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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자 박소연의 러브레터|토종 씨앗 지키기

 

박소연 2024-05-23


연세대 인류학과 졸업. 서울대 지리학과 석사과정에서 정치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정치활동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크다. 복잡한 논의를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스물여섯 살 '지구여자'다




 

‘터미네이터 씨앗’이 토종 씨앗을 사라지게 한다


토종 씨앗은 위기를 맞고 있다. 생태계에서 그 영향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유전자변형생물(GMO)들이 개발되고,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획일적인 종자들이 만들어지면서 토종 씨앗이 설 곳을 잃고 있다. 이 흐름에 더해, 초국가 기업들은 이런 종자와 그 유전 정보를 사유화한다. 한 번 수확한 후 거두어들인 종자를 다시 이용하면 형질이 완전히 다른 작물이 재배되거나, 씨앗의 다음 세대에서는 발아가 아예 되지 않는 '터미네이터 씨앗'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흐름 속에서 토종 씨앗은 경쟁력을 잃거나 조작되어 사라지고 있다. 농민들은 재배를 위해 매년 해외 기업에 로열티를 내고 역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2008년, ‘토종씨드림’ 결성되다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 대응, 유전 자원의 보존, 종자 주권 확립 등이 절실해지면서, 토종 씨앗을 지키는 데 국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토종 씨앗 관련 활동은 개인과 단체들이 주로 앞장서 왔다. 한 예로 2008년 비영리민간단체 ‘토종씨드림’이 ‘소멸되는 토종 씨앗의 보전’ 과제 해결을 목표로 두고 결성되었고, 여기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귀농운동본부, 환경농업연구회,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농어촌사회연구소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우리 토종 씨앗의 지도를 그리고, 씨앗을 수집하여 나누고 증식하며, 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종자 지키기’는 농부들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종자 지키기’를 그 실천으로 살펴보면, 토종 씨앗은 우리에게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정의만 들여다보더라도 토종 씨앗은 그것을 지켜내는, 농사짓는 사람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현장인 농가에서 농민의 손을 통해 대대로 보존되고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여 안정적으로 자라고 수확하여 채종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신지연, 2016).

이것은 ‘식량 위기와 종자 자본주의의 피해자로서의 농민, 그에 대한 저항’, 혹은 ‘토종 씨앗의 경쟁력 확보를 통한 경제적 자립 추구와 유전 자원의 보호’ 등의 정치적 구호만으로는 간단히 담아낼 수 없는, 토종 씨앗과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실천의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에서 모아 둔 토종 종자. 당시 증식을 앞둔 상황이었다. 사진_박소연



몇 해 전 ‘대안공간 루프’에서 진행한 ‘토종 씨앗의 의미와 활용’ 워크숍에서 이러한 종지 지키기 실천들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었다.

토종 씨앗을 구분하는 것은 외형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 활동가는 종자를 보유하고 전달해 준 농민이 종자를 얻게 된 과정, 씨앗의 정보나 특징, 가지고 있었던 기간 등을 말해 주면 그것을 통해 추적하며 토종 종자임을 확인한다. 실제로 사진 속 종자 중 하나의 경우에는, 마을 농가의 한 할머니께서 그의 어머니에게서 받아 농사를 지으며 매년 한 줌씩 남겨두던 씨앗을 나누어 준 것이라고 했다. 또, 씨앗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산력이 떨어지기에 종자 은행에 영원히 보관해 둘 수 없다. 이러한 씨앗의 물질성은 그것을 심고, 번식시키고, 매개하는 농민의 존재가 불가피함을 보여준다.

     

우리가 씨앗의 순환을 지키는 주체여야 한다


즉, ‘토종 씨앗 지키기’는 씨앗을 만지고, 씨앗에 알맞은 농사법을 활용하며 그것을 지켜온 농민들의 삶과 행위, 그들이 생산해 내는 토종 종자의 의미 등과 떨어질 수 없다. 토종 씨앗을 지키는 것은 농민들이 체득해 온 생태, 농업의 가치, 나아가 ‘땅에서 난 것을 먹는다.’는 우리의 삶까지 지켜내는 일인 것이다. 우리가 씨앗과 함께 순환구조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지연, 「한국의 토종종자 지키기 활동」, 토종종자 보전을 위한 한일 워크숍, 2016, 33~46쪽.

*토종종자 보전을 위한 한일 워크숍, 충남연구원, 2016.02.18. 연구보고서>통합검색 (cn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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