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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자 박소연의 러브레터|동거합시다

최종 수정일: 4월 17일


 

박소연 2024-02-28


연세대 인류학과 졸업. 서울대 지리학과 석사과정에서 정치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정치활동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크다. 복잡한 논의를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스물여섯 살 '지구여자'다




한강에 수달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330호이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달이 어쩌다 도시에 나타났을까요? 도시로 온 수달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는 수달과 함께 살 준비가 되었을까요 ? 1973년 팔당댐 준공 이후 수달이 발견되었다는 공식 기록은 44년 동안 없었습니다. 2016년 3월 서울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류부에서 시민이 수달 흔적을 발견했다는 제보가 처음 나왔고, 꾸준히 추적한 끝에 2017년 1월 환경부에서 한강 수달 가족 4마리를 공식 확인했습니다. 이후 서울 하천 곳곳에서 수달 발견 제보가 이어졌지만 현재 몇 마리가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수달을 아시나요?

수달(水獺)은 물가에서 굴을 파서 살며 헤엄치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족제비과 포유류입니다. 앞발을 손처럼 물건을 집어 드는 데 사용하며, 이 때문에 똑바로 서기에 불리한 길쭉한 몸이지만, 꼬리와 뒷다리로 제한적인 직립 보행이 가능합니다. 자갈을 앞발로 번갈아 던지며 노는 습성이 있습니다. 물속 생활을 하는 수달의 모피는 방수, 보온 효과가 좋아 인간들에게 무수히 사냥을 당했습니다. 유럽에서는 1500년대 대량 사냥 이후로 수달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수달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세계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번에는 수달이 살던 강·하천에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댐이 세워지고, 구불구불한 자연 하천을 정비하고 콘크리트로 덮어 곧게 만들고, 도로를 건설하면서 수달이 살 곳이 없어집니다.

수질오염으로 먹이가 줄어든 것도 원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국내 서식종인 유라시아수달(Eurasian otter, Lutra lutra)이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0호으로 지정되었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입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집(IUCN Red List)의 '위기 근접종'으로 세계 각국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5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세계 수달의 날'로 지정해 보호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공간, 한강

지난 1월 27일, 서울환경연합의 프로그램을 통해 한강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야생포유류의 발자국과 똥을 찾아 보는 행사가 있어 하루동안 시민조사단이 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 조사는 인간인 우리가 동물들과 환경적 조건들에 응답하고, 인간의 공간을 공존의 공간으로 다시 읽어내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발자국과 똥을 찾기 위해 땅만 보고 걸었고, 똥을 발견하거나 발자국을 발견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살면서 똥이 그렇게 반가웠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수달의 흔적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고라니와 너구리와 족제비와 삵의 똥과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아스팔트 길과 빌딩으로 가득 찬 도시의 한 가운데에 야생동물이 머문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뒷 부분 삭제) 고라니의 똥은 작고 타원형인데, 끝이 누가 꼬집은 듯 뾰족합니다. 너구리와 족제비의 똥은 씨앗이 들어있는데, 둘 중에 더 동그란 것이 너구리입니다. 육식동물인 삵의 똥에서는 털이나 쥐 이빨 같은 것들이 나옵니다.


공존의 방식을 고민하기

두 갈래로 나누어진 고라니의 발자국입니다. 발자국은 신기할 정도로 사람의 길과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라니의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봅니다. 발이 빠져서 나오지 못할 돌망태가 깔려 있고, 사람을 위한 산책로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수달의 시선으로 한강을 봅니다. 빠져나오지 못할 어획용 통발들이 보이고, 이동할 길들은 댐이나 수중보로 단절되어 있고, 번식이나 은신을 할 곳들이 마땅치 않은 단조롭고 인위적인 콘크리트 제방이 대부분입니다.


답사를 함께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고라니 똥과 털, 비둘기 깃털 하나하나를 모아서 가져가겠다고 비닐에 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삵이 너구리의 똥 위에 똥을 싼 것은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듣자, 가만히 똥을 다시 내려놓습니다. 이것이 도시를 공존의 공간으로 읽어내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함께 사는 존재들의 생태적 삶에 응답하며, 우리의 공간은 통발 입구에 수달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십자 막대와, 뭍으로 올라오던 수달이 차와 기차에 치이지 않도록 하는 불빛반사판들이 있는 곳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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