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제종길
제종길 박사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연구소에서 일했다. 2001년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2010년 한국 생태관광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한국보호지역포럼 대표를 2014년까지 맡았다. 2014년 제13대 경기도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끌었다. 2019년부터 2년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도시인숲 이사장과 수중환경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환경박사 제종길이 들려주는 바다와 생태이야기』(2007),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바다』 (2002) 등이 있다.
장비, 경험, 체력을 갖춰야 올바로 본다
두 달만에 쓰시마를 다시 찾았습니다. 오오타하마 해변에서 본 산호초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속 각오도 남달랐습니다. 오랜 다이빙 경력을 가진 사람들에겐 감이 있는데 쓰시마 바다는 부산과 유사하고 제주도보다 좀 더 거칠다는 느낌을 들게 했습니다. 만만찮다고 하는 생각과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이 반반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나이가 많은 세 다이버만 갔습니다. 원로 특공대였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는 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비도, 경험도, 체력도. 사실 세 가지를 다 가춰야 바닷속을 올바로 볼 수 있습니다. 탐사팀의 다이버들은 일반 다이버들이 이 세 가지를 다 갖추려면 그들 나이쯤 돼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이렇게 믿고 나섰습니다. 내친김에 이끼노시마(쓰시마에서 페리가 있음)까지 가자했지만 일정 조정이 잘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첫 다이빙이 있은 지 두 달이 지나 쓰시마에 들어섰습니다. 긴장감은 첫 방문보다 줄었지만 바다 입수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여전히 쉽지 않은 쓰시마 다이빙
이번 장소에서도 25여 년 전부터 조초산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2005년부터 약 5년간 대형 갈조류 숲이 사라지고 민둥바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차차 북쪽으로 이동했고, 이젠 북섬의 북쪽 해안 일부에서만 갈조류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이빙 가게의 주인이자 가이드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전복과 소라도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도착 다음 날 아침에 안내받은 곳은 오오타하마 해수욕장보다는 조금 가까우면서 같은 미쓰시마마치(美津島町)에 있는 다카하마(高浜) 어협 항[일본어 지도에는 ‘美津島町高浜 (漁協)’으로 되어 있음]이었습니다. 어선이 몇 척 있었지만, 활기를 잃었음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작은 어선 한 척에 올라 다이빙을 준비하면서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는 좀 편하게 다이빙할 줄 알았는데 20년 전 우리나라의 막 다이빙 방식이었습니다. 어선에서 물속으로 뛰어들고 올라와야 하는 힘으로만 하는 방식. 일본 가이드 분이 태연하니, 할 말은 없었습니다. 오전에 두 번 그리고 점심 후 두 번 다이빙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초산호가 자리 잡고, 기존 해양생물들을 밀어내다
항을 나와 해안을 따라 약 1.2km를 가니 세 섬—카미노시마(神ノ島), 카미네오시마(上根緖島), 시모네오시마(下根緖島)가 나오고, 첫 다이빙은 그중 제일 큰 카미네오시마의 동쪽에서 했습니다. 두 번째는 시모네오시마 남쪽에 있는 수면 위로 나온 작은 암초에서 했습니다. 각각 30분 정도 다이빙했고, 다이빙 목적에 맞게 수심 10m 전후에서 관찰했습니다. 너울이 있어 배에 오르내리는 일이 조금은 힘겨웠습니다. 절대 나이 탓이 아니라고 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한 명의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서 오후엔 수중촬영을 카메라 한 대로만 해야 했습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쓰시마였습니다. 오후엔 한 곳에서 두 번 다이빙했는데 포인트의 이름이 그랜드호텔이었습니다. 육지 쪽 전면 절벽 위에 있는 호텔의 이름이었습니다.
