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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자 박소연의 러브레터|녹색 계급되기: 거주 가능한 세계를 유지하는 법

 

박소연 2024-06-21

연세대 인류학과 졸업. 서울대 지리학과 석사과정에서 정치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정치활동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크다. 복잡한 논의를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스물여섯 살 '지구여자'다



 

생태정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생태정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전 지구적 기후 위기에 맞서며 다양한 생태주의적 주장과 실천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 모두들 한 번은 던져 보았을 법한 질문이다. 공통된 위기 속 각자의 경험들은 서로 다르고, 전환을 상상하는 과정 속에 내 삶의 어떤 것이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걱정들도 다양하다. 심화되는 위기의 징후들 속에서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하는 긴급성을 공유하지만, 당장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충분히 강력한가는 쉬이 긍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녹색 계급’, 단결하라!

     

생태정치가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며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와 니콜라이 슐츠(Nikolaj Schultz)는 ‘녹색 계급’을 제안한다. ‘계급’이라는 언어가 특정한 경제적 분류 체계에 입각하여 고정적으로 결정되는 집단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생태주의와의 연결성에 의문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저자들은 ‘계급’을 통해 대중을 동원하여 체제를 전복할 힘을 구성하는 전략적 효과와, 물질적 조건을 강조하는 접근의 이론적 연속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녹색 계급’은 기존과 다르게 완전히 새롭게 정의되는 계급인데, 생산에 초점을 맞추어 생산수단의 소유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거주’의 조건, 즉 자신의 존재를 세계 속에서 유지하게 해주는 조건들에 집중한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착취와 부의 분배만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가 가능한 조건들을 파괴해 온 ‘생산’이라는 기준 자체에서 벗어난다. 이를 통해 지구 환경을 인간이 소유한 ‘자원’이 아닌 우리가 거주하면서 자신을 생성하고, 또 동시에 의존하는 세계로서 다시 읽는다. 이때 거주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가 세계에 의존하는 방식을 기존과 다르게 바꾸어 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녹색 계급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변혁을 만들어내는 녹색 계급은 누구일 것인가? 사실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은 녹색 계급이 될 수 있으며, 지금은 이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여전히 녹색 계급이라는 개념은 생산과 생성 사이의 갈등 관계를 해결할 방법, 계급의 규정과 구체적으로 실천할 전략 등을 공백으로 남겨 둔 것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거주 가능성을 들여다보며 계급의식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객관적이고 확장적인 하나의 방향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중적이라는 점이다. 생산의 리듬에서 벗어나 내가 상호의존하고 있는 세계의 물질적 조건들을 살피고, 다른 집단들의 조건들과 어떻게 상이하며 또 유사한지, 물질적 조건들에의 접근을 제한하는 착취가 발생하는지 등을 탐지하는 자기 규정 과정은 녹색 계급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 둔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생산’의 바깥에서 어떤 것들이 나의 연결망 안에 들어오는지를 두껍게 묘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브뤼노 라투르, 니콜라스 슐츠, 2022, <녹색 계급의 출현>, 이규현 옮김,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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