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의 전쟁과 기후ㅣ기후위기 뒤에 숨은 검은 손, ‘군산복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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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 정욱식
빌 크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기후변화 협정들에서 '군사 분야 탄소 배출 예외' 입장을 취해 왔다. 교토의정서, 파리협정 협의 과정을 통해 살펴보고, 미 행정부의 입장 뒤에 거대한 '군산복합체들'이 관여해 왔음을 알아본다. 현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기후 빌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산복합체'를 '딥 스테이트'의 핵심으로 지목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석유 채굴 회사 CEO 딕 체니, "교토 의정서가 미국의 군사 작전을 방해할 것"이다
앞선 글들에서 다룬 것처럼, 군사 활동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일례로 2020년 미국 국방부(펜타곤)는 5200만톤의 탄소를 배출했는데, 이는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가 배출한 양보다 더 많다. 그런데도 군사 부문은 기후위기 대처에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지구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협약 체결이 목표였다. 이에 앞서 딕 체니를 비롯한 미국의 전직 국방장관들과 여러 정치인들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교토 의정서가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군사 작전을 방해할 것”이라며, 미국이 이 의정서 가입을 거부하거나 군사 분야는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클린턴에게 서한을 보낸 사람들의 상당수가 군수 산업체나 석유 회사의 임원이었다는 것이다. 서한 작성을 주도한 체니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 때엔 국방장관을, 아들 부시 행정부 때엔 부통령을 지낸 인물로 교토 회의 당시에는 석유 채굴 회사인 핼리버튼 최고경영자였다.
빌 클린턴, 교토 회의에서 '군사 분야 예외' 관철시켜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도 이들의 입장에 동조했다. 펜타곤은 교토 회의에 앞서 이 협약이 군사 훈련, 작전, 연료 사용 등에 차질을 빚어 “군사적 준비 태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도 펜타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동맹국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토 회의 대표단의 일부는 미국이 군사 예외주의를 고집할 경우 협약 체결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파였다. 결국 미국의 협상팀은 협상 막바지에 군사 분야를 제외할 것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퇴임사에서 경고한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이 기후변화 협상장에도 깊숙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의 환경단체들은 미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처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고 비판했다. 반면 클린턴 행정부는 “중대한 승리”라고 자평했고, 존 케리 당시 상원의원은 미국 협상팀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격찬했다. 참고로 케리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후변화 특사를 맡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기후변화를 "심각한 국가안보의 위기"로 봄
21세기 들어 지구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특히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기후위기 대처에 탄력을 받는 듯했다. 그는 특히 기후변화가 난민, 자연재해, 부족해지는 식량과 물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는 “심각한 국가안보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교토의정서에서 ‘국가안보 예외’를 관철시켰다면, 오바마는 기후변화 자체를 국가안보의 위기로 봤던 것이다.
파리협정, '군사 분야 탄소 배출은 자발적 보고'로 절충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협상이 다가오면서 환경과 평화 단체들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처에 군사 분야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파리 회의에서도 군사 분야 문제가 다뤄졌다. 하지만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 보고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자발적인 보고” 수준에서 절충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협약 당사국들은 또 다시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 보고 의무를 지니지 않게 되었다.
자발적 보고를 하더라도 누락되거나 불분명·불완전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을 선택적으로 보고하거나 다른 범주와 합쳐서 보고함으로써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 현황 파악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발적 보고 국가들은 대부분 보고 대상을 육·해·공의 운송 수단과 기지 활동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무기·장비 획득 과정 및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은 보고 대상에서 누락되고 있다.
미국 750개 해외 군사 시설, 국제 수역 작전, 방위 산업체에서 배출 탄소량은 예외
미국의 예만 높고 보더라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은 해외에 750개의 군사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시설에서 내뿜는 탄소량은 자발적 보고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미 해군이 국제 수역에서 벌이는 작전에서 배출하는 탄소량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무기와 장비를 만드는 미국의 방위 산업체 및 이와 연관된 공급망에서 배출하는 탄소량도 예외 지대로 남아 있다.
바이든, 탄소 배출 제로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군사 작전은 예외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에 취임하자마자 1기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했던 기후변화 협약에 재가입했을 정도로 기후변화 대처를 핵심적인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큰 구멍은 있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2월 초에 대통령 행정명령을 내렸다. 모든 정부 기관들은 2030년까지 100% 클린 전기 사용을, 2050년까지는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외는 군사 작전은 예외로 두었다. 오바마 행정부 때에도 군사 작전을 예외로 두면서 비판을 받았었는데, 바이든 행정부도 이 문제를 시정하지 않은 것이다.
기후 빌런 '트럼프', 군산복합체의 대대적 개혁 예고
앞서 언급한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 퇴임사에서 “거대한 군사 집단과 대규모 무기 산업이 결탁하여 행사하는 영향력은 미국의 새로운 경험”이라며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정부 각 위원회에서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은 기후위기 대처 노력에도 깊숙이 뻗치고 있다. 이 검은 손을 물리치지 않으면 기후위기 대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2기 트럼프 행정부 들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를 “사기”로 규정한 트럼프는 또다시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기후 빌런”으로서의 모습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동시에 트럼프는 군산복합체를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간주하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전쟁과 기후 문제의 막후 실력자인 군산복합체의 앞날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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