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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정치ㅣ윤효원ㅣ“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이란 없다

 

윤효원 2024-10-18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물질이 먼저냐, 영혼이 먼저냐


엥겔스가 자신의 명저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에서 제기한 철학의 근본 문제가 있다. 물질(material)이 먼저냐 영혼(spirit)이 먼저냐. 유물론이라 불리는 물질론은 물질이 먼저이며 영혼을 물질 운동의 과정이자 결과로 본다. 물질이 사라지면 영혼도 사라진다. 몸과 그를 둘러싼 환경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며 마음의 작동 방식을 결정한다. 물질인 몸이 존재해야 마음도 존재한다. 그 역은 성립될 수 없다.

관념론으로 불리는 영혼론은 영혼이 먼저이며 물질을 영혼 운동의 과정과 결과로 본다. 마음이 사라지면 몸도 사라진다. 영혼이나 그를 지배하는 절대 영혼, 즉 신이 몸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미치며 물질의 운동 방식을 결정한다. 몸과 물질세계는 영혼에 종속된 존재이며, 영혼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영혼과 신은 무한하지만, 몸과 물질은 유한하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남아 신과 함께 영생하거나 지옥 불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관념, 즉 종교의 출현은 영혼론의 최고 단계다.


현대 과학은 물질론의 승리를 보여 준다


인간 문명이 탄생하면서 세계 철학사도 시작됐다. 이후 물질론과 영혼론의 대결이 이어져 왔다. 현대 과학의 결론(뇌 과학)은 물질론의 승리를 보여 준다. 마음은 물질인 뇌 작용에 다름 아니다. 뇌가 멈추면 마음도 사라진다. 당연히 개별적 영혼의 집합체로 존재해 온 절대 영혼, 즉 신도 개별적 영혼들이 작동을 멈출 때 그 기능을 상실한다. 신이 있다면, 그것은 물질이 운동하는 법칙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듯.


"변화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는 변화"라고 말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초상. 그림은 에이브러햄 얀센스 1세의 1601년 또는 1602년 작품. (위키커먼즈)

만물은 변하는가, 정체되어 있는가


물질론과 영혼론의 대결과 더불어 철학의 근본문제를 차지하는 또 다른 쟁점이 있다. 만물은 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체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다. 기원전 5세기~6세기를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는 변화”(The only thing that is constant is change)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회경제체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영원할까? 소련 사회주의가 망했듯이, 미국 자본주의도 망하지 않을까. 한국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결과물인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는 유한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망했듯 대한민국도 망한다. 나는 미합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보다 먼저 망할 것이라 본다. 문명사를 돌아볼 때 하나의 제국이 그 탄생으로부터 250년을 버텼으면 오래 버틴 것이다.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도 영원불멸하지 않다


그리고, 영원불멸하지 못하고 늘 변하면서 결국 사라질 것에는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 같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인권”도 포함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는 부자의 자유, 자본가의 자유, 강자의 자유, 고학력자의 자유다. 이러한 윤석열의 자유는 이미 그 경쟁력을 다해 역사적 유용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낡은 가치인 부자와 강자의 자유를 “보편적 인권”으로 포장했으나,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이미 낡은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빈자의 자유, 노동자의 자유, 약자의 자유, 저학력자의 자유가 영원불멸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자유는 아직 쟁취된 적이 없으므로 새로운 사상이며, 또 이러한 자유가 구현되는 평등세상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와 세상도 영원불멸할 수는 없다.


진화는 늘 실현된 적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부자의 자유와 빈자의 자유, 자본가의 자유와 노동자의 자유, 유식자의 자유와 무식자의 자유를 비교할 때 전자의 자유는 낡았고 후자의 자유는 새롭다. 전자의 자유는 이미 실현된 지 오래고 후자의 자유는 아직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다가올 미래는 결과적으로 빈자의 자유와 노동자의 자유와 무식자의 자유가 승리하는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로 퇴행하는 진화는 없기 때문이다. 진화는 늘 지금껏 실현된 적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진화의 세계가 평화적일지 폭력적일지는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부자와 자본가와 유식자의 저항 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뉴 노멀(New Normal)이 노멀이 되는 시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는 영원불멸한 가치가 아니다. 문명이 더 진화한 어느 시점에 가면 이러한 가치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가치가 등장할 것이다. 물론 진화나 진보가 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서구에서 붕괴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보면서 “절대적이고 보편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뉴 노멀(New Normal)’이 노멀이 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 중이다. 다시 말하지만, 새로운 게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엥겔스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마지막 장에서 독일 노동계급이야말로 독일 고전 철학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치켜세웠다. 독일 노동운동이 세계 철학사의 근본 문제인 물질론과 변화론의 계승자라는 것이다.


저 구름 너머로 사라질 유한한 것


한국 노동계급은 한국 고전 철학, 즉 고조선 때부터 이어져 오는 조선 철학사의 진정한 계승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러할 때 한국 노동운동이 다가오는 역사의 승리를 전취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질은 관념을 결정짓지만, 관념은 물질 운동을 추동한다. 이것이 사상과 이념의 힘이다. 물론 그러한 이념과 사상, 그리고 그러한 승리 역시 영원불멸할 수 없으며 변화하는 역사와 더불어 저 구름 너머로 사라질 유한한 것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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