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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자 박소연의 러브레터|비(非)인간 존재들과 살아가는 공간

최종 수정일: 4월 12일

 

박소연 2024-04-11


연세대 인류학과 졸업. 서울대 지리학과 석사과정에서 정치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정치활동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크다. 복잡한 논의를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스물여섯 살 '지구여자'다




 

순천만 습지, 겨울 철새 흑두루미 월동지


얼마 전 현장 연구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순천만 습지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방문한 올해 3월 10일, 순천만 습지에는 겨울 철새인 흑두루미 3546마리가 월동하고 있었습니다. 연초에는 7800마리까지도 늘어났었다고 하는데, 그 숫자에 완전히 압도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문득문득 인간의 공간을, 비(非)인간 존재들과 살아가는 공간으로 다시 읽는 경험들을 합니다. 전망대에 올라 흑두루미를 관찰했습니다. 논 습지의 일부분에서, 목이 하얗고 몸통은 흑회색인, 이마에는 커다란 까만색 점을 가진 새들이 모여 걷고, 날고, 땅을 쪼아댑니다.


순천만 겨울 철새 모니터링 게시판과 망원경 렌즈로 탐조한 흑두루미 떼. 사진 박소연 제공


새의 움직임과 새가 마주한 환경에 적응하는 복잡한 과정, 탐조


망원경 렌즈를 가득 채우며 움직이고 있는 흑두루미 떼를 보다 보니, 문득 이 새들을 어떻게 다 세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순천만 모니터링팀이 쌍안경과 망원경을 들고, 특정한 구간을 날아가는 개체의 수를 일일이 센다고 합니다. 모니터링팀은 흑두루미가 어느 지점에 머물러 밤잠을 자는지, 어느 지점으로 볍씨를 먹으러 가는지, 흑두루미의 일상을 세세히 알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의 움직임을 좇는다고 합니다. 전망대에서 함께 새를 보던 사람들 중에도 탐조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쌍안경을 눈에 댄 채로 새들을 따라가며, 새들의 미묘한 움직임과 생김새의 차이를 아주 진지하게 토론합니다. 저도 이리저리 망원경을 따라가며 논의에 참여해 보려 했지만, 탐조가 새의 움직임과 새 떼의 흐름, 새가 마주하는 환경을 읽어내고, 그것에 적응해 익숙해져야 하는 아주 복잡한 과정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우리는 어떤 몸과 리듬으로 비인간 존재와 접촉할까?


철새 탐조를 연구한 한 연구자는 ‘거리두기의 기술’이라는 말로 탐조를 설명합니다(성한아, 「인간과 철새의 관계를 지탱하는, 거리두기의 기술」, 과학잡지 에피(EPI) 18호, 2021). 새를 야생의 상태로 두고 그것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주변의 상태를 이해하고 날아갈 듯 말 듯한 새의 신호를 읽으며 온갖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떤 몸과 리듬을 가져야 할까요? 서로에게 어떻게 접촉하고 어떤 신호에 응답할 줄 알아야 할까요? 이것이 탐조가 남겨주는 아주 중요한 고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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