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토우치 트리엔날레를 찾다 ④ 예술제를 통해 박물관 섬이 된 아와시마
- hpiri2
-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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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3월 31일
생김새가 남다른 아와시마섬에는 일본 최초의 선원 양성 학교가 있었고, 예술가촌에서 작가들이 활동했고, 용궁 전설이 전해 오는 곳이다. 이 섬의 과거 전통이 어떻게 현대미술로 작품화되었는지를 살펴보자.
2025-03-28 제종길, 이응철, 고은정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생김새부터 남다른 섬
시와쿠(塩飽)제도의 가장 서쪽에 있는 아와시마(栗島)는 다른 섬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앞의 혼지마 글에 올린 시와쿠제도 지도에서 보면 아와시마는 타카미지마와 손가락 모양으로 돌출한 반도인 ‘쇼나이한도(荘内半島)’ 사이에 위치한다. 지도에는 언뜻 섬의 서쪽 부분이 분리되어 보이나 서쪽과 북쪽이 사주로 연결되어 있던 것을 인공적으로 하나의 섬으로 만들었다.
생김새에서부터 이런저런 점이 달라서 섬마다 독특함을 찾는 게 예술제 여행의 새로운 재미로 다가왔다. 섬에 오르기 전에 안내 유인물을 통해서 선원 양성 기관이 섬 안에 있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지도를 찾아보면 한눈에도 알 수 있는 특이한 섬 모양이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글을 쓰며 고백하지만, 시와쿠제도에 속한 섬 주민들은 바다에서 단련된 강인함을 오랫동안 발현해 왔는데, 제도 중 어느 섬에서라도 이런 선원 교육기관은 하나쯤 있을 만했다. 굳이 아와시마인 것은 상대적으로 시내가 가까운 섬이어서가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센초고야, 선장의 오두막
막상 섬에 다가가 보니 항구에 도착 전부터, “이게 뭐지?” 하며 흥미를 끌만 한 것이 보였다. 특이한 생김새의 배 한 척과 조사선으로 보이는 또다른 선박 하나가 정박해 있었다. 여객선이 도착한 곳에서 약간 떨어진 부두여서 그쪽으로 걸어 나가는 길에 작품 설명 간판이 있는 작은 집 한 채가 보였다. 작품(aw11)이었다. 건축 양식은 전통 방식으로 보이나 외관은 작은 용궁 건물이었다. ‘센초고야(船長小屋 선장의 오두막)’라는 간판에서 그냥 선장 집이거니 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실내를 보니 방안은 해양생물 실험실이었다. “아니, 연구하는 선장이 있나!” 흥미가 부쩍 동했다.
직감으로 부두에 있는 선박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았다. 특이한 모양의 배 이름은 ‘타네후네(種は船, 씨앗은 배)’이고, 작품명은 ‘타네후네 TARA JAMBIO 아트 프로젝트’였으며, 작가는 ‘히비노 카츠히코(日比野克彦)’였다. 재미가 있었다. 히비노 작가는 2010년부터 전국 해안을 다니면서 망가지는 바다를 조사해 왔고, 'TARA JAMBIO'는 일본 타라해양재단과 일본해양생물학협회가 공동으로 2020년부터 전국 해역에서 미세플라스틱 오염 을 조사해 온 조직의 이름이었다. 자국의 바다 상태를 걱정하는 두 주체가 만나 작품을 낸 것이었다.





이런 배를 하나 가졌으면…
이뿐이 아니다. 조사선으로 보이는 배는 미술관이었다. 타네후네를 작업한 히비노 작가의 작품(aw01)으로 공식 제명은 ‘세토나이카이해저탐사선 미술관 프로젝트・어제의 배/속닥속닥상상소/리잉-에이(瀬戸内海底探査船美術館プロジェクト・一昨日丸/ソコソコ想像所/Re-ing-A)’로 길다. 히비노는 해양학자는 아니고, 활발히 활동하는 현대 미술가로서 현재 동경예술대학교 학장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예술제의 작품으로 이 항에 세워져 있다. 선박 안에는 잠수복과 수중에서 채취한 여러 가지 표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의 배 미술관', '속닥속닥상상소', 해저에 가라앉는 배에서 건져 올린 벽돌로 만든 코끼리 조각 '리잉-에이(Re-ing-A)', 이렇게 세 개를 한 작품으로 표현했다.
문득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한때 이런 배를 하나 가졌으면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 하길 잘했다고 여기지만 당시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노년에 해양 박물학자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내 이야길 하는 이유는 이런 작품이 있는 아와시마가 딱 마음에 들어서다.

