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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김우성 | 소나무가 산불의 원인일까?

2025-04-03 김우성

 

사람이 심는 소나무는 6%에 불과하다. 산불 후 척박한 땅에 소나무가 먼저 자리 잡는다. 소나무의 생존과 번식 전략이다. 소나무가 사라져도 인류가 사라져도 여전히 산불은 발생한다. 산불은 그야말로 복잡한 현상이다. 소나무 비난을 멈추고 산불을 더 이해하자. 기후변화로 현재 우리는 소나무와 이별 중이다.


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 지역 위원장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 지역 위원장을 맡고 있다.

 

무엇이 산불 확산의 원인인가


2025년 봄, 유례없이 큰 산불이 영남지방을 태웠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포함해 4만5000ha가 넘는 숲을 태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울산의 울주군, 경남의 산청과 하동, 그 외 많은 지역이 산불로 고통받았습니다. 산불은 불과 며칠만에 수만ha의 숲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경북에서 3617채의 주택이 불탔습니다. 30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가혹한 산불의 계절입니다. 

2024년 3월. 아내님께서 출장가시다 촬영한 울주군 산불현장의 영상입니다. 영상_한새롬

사람들은 저마다 산불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부주의에 의한 실화(失火)가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메마르고 거센 바람이 산불을 키웠다고 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덥고 건조해진 봄 날씨를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송진을 머금은 소나무가 우점한 경북 지역의 숲이 산불 확산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심은 소나무는 6%에 불과


소나무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소나무는 우리나라 숲에서 단일 수종으로는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숲의 25%가 소나무 숲입니다. 한반도 전역에서 소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동해안에 집중적으로 분포합니다. 소나무는 왜 동해안에 집중적으로 분포할까요? 사람의 손으로 심은 소나무들일까요? 사람의 손으로 심은 소나무들은 전체의 6%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4%의 소나무 숲은 자연스러운 천이의 과정을 통해 씨앗이 발아하면서 만들어진 숲입니다. 소나무는 한반도의 동부지방, 특히 강원과 경북 지역의 기후와 지형, 토양 조건에 잘 적응했습니다. 동부지방은 대부분 산악지형입니다. 경사가 급하고 토양이 얕고 척박합니다. 날씨도 뜨겁고 건조합니다. 활엽수가 자라기에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그러나 소나무는 뿌리 표면에서 살아가는 균근과의 공생을 통해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기후에서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소나무의 분포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동해안에 소나무의 밀도가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료_국립산림과학원(2013)
소나무의 분포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동해안에 소나무의 밀도가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료_국립산림과학원(2013)

산불 후 척박한 땅에 가장 먼저 자리 잡는, 소나무


소나무는 산불에 취약한 종입니다. 산불에 쉽게 불타 죽는 종이지만 산불이 지나간 뒤 건조하고 척박해진 땅에 가장 먼저 자리 잡는 종이기도 합니다. 소나무는 산불의 원인이라기보다 산불로 인한 생태계 순환의 일부입니다. 산불이 발생한 지역의 생태계 복원 연구에 따르면 활엽수 묘목보다 소나무 묘목의 활착률이 높습니다. 산불이 지나가고 난 숲의 바닥은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서 뜨겁고 건조해집니다. 소나무는 이러한 환경에서 잘 견딥니다. 산불이 난 숲의 바닥에 먼저 자리 잡고 활엽수가 자라기까지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소나무들입니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뒤 소나무 숲에서 다시 불이 나는 것은 어쩌면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산불이 재난이지만 어떤 생명체에게는 번식의 기회


산불은 재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번식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북미의 방크스 소나무는 산불이 나면 뜨거운 불길을 쐰 솔방울이 열리면서 씨앗이 나옵니다. 지중해의 시스투스(Cistus)속 식물은 씨앗을 떨어뜨린 뒤, 섭씨 35도 이상에서 스스로 발화해 주변을 태움으로써 다음 세대의 새싹을 위한 공간을 마련합니다. 호주의 솔개는 불 붙은 나뭇가지를 물고다니며 들불을 퍼트리고, 불길에서 뛰어나오는 먹이를 사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은 동물들이 숨을 곳이 사라진 산불 피해지 위를 날아다니는 맹금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소나무가 산불 피해지의 빈 땅에서 번식하는 것은 자연의 일부인 산불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일반적인 전략입니다.


소나무가 사라져도, 사람이 없어도, 산불은 일어난다


‘소나무가 산불의 원인일까요?.’ 간결한 문장으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산불의 원인일까요?’ 아니면 ‘기후변화가 산불의 원인일까요?’ 분명한 것은 소나무가 사라져도, 사람이 사라져도, 산업혁명 이전으로 기후가 돌아가도 산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산불은 고생대 석탄기에도 존재했습니다. 인류가 존재하기 전에도 산불은 존재했고, 인류가 멸종한 뒤에도 산불은 존재할 확률이 높습니다. 지형과 기상, 연료가 달라지고 산불의 양상이 달라져도 산불 그 자체는 계속 존재할 가능성이 큽니다.


산불은 아주 복잡한 현상


‘관상은 과학이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쓰레기를 줍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입니다. 관상을 척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산불도 그렇습니다. 산불에 영향을 미치는 지형과 기상, 연료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책이 여러 권 필요합니다. 산불의 원인과 양상, 진화와 복원, 숲과 마을의 관리에 대해서도 각각 두꺼운 책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같은 숲에서 난 산불도 그 날의 바람이나 날씨에 따라 양상이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산불은 아주 복잡한 현상이고, 불확실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불타는 산에도 주사위 놀음을 하는 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소나무 비난을 멈추고 산불을 더 깊이 이해해야


우리 뇌는 복잡한 계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단하고 직관적인 규칙을 바탕으로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신중한 판단보다 단순하고 빠른 판단이 생존에 유리했으니까요. 논리적이고 복잡한 계산을 거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타당한 결론을 빠르게 도출할 수 있는 간편한 생각의 전략을 우리는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합니다. 우리 삶의 주변을 맴도는 관상, 혈액형, 별자리, MBTI 모두 휴리스틱입니다. ‘비싼 물건이 더 좋을 거야.’, ‘첫인상이 좋으면 그 사람은 믿을 만한 거야.’와 같은 생각도 휴리스틱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효과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지금도 널리 쓰입니다. 저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저는 B형, 사자자리, 경상도 남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이라는 복잡한 상황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저의 의무이기에 말도 글도 조심스럽습니다. 쉽게 쓰려고 노력하면서도  단정적인 표현은 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산불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소나무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산불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여전히 소나무 숲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진_김우성
여전히 소나무 숲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진_김우성

우리는 소나무와 이별 중입니다


우리는 소나무를 사랑했습니다. 옛날부터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였습니다. 거친 환경을 견디고,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를 사람들은 선비의 절개와 기개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겼습니다. 쓸모도 많아 건물을 짓고 배를 만드는 데 쓰는 핵심적인 자원으로 관리되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 우리는 소나무와 이별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산림청은 수종갱신 방침을 세웠습니다. 가급적 소나무는 심지 않고,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심한 지역의 소나무는 다른 종으로 바꾼다는 뜻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해지는 날씨 때문에 소나무의 분포 적지도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강원과 경북의 산불 피해지에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를 다시 심는 것은 아주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소나무와 이별하는 중입니다. 사랑했던 소나무를 악당이나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우리의 곁을 지켜준 소나무와의 이별이 너무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새로운 숲으로 이어지는 안전하고 다정한 이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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