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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남행(南行) 수중 탐사 ⑨ 데라완군도를 떠나며

 

2024-10-25 제종길


제종길 박사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연구소에서 일했다. 2001년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2010년 한국 생태관광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한국보호지역포럼 대표를 2014년까지 맡았다. 2014년 제13대 경기도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끌었다. 2019년부터 2년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도시인숲 이사장과 수중환경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환경박사 제종길이 들려주는 바다와 생태이야기』(2007),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바다』 (2002) 등이 있다.

 

월리스 라인의 서쪽 바다에서 다이빙


매년 진도 여행을 갈 때마다 목포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머뭅니다. 부부가 운영하는데 방마다 작은 그림과 책들이 놓여 있어 숙소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책장에 『말레이 제도(Malay Archipelago)』라는 두꺼운 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학창 시절 진화학을 배울 때 들었던 ‘월리스 라인(Wallace Line)’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당연히 저자는 유명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이지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책을 구하려고 했으나 큰 서점에도 없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중고 서적도 귀할 뿐 아니라 새 책과 가격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좋은 두터운 책이란 뜻이죠. 이 책이 우리 다이빙 목적지인 데라완 군도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너무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바다에서 다이빙했다는 의미이지요. 작년 모로타이섬을 갔다 돌아오면서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마나도(Manado)’ 공항에서 월리스 라인에 관한 커다란 벽보 그림을 보았습니다. 술라웨시의 한 도시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월리스의 라인을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월리스 라인은 동남아시아와 파푸아뉴기니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동물군을 대비한다. 해수면이 현재보다 110m(360피트) 이상 낮았던 마지막 빙하기 최대치(Last Glacial Maximum) 당시 육지의 예상 범위는 회색으로 표시되었다. 발리와 롬복 사이에 있는 롬복해협은 거리상 좁지만 깊었다. 해수면이 낮아지는 빙하기 최대치 시기에도 이곳은 바닷물이 여전히 깊어서 장벽으로 작용했다. (지도_위키피디아의 지도와 설명을 일부 수정함.)

우리가 다이빙한 곳이 바로 월리스 라인의 서쪽 바다였습니다. 아마 다음 내용은 여러분들도 잘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생물의 진화에서 바다로 떨어진 두 지역이 지각판의 이동 또는 해수면 상승 등으로 지리적으로 격리가 되면 두 섬의 생물들은 독자적으로 진화를 하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물군의 차이가 유지됩니다. 산호 삼각지대에는 ‘동남아시아 대륙(이하 서쪽)’에서부터 ‘파푸아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이하 동쪽)’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섬이 징검다리처럼 열을 지어 있습니다. 섬들 사이에 깊은 해협이 있거나 넓은 바다가 있으면 생물들, 특히 육상 동물들은 이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상생물들을 기준으로 볼 때 서쪽과 동쪽 생물들의 경계를 ‘월리스 라인’이라고 보면 되는데 선은 발리섬과 롬북섬(Palau Lombok) 사이(좁지만 깊은 롬북 해협)를 지나 술라웨시해를 거쳐 북쪽으로 이어지는데 그 선이 필리핀의 동서 어느 쪽으로 가는가는 학자에 따라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일대의 섬들 생물상이 서쪽에 더 가까운 섬들과 동쪽과 더 가까운 섬들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양쪽의 중간에 있는 술라웨시섬과 주변 섬들은 두 쪽의 생물들이 있으면서 고유종들도 있어 동서쪽의 섬들과 구분하여 이곳을 주변 해역과 더불어 ‘월라시아(Wallacea)’라고 합니다.


다이빙 사이트는 환초(atoll)의 외해에 있다


타라칸항에서 밤새 항해한 후 아침에 도착한 곳은 데라완섬 근처였습니다. 그곳에서 준비 다이빙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부터 본격적인 다이빙을 기다리며, 이 중요한 바다에 뛰어들 것을 생각하니 “과연 어떨까?” 하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술라웨시해를 떠나올 때까지 17번의 다이빙을 했지만 네 번을 빼곤 모두 마라투와섬에서 했습니다. 데라완섬 외에 카카반섬에서 두 번 그리고 상가라키섬에서 한 번 한 것이었습니다. 데라완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마라투와섬에는 인기 다이빙 사이트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앞의 연재에서 바쿤간섬을 언급했지만,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마라투와섬의 일부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이트 ‘누누칸 익스프레스(Nunukan Express)’도 마찬가지로 마라투와섬의 일부로 보고자 합니다.

