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제종길
제종길 박사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연구소에서 일했다. 2001년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2010년 한국 생태관광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한국보호지역포럼 대표를 2014년까지 맡았다. 2014년 제13대 경기도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끌었다. 2019년부터 2년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도시인숲 이사장과 수중환경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환경박사 제종길이 들려주는 바다와 생태이야기』(2007),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바다』 (2002) 등이 있다.
세키세이 라군의 산호초를 위협했던, 악마불가사리
제주 바다와 산호초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하루라도 빨리 오키나와 남쪽 바다를 다시 가야만 했습니다. 그곳의 상태를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앞의 연재에서 언급한 것처럼 1999년에 이시가키지마(石垣島)를 찾았고,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방문했었습니다. 섬 주변에는 건강한 산호초가 가득했습니다. 이 섬과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 사이에는 ‘세키세이 라군(Sekisei Lagoon)’이라고 하는 아주 얕은 바다가 있는데,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큰 산호초 지대입니다. 그곳에서 일본 연구팀과 함께 다이빙했습니다.
당시에 산호초의 주된 위협 요인은 ‘가시관불가사리(crown-of-thorns starfish)’였고, 지역 다이버들이 수중에서 불가사리에 포르말린을 주입하거나 퇴치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름이 최대 80cm까지 자라는 큰 덩치에 등에 굵고 긴 가시가 나 있는 무시무시한 포식자는 산호 폴립을 닥치는 대로 먹었습니다. 오죽하면 ‘악마불가사리’라고까지 했겠습니까? 당시 일본에서 이 살벌한 불가사리의 분포도까지 작성하고 산호초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을 현장에서 바라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도 일부 학자들은 수온 상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무시될 정도 건강한 산호초들이 많았습니다.
일본 최대 산호초가 있는, 미야코지마
앞의 두 섬은 일본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큰 유인도로 타이완 가까이에 있는 섬입니다. 이키노시마 이후에 조급했습니다. 열대 바다로 가야 했습니다. ‘이시가키지마’가 떠 올랐습니다. 고민하면 귀인이 도움을 주곤 하는데 선배인 김 교수가 미야코지마(宮古島)로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것도 10월에. 가려고 했던 섬은 아니지만 류큐 열도에서 그 섬과 가까이 있는 섬이고, 일본 최대의 산호초가 있다고 해 망설이지 않고 따라나섰습니다. 다이버들은 모두 7명이 모였지만 이전 탐사팀의 핵심인 두 다이버 외에도 오랜 수중계 동료들이어서 오히려 다이빙 탐사 여건은 더 좋았습니다. 처음 가는 미야코지마를 향해 “안녕!”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만날 때나 헤어질 때 모두 안녕이라는 말을 쓸 수 있으니까요. 찾아가는 바다에 인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년 전 오늘인 10월 10일은 미야코지마를 떠나 귀국한 날이었습니다. 6박 7일 중 5일을 배에서 먹고 잔 소중한 여행이었지만 가슴 아픈 기억을 잔뜩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면 인천공항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키나와 나라 공항을 거쳐 미야코지마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습니다. 동료 다이버들은 모두 물에 미친 사람들이라 바로 바다로 달려가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우리 일행을 일주일간 태우고 다닐 카타마란 요트에 올라타자마자. “자, 갑시다!” 했습니다. 평균 나이 70세에 인데도 바다만 보면 열정이 솟았습니다. 바다를 잘 알아야 지킬 수 있을 터이니 어쩌면 이들이 바다를 수호할 마지막 전사일지도 모릅니다.
미야코지마, 그 용궁이었나?