일본 최초의 선원 양성 학교
섬은 작았지만 섬마을은 규모가 있었으나 빈집이 많았다. 한때 중학교였던 곳에 ‘아와시마예술가촌(栗島藝術家村)’라는 이름으로 2010년부터 작가들의 창작공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2014년부터 히비노가 감독을 맡으면서 보다 활발해졌고, 작품 aw04를 제작한 두 작가가 두드러지게 활동했다고 한다. 이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타라(TARA)일본재단의 활동에 대한 전시와 설명(aw03)도 있었고, 아와시마의 전경을 그려 놓은 ‘아와시마 큰 그림 지도(栗島大繪地圖)’와 ‘삼림에 사는 생물들의 이야기(aw04)’ 등이 있었다. 앞에서 설명했던 히비노의 두 작품과 연계된 작품들도 있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에도 작품들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이미 폐교되었나 보다.
1897년 일본 최초로 개교한 선원 양성 기관인 ‘국립아와시마해원학교(国立粟島海員学校)’(현재 ‘아와시마해양기념관 粟島海洋記念館’)가 90년 동안 운영되었다. 중학교까지 있던 그 시절에는 인구도 많았을 것이다. 2020년 정부 조사에서 102여 가구에 154여 명이 거주한다는데 홀로 사는 가구가 50세대나 된다고 한다. 게다가 고령화 비율이 85%로 시내보다 두 배를 훌쩍 넘으니 그야말로 소멸하는 섬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갯반디가 반짝이는 밤바다
아와시마는 미토요(三豊)시 타쿠마쵸(詫間町)에 속한다. 시내의 사카마항에서부터 북서쪽으로 약 4.5㎞, 15분 거리에 있고, 면적은 3.72㎢, 해안선 둘레는 16㎞ 면적 대비 상당히 길다. 서쪽 해안을 ‘니시하마(西浜)’라 하는데 이 섬에서 가장 주목받는 해수욕장이고, 석양이 아름다워 찾는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 많다. 시의 자료에 따르면 ‘우미호타루(ウミホタル)’가 많아 밤의 경치가 좋다고 했는데, ‘우미’는 바다를 말하고 ‘호타루’는 반딧불이다. 우리말로 ‘갯반디’라 한다. 이 종류는 패충류에 속하는 아주 작은 동물로 발광물질을 갖고 있어 밤바다를 반짝이게 한다. 또 섬 주변에서 상쾡이와 기타 고래도 관찰된다니 이 특별한 상황이 예술 작품에까지 반영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물론 해역도 해역이니만큼 문어도 빠지지 않는다.
시는 가가와현에서 인구 수로 볼 때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 해안개발로 인구도 늘고 도시가 커졌을 것이다. 새로운 산업의 등장과 해양자원 감소는 젊은 세대들이 고향 섬마을 떠나게 하는 강력한 동인이 되었음을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다. 한때 ‘시와쿠스이군(塩飽水軍 시와쿠수군)’의 영광도 기억을 뒤로 한 채 마을 사람들은 갈 길을 잃었다. 예술제로 생긴 박물관(미술관)이 유난히 눈이 띠는 것은 그래서일까?


벽화와 맨홀 뚜껑에 표현된, 용궁 전설
아와시마 ‘모모테마츠리(百々手祭)’는 일종의 궁사(활쏘기) 의례로 미토요시 전역에서 열린다. 어떤 지역의 의례는 국가 ‘무형 민속 문화재(無形民俗文化財)’로 지정되어 있다. 아와시마 모모테마츠리는 가가와현의 문화재이다. 액운 쫓기, 대어 풍년, 해상 안정을 위한 행사이다. 아와시마에서는 전래 동화 ‘우라시마타로(浦島太郎)’ 이야기가 내려온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 해안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데,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실려 있기도 하다. 위험에 처한 거북을 살려 준 후 용궁에 함께 다녀온 이야기이다. 이 섬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예술제 섬 중에서는 유일하다. 항구의 제일 큰 건물에 벽화로 그려 놓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맨홀 뚜껑에 관련 디자인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다른 섬에서도 자랑거리를 맨홀에 디자인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아와시마에서도 그렇게 해 놓았다.


이와시마는 섬 예술 박물관
아와시마는 예술제 작품을 통해서 섬 전체가 해양 또는 섬 예술 박물관으로 그 이미지가 바뀌었다. 여기에 오래된 선원 양성 학교, 예술가촌, 그리고 용궁 전설까지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현대 미술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최신 트렌드를 따르거나 남들이 하지 않은 기법을 동원하거나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현재 미술의 세계에 뛰어들 수 있음을.



잘 몰랐던 섬인데,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아보이네요 글 덕분에 한번 가보고싶어져요
유독 마음에 들으셨던 섬이라 그런지 사진에도 글에도 마을을 아끼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ㅎㅎ
바닷가에 떠있는 예술품. 아기자기한 소품처럼 꾸며논 예술품. 공간 예술 참 다양하네요. 심지어 멘홀뚜껑까지 예술로 승화하다니 ㅎㅎ 좀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