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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스펙터클 스포츠의 종말과 신유목민의 사회

 

2014-11-14 김현우 |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김현우 소장은 '탈성장과 대안연구소 '소장으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연구와 실천에 매진해 왔다. 지금은 탈핵신문 운영위원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위기를 알리는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통치 전략으로 등장한 ‘3S’: Screen,Sports,Sex


전두환은 정권 말기에 좀 피곤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임기 7년 동안을 큰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출범부터 절차적 정당성이 극도로 취약했을 뿐더러 광주학살로 윤리적 정당성마저 완전히 부재했던 이 정권이 비교적 순탄하게 지탱되었던 이유는 여럿이지만, 국민에게 먹고 살만한 조건을 제공했던 탓도 컸을 것이다.


요컨대 시운을 타고난 정권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기의 경제 개발 계획이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다음 수출 몇억 달러를 계속 경신하는 경제 상황을 물려받은 전두환 정권은 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까지 유례 없는 호조건을 누렸다.


반발이 없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저항은 치열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부에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어느 정도의 보상이나 타협의 여지가 제공된다면 사회의 다수가 계속 저항에 몰두하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그리고 뻗어가는 고속도로와 올라가는 고층 건물을 배경으로 전두환 정부는 관제 축제를 벌였고 올림픽을 유치했다.


그런 와중에 치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체계적인 통치 전략 중 하나가 ‘3S’ 정책이었을 것이다. 전국의 개봉관들에 화려하고 야한 영화가 넘쳐 났고(screen),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대통령이 시구를 던졌으며(sports), 야간 통근이 해제된 밤거리는 흥청거렸다(sex).


'3S'의 정점, 88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당근과 사탕 정책이 일방적으로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인들은 은근히 진지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품을 내놓았고, 해태 타이거즈의 가을 야구는 반정부의 기운이 충만했으며, 젊은이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정부 전복 방법을 토론했으니까. 그러나 어쨌든 88올림픽은 3S의 정점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지켜본 가장 스펙터클한 세리머니! 2002년 한일 올림픽이라는 속편도 있었다.


정부들도 바뀌었고, 경제 조건도 그때와 같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제 기후가 너무도 빨리 그리고 돌이킬 수 없도록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가 너무도 규정적이다. 미국의 환경 전문기자 마크 샤피로는 기후위기의 특징을 “정상성(定常性)의 종말”로 포착한다. 역시 미국의 환경 기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2050년이라는 가까운 미래를 “거주불능 지구”라고 표현한다. 사계절의 순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예측 불가능한 변덕스러운 날씨가 일상화되는 상황을 말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초라해진 프로야구 경기장에 불어 닥친 모래 폭풍 같은 이벤트가 도처에 수시로 발생하는 모습이다. 좀 더 심각한 학자들은 지구 온난화 티핑 포인트를 넘어선 국면은 총체적인 ‘정치사회적 붕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우리의 인식과 느낌은 그것보다는 느리다. 그러나 지금도 국제 엑스포를 위해 신공항을 계획하고 동하계 올림픽 유치를 공언하는 자치단체장들의 모습은 안일하기 그지없다.


기후위기로 거처를 잃은 신유목민에게 거대한 돔과 스포츠 이벤트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해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는 여성가족부와 전라북도의 오류가 컸지만 다가온 기후 재난의 맛보기였던 것은 아닌가? 올해 경기 일정 진행마저 차질을 빚었던 프로야구와 축구의 상황은 과연 내년에는 나아질 것인가?


범상한 시민들보다 십수년씩 앞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화두를 던져 왔던, 그래서 예측이 어지간히 들어맞았거나 조금 틀렸다 하더라도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의식을 제공했던 세계적 석학 제러미 리프킨은 기후위기를 “플래닛 아쿠아” 즉 지구가 물의 행성이라는 시각에서 인식할 것을 요청한다. 지구를 구성하는 수권, 암석권, 대기권, 생물권 중에서 인류가 지배했다고 생각했던 수권이 기후위기와 함께 야생의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오늘날 화석연료 기반의 물-에너지-식량 넥서스가 불러온 이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탓에 인류세 시대가 가져 온 수권의 복수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라는 경고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물의 작용이고 물의 문제다. 가뭄, 홍수, 태풍, 모래바람, 그리고 기온과 습도 모두 물이 좌우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1만2천년 전부터 인류가 제방을 쌓고 운하를 파고 댐을 만들어 물을 순치한 다음 그 위에 건설한 도시와 농경 문명이 위기를 맞은 것이다. 시내 곳곳의 목욕탕과 콜로세움에서 오락을 즐겼던 로마인들이 원형일 그런 거대 이벤트 역시 물-에너지-식량 넥서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리프킨의 주문은 무엇인가? 물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흐르고 증발하고 얼고 해류를 만드는지, 그 수권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고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돌이키기에 늦어버린 상황을 인정하고, 우리는 ‘임시사회’를 새로운 거쳐로 삼는 ‘신유목민’의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목민에게는 거대하고 안정적인 스포츠 이벤트 역시 걸맞지 않은 것이다. 돔구장과 메타버스를 통해 우리의 안전을 도모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아쿠아버스’에서 서로의 뗏목을 살피고 도우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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