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투표, 그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을 미국무부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살펴보고, 이후라도 계엄 선포 전후 내란 모의 세력과 미국 간의 연계가 있는지도 살펴야 함을 말한다.
윤효원 2024-12-26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윤석열, 친위쿠데타을 일으키고 내란을 시도하다
12월 3일 밤 국민주권과 평화통일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정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자신과 부인의 감옥행을 막고자 반란군을 동원해 국회를 마비시키고 선관위와 같은 국가기관을 침탈하는 내란을 시도한 것이다.
12월 4일 새벽 여의도 국회 안팎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국회 직원과 시민이 용감하게 반란군과 대치하면서 친위쿠데타를 위한 계엄을 저지시켰다. 12월 14일 대한민국 국회는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탄핵을 가결하고, 그 마지막 처리를 헌법재판소에 넘겼다. 동시에 검찰과 경찰과 공수처는 윤석열과 그 일당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국회 안에도, 사법부 안에도, 수사기관 안에도, 국방부와 군대 안에도, 무엇보다도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 안에도 내란에 가담하거나 동조한 세력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내란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직 체포되지 않은 내란 가담자와 동조자는 윤석열의 복권을 꿈꾸며 음모를 꾸미면서 내란 세력을 집결시켜 내란을 성공시키려 하고 있다. 내란이 성공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나락에 떨어질지, 민주주의가 성공하여 내란 세력이 감옥에 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엄중하고도 위험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계엄 선포 직후, 미국대사관 사무실들은 불을 밝히고 있었다
12월 3일 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할 때, 나는 서울 모처에서 친지들과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던 분이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나라의 안위와 각자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헤어졌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어 나는 시청역에서 내렸다. 계엄이 선포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서울시청 앞에 군인과 장갑차가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되었다. 다행히도 그날 밤 서울시청 앞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광화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신문사,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 외교부, 정부종합청사, 미국대사관이 줄줄이 보였다. 언론사 건물에서는 이상 징후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외교부와 정부종합청사는 평소보다 불을 켠 사무실이 많았다. 평상시에는 밤 11시를 넘어 자정으로 넘어가는 시각에 외교부와 정부종합청사에 불을 밝힌 사무실이 거의 없었다.
고개를 돌려 광화문광장 건너편 미국대사관을 보니, 그쪽도 평상시 보다 많은 사무실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보통은 대사관 꼭대기 층 근처의 방 하나 정도가 야밤에 불을 밝히고 있는데, 그날따라 층마다 한두 개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미국 워싱턴과 한국의 시차는 14시간이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를 위한 계엄을 선포한 시각이 12월 3일 밤 10시 반 즈음이었다. 이때 워싱턴은 12월 3일 아침 8시 반 즈음이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계엄해제 투표를 마친 게 12월 4일 새벽 1시 즈음이었다. 이때 워싱턴은 12월 3일 오전 11시 즈음이었다. 서울의 야밤은 워싱턴의 한낮이고, 당연히 서울에서 내란을 목적으로 하는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진행되고 있을 때, 워싱턴 정가는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계엄 해제 투표 한 시간 전, 미국무부 브리핑 "관심을 갖고 지켜 보고 있다"
광화문 상태를 확인한 나는 유튜브를 켜서 미국무부 채널을 보았다. 아직 국회에서 계엄 해제 투표를 하기 한 시간 전이었다. 미국 국무부 유튜브 채널은 언론브리핑을 진행 중이었다. 물론 한국 사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언론브리핑이었고, 그 와중에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가 알려진 모양이었다.
세계일보 여자 특파원을 비롯한 몇몇 기자가 한국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뿔테 안경을 낀 젊은 남자 대변인이 답했다. 그의 답은 “관심을 갖고 한국 상황을 지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몇 십 분 후에도 똑같은 답변을 했다. 그때까지 그의 입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거나, 대한한국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등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게엄해제안 국회 통과 후, 미국무부 "민주주의 지지"와 "대한민국 헌법 절차 존중"
그러다가 12월 4일 새벽 1시를 지나 대한민국 국회에서 계엄해제안을 통과시키고 나서야 미국무부 대변인의 입에서 “민주주의 지지”와 “대한민국 헌법 절차 존중”같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국내는…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12월 4일 새벽 1시 30분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만약 우 의장이 이를 받아들여 30분을 지체했다면, 국회 본청을 침탈한 특수부대들에 의해 계엄해제 투표는 저지되었을지도 모른다. 국회에 투입된 군인들이 주저했다지만, 그중 누군가 공포탄이라도 쏘았다면, 계엄 해제 노력은 좌절되었을 것이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계획대로 완료되면서 내란이 성공했다면, 12월 4일의 해가 뜨기도 전에 차가운 어둠 속에서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 등 국회와 정당의 지도자들은 내란음모자들이 지정한 모처로 끌려갔을 것이고, 국회 안팎에서 반란군에 맞섰던 국회 직원들과 보좌관 그리고 시민들은 잔인하게 진압당했을 것이다.