수중을 한창 드나들 때인 20대 중반에는 바다 어딘가에 용궁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영화 <아쿠아맨>에 나오는 수중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있으니 그런 영화나 인어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 아니겠냐는 논리를 폈습니다. 예전에 제주 어부가 표류하여 오키나와에 와 전혀 훼손되지 않은 산호초와 선명하고 화려한 온갖 물고기 떼 그리고 거북과 진귀한 바다생물들을 보곤 고향에 돌아가서 용궁에 다녀왔다고 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25년 전엔 세키세이 산호초 사이를 유영하면서 그 옛날 어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수중 경관이 정말 황홀했습니다. 미야코지마 ‘宮古島’를 우리말로 읽으면서 ‘궁’에서 또 용궁이 떠올랐습니다. 가는 길이 마냥 설레었습니다. 지나친 상상인가요?
“나를 잊지 말아요!”
바다 사정이 안 좋아 결국 다음 날 아침에야 첫 다이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에 뛰어들어 바다 안으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전경은 아크로포라 산호(일명 사슴뿔산호)의 공동묘지였습니다. 기록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원 산호초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일부 어류를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개체가 보이지 않았다.” 2008년부터 2018년 사이에 수온 상승으로 백화 현상이 일어나 산호초 생태계 거주자의 약 70%가 감소했다고 한 위키피디아의 지적이 사실이었습니다. 일본인 선장은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죄인 같은 표정으로 가시관불가사리의 수가 준 것도 '먹이가 줄어서'라면서 “그놈들이 워낙 사납게 쥬산텔레를 먹어 치운 후유증도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사슴무리가 없는 황량한 벌판에 색바랜 사슴뿔만 작은 언덕처럼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산호초를 따라서(Chasing Coral)>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산호가 죽어가면서 “나를 봐요(Look at me!)”라고 했을 거라고 다이버가 생각하는 장면. 왠지 “나를 잊지 말아요!”로 들었던 바로 그 장면.
불안한 산호초, 야비지
미야코지마는 미야코쇼토(宮古諸島)의 중심 섬으로 이라부시마(伊良部島) 등 여섯 개의 부속 도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섬의 서쪽 해안은 다이빙을 비롯한 다양한 레포츠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고, 동쪽 해안은 상대적으로 관광이 덜 개발된 곳이나 전문 다이빙이 주로 이곳 해안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주요 다이빙 사이트도 동쪽에 많았습니다.
섬의 북쪽에는 산호초 군이 제일 크다고 일본이 자랑하는 야에간세(八重干瀬)가 있는데 보통 야비지(やびじ) 또는 야비지 리프(Yabiji Reefs)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이곳과 가장 가까운 이케마시마(池間島)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주민들의 삶과 신앙이 배어있는 생활의 공간인 산호초였습니다. 규모는 이 섬의 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남북 약 17km 그리고 동서로 약 7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야비지에는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산호초들이 있으며 환경성에서 2001년부터 중요 습지 500개 중 하나로 지정하여 ‘자연환경과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013년에는 명승·천연기념물로도 등록되었습니다. 또한 ‘환상의 대륙(幻の大陸)’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이는 대조 썰물에 산호초가 공기 중으로 드러날 때를 말하는데 음력 3월 3일경에 가장 많이 노출된다고 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 선박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해안개발 붐, 산호초는 어쩌죠?
우리가 가기 일 년 전 여름에도 해수면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해에 류큐대학교 연구진들이 세키세이 라군에서 조사한 결과를 요미우리 신문(2022)이 취재한 기사에는 라군의 90% 이상이 백화 현상을 겪었다고 썼습니다. 물론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절반 이상이 죽은 2016년 이후 최악이었다고 했습니다. 미야코지마에서 야비지를 포함하여 열다섯 번 다이빙했는데 완전하게 건강한 산호초는 하나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랫바닥에 있는 작은 바위에는 막 자라나는 건강해 보이는 어린 조초산호들은 여럿 보았습니다. 백화 현상을 겪고 살아난 산호들은 시련을 더 잘 견딘다는 문헌이 있고, 산호 양식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전문가의 인터뷰도 봤습니다. 마지막 희망으로 들렸습니다. 돌아올 때 육지에 올라오니 해안개발 붐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산호초는 어쩌죠? 산호들에게 부디 견디라고 “안녕 미야코지마!”하며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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