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8 제종길
제종길 박사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연구소에서 일했다. 2001년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2010년 한국 생태관광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한국보호지역포럼 대표를 2014년까지 맡았다. 2014년 제13대 경기도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끌었다. 2019년부터 2년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도시인숲 이사장과 수중환경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환경박사 제종길이 들려주는 바다와 생태이야기』(2007),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바다』 (2002) 등이 있다.
오키나와보다 더 남쪽 열대 해역은 어떨까?
남행 수중탐사를 기획하면서 세상의 인연을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엔 쓰시마에만 가서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이키노시마로 이어지게 되고 미야코지마까지 자연스럽게 가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않은 일이었지만 너무나 순탄한 연결이었습니다. 일본 산호초는 여러 자료에 오키나와 이남이 그 이북보다 피해가 크다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더 남쪽 적도 해역은 어떨까?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김 교수가 다시 ‘데라완 군도(Derawan Archipelago)’와 ‘암본(Ambon)’을 가자고 했습니다. 두 곳 다 인도네시아이고, ‘산호 삼각지대(coral triangle)’ 내에 있습니다. 두 곳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지만, 육지에서 머물면서 인근 다이빙 사이트를 찾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암본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한 장소에 머물며 섬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미야코지마 이후 연달아 다이빙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일정이 도저히 되지 않아 2024년 데라완 다이빙을 기다렸습니다.
인도네시아 모로타이 섬을 가다
지난해 초 어느 날 한 기업인이 인도네시아 모로타이(Morotai) 섬을 가자고 했습니다. 자카르타에 본사가 있는 한 인도네시아 건설사가 추진하고 있는 해양 리조트 활성화 대책으로 한국 해양 관계자들의 의견이 필요했던 것 같았습니다. 산호 삼각지대에 속해 있는 섬이어서 망설이지 않고 따라나섰습니다. 주거지와 가까운 해안은 개발과 폭발물 어업으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는데 마치 쓰레기 더미 위에 꽃 몇 송이가 피듯이 작은 조초산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미야코지마보다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다이빙을 네 곳에서 했는데 그중 한 곳이 ‘산호 정원(coral garden)’이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보아 온 산호초 중에서 가장 예쁘고 화려했으나 전혀 어수선하지 않았습니다. 피해당한 흔적도 없었습니다. 가이드에게 어떻게 이리 잘 보존되어 있느냐고 했더니. “산호 삼각지대이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인근 다른 장소의 수중에는 작은 조초산호 조각을 키우는 곳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외국 학술대회에서 받아온 서명이 “해양 생물다양성”이라는 영문 화보에서 핵심지역(hotspot)으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해(Sulawesi Sea) 일대를 강조한 지도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핵심이 가장 붉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색이 옅어졌는데 언젠간 그 해역에 가서 다이빙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동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여러 차례 다이빙했지만, 그곳엔 가질 못했습니다. 산호 삼각지대 중에서도 다른 곳은 이 바다보다는 생물다양성이 낮을 것으로 지금까지 믿어 왔습니다.
장엄한 바다, 술라웨시해
탐사 핵심 멤버들이 어느 날 온라인으로 데라완 군도를 가는 일정을 알려 왔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술라웨시해의 일부였습니다. 25여 년 전에 꿈꾸던 그곳이었다니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10일 오후에 출발해 한밤에 자카르타에 떨어져 잠만 자고 서둘러 타라칸 공항을 거쳐 그곳 항에서 다이빙 전용 선박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약 10시간을 남쪽으로 항해해 도착한 곳이 데라완 섬 근해였습니다.
그러니까 술라웨시해를 서쪽 해안을 따라 남하한 것이었습니다. 셀레베스해(Celebes Sea)라고도 불리는 이 바다는 북쪽으로 술루 군도(Sulu Archipelago)와 민다나오섬, 동쪽으로 산기헤제도(Sangihe Islands), 남쪽으로 술라웨시섬, 서쪽으로 보르네오와 접해 있는 보호된 해역이었습니다. 남북으로 675km, 동서로 837km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전체 바다의 면적은 28만㎢에 이릅니다. 남한의 약 세 배나 되는 넓이입니다. 전체 바다의 절반 이상이 깊이가 4000m 이상이며, 확인된 최대 수심은 6220m나 되니 깊고 넓은 바다입니다. 사진작가 마이크 세번스(Mike Severns)와 생물학자 폴린 파인-세번스(Pauline Fiene-Severns)가 7년간 탐사 후에 1995년에 출판한 한 저서에서는 이 바다에 3000종 이상의 어류와 75속(종이 아님) 조초산호가 사는 풍요롭고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삼각지대의 핵심지역이 술라웨시해임을 암시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술라웨시해: 인도네시아의 장엄한 수중 세계(Sulawesi Seas: Indonesia's Magnificent Underwater Realm)』. 데라완 군도로 가기 전에 그 생물다양성 화보를 찾아 책장을 다 뒤졌지만 끝내 찾질 못했습니다.
뭔가 독특한 데라완 군도의 수중
데라완 군도는 ‘칼리만탄 티무르(Kalimantan Timur, 동칼리만탄)’ 주 베라우(Berau) 지역 해안에서 10km에서 90km 정도 떨어진 31개 섬을 일컫습니다. 그 가운데 물이 나오는 데라완과 마라투와(Maratua) 섬에만 사람이 살고 섬이 크기나 인구수에서 마라투와 섬이 크고 많으나 육지와 가까운 데라완 섬이 행정 중심입니다. 주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인기 다이빙 목적지는 서로 이웃한 다섯 섬—데라완, 마라투와, 카카반(Kakaban), 상가라키(Sangalaki), 바쿤간(Bakungan) 등입니다. 다이빙 투어는 대개 이 다섯 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7박 8일 중 5일간 17차례 다이빙했습니다. 하루에 서너 차례 강행군이었습니다. 데라완 군도에는 ‘작은 산호초 군(patch reef complex: 더 큰 산호초 시스템과 분리된 작고 고립된 산호초들이 무리를 이룬 것)’, 거초 그리고 환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라투와는 세 환초 중의 하나입니다. 이곳의 해양 생물다양성을 이야기할 때는 2004년에 발표된 ‘자연보전협회 인도네시아 프로그램(the Nature Conservancy Indonesia Program)’의 조사 자료를 인용합니다.
술라웨시해는 전 세계 해양생물의 핵심지역일까?
이 문헌에 따르면 바다거북(green turtles)과 만타가오리의 중요한 서식지입니다. 산호초 어류는 77과에 속하는 872종이 확인되었으며, 또한 약 460~470종의 조초산호가 기록되었습니다. 8종의 잘피류, 8종의 고래류, 6종의 거북류, 26개의 잠재적인 어류 산란 집합 장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강의 하구, 잘피밭, 맹그로브숲 그리고 심해로 이어지는 대륙붕 등 다양한 해양 서식지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데라완 군도는 반드시 보호해야 할 대상이자 동시에 해양생물의 보고임을 보여 줍니다. 이곳의 조초산호 다양성이 솔로몬제도(Solomon Islands), 라자암팟제도에 이어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라고 하지만 섬의 수와 해역의 면적 등을 고려해서 비교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술라웨시해는 과연 전 세계 해양생물의 핵심지역일까?
지난 기사 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