만약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12월 4일 해가 뜰 무렵에는 광화문 일대에 기갑부대가 들이닥치면서 서울 시내 곳곳에 장갑차와 탱크가 깔렸을 것이고, 서울시청 앞에는 군인들이 경비를 섰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 9시에는 선거관리위원회 서버가 뜯겨 나갔을 것이고, 선관위 직원 30명이 머리에 두건이 덮이고 두 손과 두 발이 플라스틱 타이로 묶인 상태로 방첩사 요원들에 의해 체포되었을 것이다.
12월 4일 9시 일과가 시작될 무렵 전국의 관공서에 지역부대장들이 무장병력을 끌고 나타나 자신들이 해당 지역의 시장과 군수 그리고 경찰서장을 지휘한다고 포고했을 것이다. 12월 4일 하루 동안 전국 곳곳의 정부기관과 언론사에는 군대가 진주했을 것이고, 동시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 사무실에도 반란군이 들이닥쳐서 지도부를 체포하고 사무실을 폐쇄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 앞을 탱크와 장갑차가 막아 서면서 무자비한 폭력이 행사되었을 것이다.
만일 윤석열의 내란을 목적으로 한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수만 명이 체포되는 아수라장이 벌어졌을 것이고, 그 와중에 특수부대에 의한 테러로 인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시민저항에 대한 군대의 무력 진압으로 광주학살 이상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12월 4일 새벽 국회가 추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요구한 1시 30분이 아닌 1시에 계엄 해제 투표에 돌입함으로써 최악의 시나리오는 좌절되었다. 물론 내란세력은 그 주력이 꺾였을 뿐이며, 지금도 내란수괴 윤석열은 잔당세력을 결집해 제2의 계엄을 꿈꾸면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동아시아는…
윤석열 정권 등장 이후 글로벌 정세를 분석해오면서 3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드리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바이든 정권은 유럽 전선에서 우크라이나와 나토, 중동 전선에서 이스라엘, 아시아 전선에서 한국을 동맹군으로 확보하여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군사적 봉쇄를 시도했다.
윤석열 정권은 한미일 군사동맹과 아시아판 나토(NATO)라는 미국의 3차 대전 구상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으며, 한술 더 떠 북한을 군사적으로 자극하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시키려 했다.
미국의 전쟁광들인 네오콘(Neocon)에 동조하여 유엔 중심의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내세우며 중국과의 우호선린관계를 훼손하고 러시아를 자극하고 북한을 도발하는 경거망동을 일삼았다.
만약 30분이 지연되어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가 무위로 돌아갔다면, 2025년 새해의 대한민국은 북한-중국-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미일한 군사동맹의 ‘따까리’로 전락해 제2의 청일전쟁, 제2의 러일전쟁, 제2의 태평양전쟁, 제2의 한국전쟁이라는 3차 세계대전의 지옥도로 끌려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여전히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고 했을지도
12월 3일 자정을 전후로 한 윤석열의 내란 시도가 국회와 시민의 저항 덕분에 일차적으로 좌절된 후 미국은 대한민국 정부와 여러 채널로 소통하면서 사태를 안정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월 4일부터 작동한다는 미국-대한민국의 여러 채널들이 내란이 모의되고 시행된 12월 3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미국대사관, 중앙정보부(CIA), 미군정보대, 주한미군의 그 누구도 12월 3일 야밤에 시도된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음모를 몰랐을까. 만약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풀테 안경을 낀 미국무부의 젊은 대변인은 “관심을 갖고 한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발언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진행중인 윤석열의 내란은 국내의 동조세력만으로 시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골수까지 친미파인 윤석열이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연계고리 없이 친위쿠데타를 시도했을까. 헌법재판소 판결과 내란수괴의 구속으로 내란을 종식시킨 이후 우리가 찾아야 할 단서와 증거가 한둘이 아니며, 그 핵심에는 윤석열 일당과 미국의 커넥션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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