세 곳은 모두 동일한 상황이었습니다. 조초산호들이 자리 잡고, 기존의 주인들을 밀어내는 게 역력했습니다. 죽은 방패연잎성게 사체들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물속엔 엄청난 물고기 떼가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전갱이의 어린 개체, 벤자리, 얼게비늘류의 떼 그리고 제주 바다에서 흔히 보는 종들로 가득했습니다. 다금바리도 한 개체 보았습니다. 왠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수온이 더 먼저!”
쓰시마에도 전복류 세 종—참전복, 왕전복, 말전복이 다 있었습니다. 전복류는 바위 해안에서 나는 소중한 수산자원으로 취급받았습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이소노케(기소磯燒, 일본식 표현으로 갯바위가 타는 현상, 즉 바위에 사는 생물 특히 대형 해조류가 사라지고 작은 회백색의 석회조류만 있는 현상을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백화현상 또는 갯녹음 현상이라고 함)의 영향이 큰 쓰시마 해안에서는 전복들이 어획되지 않았습니다. 대형 갈조류가 남아 있는 해안에서는 전복 어획량의 감소가 크지 않았습니다. 이로 보아 이소노케가 전복 어획량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해조숲(藻場)이 소실된 곳은 1993년에 북섬에만 12곳 중 11곳이었는데, 15년 후인 2008년에는 전 연안에서 걸쳐 55곳으로 늘어났습니다. 앞의 글에서 조장 쇠퇴의 원인을 초식동물로 보았고, 그다음으로 수온을 꼽았습니다. 전 “수온이 더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태평양의 열대 산호초가 쓰시마 해역에서 확인되다
앞의 연재 글에서 소개한 쓰시마 보고서에 따르면 수온이 아주 높았던 2013년 8월 13일부터 27일까지 쓰시마 주변 해역의 수온 분포는, 30℃ 등온 구역이 모두 쓰시마 동쪽이었으며 서쪽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이것은 쿠로시오의 지류인 쓰시마난류가 쓰시마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더 강하게 흐르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제주 바다의 현상을 규명할 때 우리는 이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고서에는 놀라운 기록들이 가득했습니다. 2010년에 아크로포라 산호초가 발견된 기록이 있다는 점입니다. 북섬의 서남부 지역인 토요마마초(豊玉町)의 쯔나시마(綱島) 동쪽 해안에서 전형적인 조초산호인 ‘아크로포라 솔리타리엔시스(Acropora solitaryensis)’의 분포가 2010년 9월에 처음 확인되었습니다. 이 종은 산호 삼각지대를 비롯한 태평양 열대 해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종입니다.
이 보고서에 이런 기술도 있었습니다. “조초산호와 해조숲을 형성하는 대형 갈조류는 모두 ‘고착 기반(암반)’과 빛이 있어야 하는 생물입니다. 경쟁 관계일까요?” 답은 당연히 “예”입니다. 하지만 수온 상승으로 해조류의 기력이 이미 쇠잔한 다음에 벌어진 경쟁인지라 조초산호들이 절대 유리한 국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온이 중요합니다. 또 주목할 종은 아크로포라 속의 다른 한 종 ‘아크로포라 프루이노사(Acropora pruinosa)’인데 남섬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본 조초산호는 이 종이라 여겨집니다. 이미 일본해역에서 분포 보고가 많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복이 잡히지 않는, 유명 해녀촌
4000여 년 전부터 있었던 덩어리형 조초산호가 있는 곳은 탁도가 높아 오래전부터 해조숲과는 경쟁하지 않았고, 해역 전체로 볼 때는 서로 공존했습니다. 제주 바다에 침입한 바위에서 해조류를 밀어내고 있는 납작한 잎사귀형 돌산호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더라도 기존의 온대해역에서 이미 적응한 덩어리형 산호초보다는 사슴뿔 모양의 아크로포라 속 조초산호의 확산에 관심을 더 두려고 합니다. 우리가 쓰시마에서 다이빙한 두 곳 근처에 유명 해녀촌인 마가리(曲)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도 전복 자원의 감소로 어업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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