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30 제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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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 박사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연구소에서 일했다. 2001년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2010년 한국 생태관광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한국보호지역포럼 대표를 2014년까지 맡았다. 2014년 제13대 경기도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끌었다. 2019년부터 2년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수중환경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환경박사 제종길이 들려주는 바다와 생태이야기』(2007),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바다』 (2002) 등이 있다.
한국의 해양생물 다양성은 크다
우린 섬나라에서 산다는 사실을 가끔 잊고 있습니다. 대륙과 연결된 바다로 돌출된 반도 국가인데, ‘웬 말인가?’ 하겠지만 사실입니다. 3면이 바다이고, 대륙으로 이어진 길은 완전히 막혀서 육로로는 다른 나라 어디든 갈 수가 없습니다. 하늘로 통하고, 바다를 건너 나가는 방법이 유일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양으로부터 한반도를 지켜 주는 큰 울타리가 되어 준 열도가 있어서 해양에서 일어나는 재해로부터 위험이 적은 편입니다. 일본의 홋카이도에서부터 혼슈 그리고 규슈에 이어 류큐열도(琉球列島)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반도를 보호하기 위해 에워싼 듯합니다. 혹자는 대양과 연결된 해양국이자 열도 국가인 일본이 부럽다고도 하지만, 지진과 해일 등을 보면 부러워할 일만은 아닙니다.
15년 전에 열린 해양생물 보전 관련 심포지엄에서 한국 해양생물 다양성이 크다는 추정치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국 해양생물의 종 수는 일본의 3분의 1에서 4분의 1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청중들은 대부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일본은 아한대에서부터 열대까지 길게 펼쳐진 국가이고, 해양의 넓이(배타적 경제수역)만 하더라도 한국의 9.4배에 이릅니다. 10분의 1은 몰라도 4분의 1이라니 너무 과장되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습니다. 3면이 바다이지만 세 곳이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고, 각 바다도 나름 독특한 환경과 서식지를 갖고 있어서 각기 다른 해양생물들이 많이 분포합니다. 이 부분만 잘 증명하면 저자의 약간 허황한 주장도 “그럴 수 있겠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서해, 조차가 심하고 갯벌이 펼쳐지는 바다
한번 살펴볼까요? 서해는 최고 수심이 99m에 불과합니다. 약 8000년 전만 하더라도 강의 하구이거나 육지였습니다. 해안선이 매우 복잡하고, 조차(潮差)는 전 세계에서 상당히 큰 곳이어서 거의 10m에 육박합니다. 물론 이 조차는 남쪽으로 갈수록 5m 정도로 작아지지만 그래도 큰 편이라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서해안의 해안 경사도 매우 완만합니다. 그러니 썰물 때에는 드넓은 갯벌이 드러납니다. 바닷물이 들 때와 날 때 수심 10m 차이를 한번 상상해보기 바랍니다. 또 서해로 담수를 내어놓는 큰 강도 많습니다. 남한만 하더라도 한강, 금강, 만경강과 동진강, 영산강 등이 있습니다. 그러니 퇴적물 공급이 많고 영양분이 풍부하며 염분도 다른 바다와 달리 낮습니다. 이런 바다가 일본에는 없습니다.
동해, 조차가 낮고 수심이 깊은 바다
한편 동해는 정반대입니다. 우선 조차가 1m 전후로 아주 작아서 물이 들고 나는 게 뚜렷하지 않습니다. 큰 강도 없고, 해안선도 단순합니다. 그러니 갯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안 경사도는 엄청 가팔라서 해안에서 조금만 나가도 바로 깊어집니다. 동해는 ‘수괴 구조(water mass)’가 대양과 유사해 ‘미니 대양(ocean miniature)’이라 할 정도로, 비록 규모는 작지만 대양의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최고 깊은 곳은 4000m가 넘고, 해저의 수온은 빙점에 가깝습니다. 동해와 외해 즉 태평양과 직접 소통하는 통로인 해협은 세 곳이 있는데, 동해의 수심과 비교하면 아주 얕습니다. 대한해협은 수심이 200m 정도이고.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의 쓰가루 해협(津輕海峽)은 130m에 불과하며 다른 한 곳은 더 낮습니다. 그래서 태평양과 활발한 교류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동해에 들어오는 물은 표층을 중심으로 회유한다고 봐도 됩니다. 이런 바다의 한 가운데 턱 하니 있는 울릉도와 독도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점은 지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남해, 난류가 거칠게 지나가는 바다
서해와 동해, 두 바다 사이에 있는 남해는 물리적으로는 중간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조차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작아지는데 해안 경사도나 해안선의 굴곡도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그런데 남해가 확실하게 다른 것은 연안 수심 얕은 곳이나 내만을 제외하고는 남해의 전역, 전 수층에 걸쳐 난류가 지나간다는 점입니다. 바로 구로시오해류의 지류입니다. 보통 남해, 대한해협을 지나는 지류를 지칭할 때는 대마난류라고 하지만, 그 난류의 영향을 이야기할 때 구로시오를 바로 들어 말할 때가 많습니다. 다이버들은 바로 짐작하겠지만 다른 두 바다에 비해 수온이 높고 따라서 염분도 살짝 높은 편입니다. 동해는 과거에 거대한 담수호였다는 증거들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염분이 낮습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류의 영향도 있고 전체적으로 수심이 깊으니 동해는 전반적으로 찬 바다로 봅니다. 남해로 돌아와서 육지 인근 섬들은 난류가 갖지 않은 나름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문도와 비진도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필자가 예전에 조사한 두 가지 보고서의 내용을 잠시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87년과 1988년 2년에 걸쳐 남해안 10개 섬, 즉 서쪽에서부터 만재도, 추자도, 관탈도, 제주도 문섬, 여서도, 거문도, 소리도, 욕지도, 비진도, 홍도의 바위 해안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섬들 가운데 거문도에 저서동물과 해조류가 모두 가장 많은 종으로 출현했습니다. 다음이 여서도였고요. 이 거문도와 여서도는 비진도나 소리도처럼 육지에 가까운 섬들, 그리고 제주도 문섬과 차이를 보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거문도와 여서도는 남해안에서 보자면 남해의 외곽이면서 난류 흐름의 한 가운데 위치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동해 독도 인근과 서해 남단 가거도 인근의 연체동물 종이 유사하다
다른 한 보고서는 약 30년 전인 1996년과 1997년의 독도 조사에서 채집한 대형 연체동물(종의 이름을 파악할 때 동정(同定) 오류가 가장 적은 동물군)을 다른 15개 지점, 즉 남해로는 제주도의 북부, 동부, 서부, 남부의 마라도와 가파도, 가거도, 거문도, 진도, 완도, 그리고 서해로는 영흥도, 영광, 태안; 남해의 앵강만, 기장, 그리고 동해로는 안인진, 울릉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고 출현 종들의 유사한 정도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독도와 울릉도가 가장 유사했는데 이건 당연하고, 특이하게도 이 두 섬은 서해 남단의 가거도와 상대적으로 유사하게 나왔고, 그다음으로 거문도와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서해의 영광은 영흥도와 높은 유사도를 나타냈을 뿐 다른 해역과는 유사도가 낮았고, 독도와는 거의 유사성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해류의 영향이 크다는 점과 우리 서해가 많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해양 환경은 바다에 따라 참 다르고 다양합니다. 지금껏 우리 바다를 너무 많이 개발해서 아쉽지만, 지금부터라도 잘 지키고 복원해 간다면, 우리 바다의 자원을 잘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에서 밝힌 ‘우리나라 해양생물 다양성의 추정 방식’은 좀 더 보완하여 다음 기회에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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