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 2024-11-14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임금과 근로시간의 양극화
최근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불안정 근로’(precarious work)의 피해는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게 집중돼 왔다. 하층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에, 기업과 사용자에 대한 이들의 교섭력은 사실상 무력화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불안정 근로에서 임금 불안정성만이 아니라 근로시간 불안정성(work hour volatility)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노동계급 안에서 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소득의 양극화만이 아니라 근로시간의 양극화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층노동자는 부족한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장시간 근로, 여러 가지 고용관계를 찾는다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안정된 임금과 소득을 보장할 가능성이 높은 데 반해, 하층 노동자들의 근로일과 근로시간은 그렇지 못하다. 부족한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하층 노동자들은 장시간 근로를 하거나, 하나의 고용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고용관계를 찾아 나서야 한다. 문제는 하층 노동자가 다양한 고용관계를 맺을수록 이들의 고용은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면서 임금과 소득까지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안정된 소득과 근로시간 덕분에 상층 노동자들은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할 자원과 시간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하층 노동자들은 자산소득은 언감생심이고 ‘괜찮은 삶’(decent life)을 위한 근로소득 확보도 힘겹다.
계급 내부의 양극화는 노동시장 전반을 규율하는 노동자 권력(powers)의 양과 질을 악화시키면서 이제 상층 노동자들의 기득권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날로 거세지는 ‘귀족노조’ 프레임은 노동계급 내부에서 점점 악화하고 있는 양극화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다.
근로시간이 여러 형태로 쪼개지고 얽혀서, 측정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노동학자인 조 라브리올라(Joe LaBriola)와 대니얼 슈나이더(Daniel Schneider)가 쓴, 근로시간 불안정성의 측면에서 계급 양극화 문제를 다룬 논문이 눈길을 끈다. 2020년 3월 발표된 ‘연중 근로시간의 불안정성에서 나타나는 노동자 권력과 계급 양극화’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저자들은 불안정 고용이 근로시간의 불안정성을 높이면서 노동시장 전반에서 노동자의 근무일정 통제력을 약화시켜 왔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근로시간 기준이 전체 노동자에게 일관되게 적용되지 못하고, 노동시장 층위에 따라 다양하게 파편화된 상태로 적용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저자들은 근로시간 통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근로시간이 다양한 형태로 쪼개지고, 고용관계가 단일하지 않고 여러 형태로 얽힌 상태에서 근로시간의 질을 정확하게 반영한 통계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며, 근로시간의 양조차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더 이상 양적 시간 통계에 근거한 근로시간 이해는 유효하지 않다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들은 학력·자격증·숙련·기술·생산성·교섭력 등이 반영된 임금을 결정하거나 교섭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하층 노동자들의 임금은 대개 근로시간이라는 단일 요인으로 결정된다. 상층 노동자들은 근무일정을 짜는 데 자기 의견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지만, 하층 노동자들의 근무일정은 일방적으로 강제된다. 이렇듯 근로시간 불안정성의 수준과 층위가 다른 상황에서 양적인 시간 통계가 인간 삶의 일부로서 근로시간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라브리올라와 슈나이더는 던지고 있다.
'주 4일 근무제' 법제화가 노동자들 간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노동계 일각은 주 4일 근무제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취지의 정당성을 인정하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임금인상 투쟁이 노동계급 내부의 소득 양극화로 이어지는 사회경제 구조의 개혁 없이 주 4일제를 추진한다면, 결과적으로 근로시간 불안정성에 노출된 하층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키우면서 노동시장 양극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을 적용 못 받는 사각지대 노동자가 없어야
임금인상 투쟁이 노동계급 내부의 소득 양극화로 이어지는 구조의 문제는 여러가지 측면을 가진다. 첫째 법률 측면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근로기준법이 전체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근로관계, 즉 고용관계가 명확한 종업원(employees)에게만 적용된다. 따라서 노동시장 중상층의 고용관계가 분명하고 안정적인 대기업, 정규직,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만, 고용관계가 불분명하고 불안정한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체 노동자 중에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수는 500만에서 1000만으로 추정된다. 근로기준법은 고용조건상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기 어렵거나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수는 노동조합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수보다 적다. 근로기준법 적용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조세 개혁으로 '사회 임금'을 확대해야
둘째 조세 측면이다. 상대적으로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의 임금과 소득 수준은 열악하다. 고용주에게 직접 받는 임금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사회복지 강화를 통해 ‘사회 임금’(social wage)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서민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공립병원을 늘리며, 공공 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소득에서 고용주가 지급하는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를 위한 국가재정이 튼튼해져야 하는데, 결국 세금의 문제로 귀결된다. 금융소득과 부동산소득 같은 자산 수입에 물리는 세율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소득 상위 10%에 대해서도 세금을 올려야 한다. 이러한 조세 개혁은 노동시장 상층에 속한 노동자들의 고임금에 대한 세율 확대로 이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확보된 국가재정을 바탕으로 노동시장 중하층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 임금’을 늘릴 수 있다.
단체교섭의 결과를 동종 업종이나 산업별로 확장해야
셋째 단체교섭 측면이다.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한 결과물인 단체협약의 적용 범위를 해당 기업의 조합원만이 아니라 동종 업종이나 산업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별 단체교섭을 뛰어넘는 산업별 단체교섭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사용자와 정부는 기업 수준을 뛰어넘는 단체교섭 제도를 발전시키는 데 소극적이다. 산업별 노동조합이 여러 기업들을 한데 모아 교섭을 하려 해도, 기업주의 반대와 정부의 무관심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체교섭의 형식과 내용을 기업 수준에서 업종과 산업, 그리고 지역 수준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실태 제대로 조사해야
구조와 제도의 개선과 더불어 근로시간 실태를 제대로 조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근로시간 조사는 평균 근로시간을 파악하는 수박 겉핥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연장근로 실태, 임금과 소득 수준에 따른 근로시간의 격차,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근로시간의 차이에 대한 분석이 더욱 정밀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정부 발표에 빠져 있는 문제들인 야근근로를 하는 노동자는 얼마나 되는지, 작업 현장에서 교대제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주말근로 실태는 어떤지, 노동시장 하층의 근로실태는 어떤지 등에 대한 조사가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
'일하는 시민의 권리 기본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안타깝게도 노동계 일각에서는 법정근로시간을 명시한 근로기준법을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게 전면 적용하는 전술을 포기한 채, ‘일하는 시민의 권리 기본법’을 요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의 포기와 ‘일하는 시민의 권리 기본법’이라는 우경화된 요구가 1970년 11월 청년 전태일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품었던 바람일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염원과는 달리 2024년 11월의 현실은 ‘근로기준법은 간 데 없고 전태일만 나부끼는’ 꼴이다.
주 40시간을 뜻하는 주 5일제가 노동시장 전체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 4일제 요구는 노동시장 상하층을 아우르는 전체 노동운동의 목표가 될 수 없다. 20년 전 노무현 정권 당시 주 40시간제를 무력화시킨 주 5일제처럼 주 4일제도 빛 좋은 개살구나 그림의 떡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상층만이 아닌 하층을 포함한 노동자 전체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은 ‘일하는 시민의 권리 기본법’이라는 편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보편적 적용이라는 노동운동의 원칙을 실천함으로써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청년 전태일의 길이 아니겠는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