잡아 줄 외부의 규준이나 규율이 중요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그는 자연의 질서를 정확하게 인식해 수양의 디딤돌 삼겠다는 의지로 읽는다. 인간의 자율적 의지보다 타율적 규제가 더 중요하게 된다.
왕양명은 이 지점에 불만이 많았다. “인간은 어떻게 자연의 섭리를 인식하는가?” 그는 주희의 가르침에 따라 대나무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결국 탈이 나고 많다. 소위 ‘격죽자(格竹子)’ 고사이다. 그의 방법론은 어리석지만, 구도를 향한 열정은 높이 사야 할 것이다. 이때 왕양명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한 소식을 들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있는 것(萬物皆備於我)—(『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이었다. 그에게 ‘격물치지’란 ‘내 마음이 본체라는 것, 내 마음이 인식 주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맹자의 “진심지성지천(盡心知性知天)”을 적극 계승한 것이다. 이를 거칠게 정리하면, 주희에게는 성현의 말씀 곧 텍스트가 중요하게 되고, 왕양명에게는 ‘마음[心]’이 텍스트 대신 자리를 잡는다.
유가 도통설
과학 기술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서양에 밀리는 상황에서, 당시 중국 지식인이 외부의 객관적 사실보다 내부의 주관적 심성에 더 집중했던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슝스리나 모우쫑산은 심학(心學)에 심취하면서, 무너진 자존심을 살리면서 유학을 새롭게 해석한다. 『심체와 성체(心體與性體)』(1968), 『불성과 반야佛性與般若』(1977), 『육상산에서 유즙산까지(從陸象山到劉蕺山)』(1979) 같은 텍스트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서명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텍스트들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심(心)’을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불교에서 ‘마음’이 ‘자성(自性)’이 없는 ‘공(空)’으로 본다면, 양명학이나 신유학에서는 이 ‘심’을 실체이자 본체로 본다. 이 역시 “무엇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연속이다. 나아가 모우쫑산은 공자와 맹자를 1기로, 정호(鄭顥)-호굉(胡宏)-유종주(劉宗周), 육구연-왕양명을 2기로, 슝스리와 자신을 포함한 동문을 3기로 나뉘는 유학의 도통설을 주장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의발 전수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 도통설을 비판한 이들이 당연히 등장하게 마련이다. 역사학계의 치엔무(錢穆), 1895~1990)과 그의 제자 위잉스(余英時, 1930~2021), 철학계의 리쩌후우(李澤厚, 1930~2021)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여러 갈래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역사적, 물질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비판의 성격을 띠지만, 역시 물음의 한 형태이다. 내성(內聖)이라는 도덕적 수양이 중요한가? 아니면 외왕(外王)이라는 치국의 도가 중요한가? 아니면 내성외왕(內聖外王)이 동시에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면 그 길[道]은 무엇인가? 이 논쟁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자와 맹자 vs 순자와 한비자의 질긴 인연을 읽을 수 있다.
이 연재에서 원래 의도했던 것은, 정답을 구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혼란의 시대 현대 중국 철학자의 질문을 엿보는 것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우리 시대, 우리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를 묻고자 했다. ‘물으면서 인간이 되어 간다(devenir)’라는 철학적 테제가 필자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어 그렇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연재를 여기서 마친다. 그동안 졸필을 읽고 비평해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planet03』에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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