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의 전쟁과 기후ㅣ군사력의 역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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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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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월 10일
군사력은 비생산적이나 필수고, 사용되지 않은 데 사용가치가 있고, 막대한 자원이 들어간다는 역설과 특성이 있다. 기후위기의 사각지대인 군사 분야에서 군비축소를 통해 기후위기를 해결할 재원을 마련하자는 발상을 내보자.
정욱식 2025-02-06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비생산적이지만 필수
군사력은 역설 그 자체이다. 우선 군사력은 ‘비생산 분야’에 해당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군사력 자체가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해 사회에 기여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총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탱크나 전투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는 말도 이러한 취지에서 나온 것일 게다.
그렇다고 군사력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군사력은 국가안보 수호를 위해 존재하는데, 국가안보는 다른 가치를 보호하고 실현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군사력은 ‘비생산적이지만 필수적인 분야’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용하지 않을 때 실현되는 가치
또 하나의 역설은 군사력의 사용가치는 사용하지 않을 때 실현된다는 점에 있다. 타자를 향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순간 살상과 파괴를 가져오고 나도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군사력의 사용 위협을 통해 타자의 공격을 억제하는 것이 국방정책 본연의 역할이다. 이를 ‘불사용의 사용가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전 세계 군사비는 2조4430달러
또 한 가지 특성은 군사력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이 들어간다는 점에 있다. 한국만 보더라도 전체 인구의 약 1%가 군인이고, 국방비는 60조원을 돌파하고 있다. 세계 군사비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에서 지출된 군사비는 2조4430달러다. 이는 냉전의 절정기였던 1980년대 중반보다 7천억달러 이상 증가한 것이다. 또 주요국들의 군비증강 계획과 최근의 전 세계적인 흐름을 종합해 볼 때, 2030년 이전에 3조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높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동맹국들을 상대로 국방비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있기에, 그 시점이 빨라질 수도 있다.
총, 전함, 로켓은 노동자의 땀, 과학자의 재능, 어린이의 희망을 소모한다
군사력의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은 ‘한정된 자원을 군사 분야에 얼마나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가장 현명한 태도는 비생산적이고 사용하지 않을수록 좋으며 막대한 자원이 들어가는 군사력을 가급적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라 ‘소소익선(少少益善)’인 셈이다. 이를 날카롭게 포착한 인물이 바로 ‘2차 세계대전 영웅’으로 불리면서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이다. 그는 1953년 ‘평화를 위한 기회’라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 바 있다.
“만들어진 모든 총과, 진수된 모든 전함과, 발사된 모든 로켓은 궁극적으로 굶주려도 먹지 못하고 헐벗어도 입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무기로 가득한 세계가 소모하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세계는 노동자의 땀과, 과학자의 재능과, 어린이의 희망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현대식 중폭격기 1기의 비용은 30개 이상의 도시에 벽돌로 만든 현대식 학교를 세우는 비용과 맞먹습니다. 이 돈이면 6만명 인구가 사는 도시에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소를 2기나 지을 수 있습니다. 이 돈이면 완벽한 설비를 갖춘 병원을 2개나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축함 1척을 위해 모두 8천명 이상이 살 수 있는 새 주택에 해당하는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중략) 국가 간의 건전한 신뢰와 협력 노력을 토대로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전쟁무기가 아니라, 밀과 목화로, 우유와 양털로, 또 고기와 목재와 쌀로 강화될 수 있습니다.”
최근, 군비축소를 주장하는 국가나 지도자가 줄고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다. 군사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인지라 많은 국가들은 강한 군사력을 신봉하기 십상이다. 또 군사력을 사용할 일을 없게 만들려면 상대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인식도 강하다. 최근 들어서는 군수산업이 일자리 창출과 수출 등 경제 부문에서도 큰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맹위를 떨친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미 존재했던 군비통제와 군축 조약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군비축소를 주장하는 국가나 지도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 갈수록 군사주의에 심취해 '기후악당'이 되고 있다
이렇듯 군사력은 상당히 논쟁적인 이슈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관점이 절실해지고 있다. 기후위기 대처의 가장 큰 사각지대가 바로 군사 부문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군사 부문은 탄소 배출, 재원 마련, 국제협력 등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관심도 이를 통제하려는 노력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다.
한국에 시선을 맞춰본다면, 한국은 갈수록 군사주의에 심취해 있는 ‘기후악당’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지구상에서 안보가 가장 불안한 지역이자 기후위기 취약 지역 가운데 하나로 언급된다.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위기도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은 첨단 전투기나 미사일의 비행을 보면서 환호를 보내는데, 이들 무기가 내뿜는 화염 속에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탄소가 들어 있고 각종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재원이 담겨 있다는 전환시대의 발상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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