이 두 곳을 설명하려면 ‘환초(atoll)’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산호초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하는데, 육지에 붙어 발달한 ‘거초(fringing reef)’, 육지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육지 연안과 평행하게 발달하는 ‘보초(barrier reef)’ 그리고 환초가 있습니다. 단어 ‘barrier’는 장벽을 뜻하지요. 세계 최대의 산호초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보초(Great Barrier Reef)’가 대표적인 보초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산호초가 자라 수면 위로 노출되어 그곳에 토양이 쌓이고 식물이 자라면서 육상부가 된 산호초를 환초라 하는데 중앙부에는 수심이 얕은 호수, 즉 석호(lagoon)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면 가장자리는 육상부이고, 안쪽은 호수가 있는 형태인 반지 모양이라고 상상하면 됩니다. 마라투와처럼 타원형이면서 가장자리가 다 막히지 않은 형태도 있습니다. 열린 부분에서도 작은 육상부가 생겨 독립 섬처럼 보이는 것이 바쿤간과 누누칸 같은 곳입니다(연재 8의 지도를 참조). 다이빙 사이트는 다 환초의 외해 쪽에 있었습니다.

바라쿠다 떼. 데라완군도의 대표적인 관광 매력 생물은 바라쿠다와 만타 떼인데 잘 볼 수가 없었다. 이것도 환경의 영향인지 궁금했다. 사진_정희철

빛 잘 들고, 수심 얕은 곳에 조초산호


첫 다이빙 사이트를 제외한 16곳의 산호초는 기본적으로 유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심은 25∼45m 정도이고 기울기는 조금씩 달라도 직벽이 있었고, 조류의 세기와 직벽들 사이의 구조에 따라 생물상이나 주요 핵심 볼거리들이 달랐습니다. 직벽이 여러 개 늘어서 있고 그사이에는 골이 있는 곳들(누누칸 익스프레스 등)도 있고, 두 직벽 사이에 넓고 평탄한 평원에 몇 개의 언덕이 있는 곳(빅 피쉬 컨추리 Big Fish Country)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야코지마처럼 광활한 모랫바닥 위에 얹혀 있는 산호초는 없었습니다. 약간의 예외가 있다면 마지막 다이빙을 한 ‘만타 크린닝(Manta Cleaning)’인데 수심 15m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는 정도였습니다. 조초산호는 모든 사이트의 빛이 잘 드는 수심 얕은 곳에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수심 10m 정도부터 수표면으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지고 정상부 보통 4~5m에서 평탄해지는데 다양한 산호들이 모여 있고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아크로포라 속 산호들은 의외로 적었습니다. 골짜기에는 산호 사체들이 쌓여 있어서 시련을 겪은 것은 분명해 보이나 현재에는 잘 버티고 있거나 극복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직벽에는 연산호인 '자이언트 씨휀'이 이룬 숲


벽들은 보통 수심 10m 아래에 나타나는데 특히 ‘자이언트 씨휀(giant sea fan)’이라고 불리는 부채 모양의 큰 산호(학명, 아넬라 몰리스 Anella mollis)와 큰 해면동물들이 장식한다고 할 정도로 눈에 확 띄고 규모가 컸습니다. 이 산호는 보통 ‘고르곤 산호(gorgonian coral)’라고도 하는 연산호 무리에 속합니다. 수중사진작가들에겐 최고의 피사체이자 열대 수중 직벽 생태계의 깃대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이들이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고르곤 포레스트(gorgonian forest)’, 즉 씨휀 숲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열대에서는 조초산호의 산호초만 생각하는데 직벽을 지키는 이 자이언트 씨휀은 햇빛이 바로 들지 않는 수중생태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다나리류들이 그 산호들에게 꽃처럼 붙어 있었는데 그 색상이 아주 다양했습니다. 한 산호에는 진주조개까지 붙어살고 있었습니다.

큰 석회질 해면과 그 뒷쪽은 자이언트 씨휀이 보인다. 전형적인 씨휀의 사진은 마지막 연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_정희철
수심 약 15m의 모랫바닥에 놓인 바위 위에 형성되어 가는 산호초이다. 조초산호와 함께 연산호인 씨휀이 보인다. 이는 시야가 투명한 곳에서는 두 종류가 동시에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진_정희철
일명 ‘산호초갑오징어’로 불리는 종인데 피부의 색과 문양을 다양하게 바꾸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검은 회색 몸체로 수중에 멈춰 서서 사진작가를 응시하는 포즈는 무엇인가 대화를 원하는 듯하다. 아마도 말을 건네 왔다면, "이 산호초를 해치지 말아주세요."라고 했을 것 같다. 사진_김성훈


“월라시아는 지구 진화의 살아있는 실험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월리스 라인은 섬 보르네오와 술라웨시 사이로 지나는데 이 두 섬의 개발이 심상찮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8월에는 ‘월라시아 과학 심포지엄’이 ‘술라웨시 셀라탄(Sulawesi Selatan, 남술라웨시)’ 주 마카사르에 있는 하사누딘 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이곳에서 인도네시아 보전협회(The Conversation Indonesia)가 발표한 일련의 내용을 한 교수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정리했습니다. “월라시아는 지구 진화의 살아있는 실험실입니다. 우리가 모두 행동하지 않으면 이곳의 야생동물, 숲, 산호초는 황폐해질 것입니다.”

마지막 다이빙을 마치고 모선에 도착하기 직전의 장면이다. 사진_선박회사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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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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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Oct 31

매주 잘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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