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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ㅣ박진희ㅣ'음식시민'의 탄생

최종 수정일: 5월 17일

 

박진희 2024-05-16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무엇을 먹을까'와 '어떻게 먹을까'는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한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무척 생소하겠지만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밥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나누는 가족들의 대화 속에서 인간의 도리와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일.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가정교육이 일어나는 장이었기에 밥상머리 교육이라 불렸다. 나는 밥상에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중 하나가 먹을 것과 관련된다. 형제자매가 다섯이나 되기에 함께 나누어 먹는 법과 먹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웠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음식을 맛보았다. 제철에 나는 음식 중 반드시 아이들에게 먹여야 할 목록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것도 어릴 적 밥상머리 교육 덕분이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먹을 것을 귀히 여기는 시대도 아니고, 제철 음식에 기대어 사는 시대도 아니다. 그러나 먹는 것은 인간의 삶과 건강에 매우 중요한 척도이기에 무엇을 먹을까와 어떻게 먹을까는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한다. 먹거리 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법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제정되어 있다.

     

'식생활교육지원법'으로 먹거리 교육을 시작하자     

     

‘식생활교육지원법’은 ‘식생활’을 식품의 생산, 조리, 가공, 식사 용구, 상차림, 식습관, 식사 예절, 식품의 선택과 소비 등 음식물의 섭취와 관련된 유・무형의 활동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식생활 교육’을 개인 또는 집단이 올바른 식생활을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법은 먹거리 사슬의 모든 과정과 이 과정에서 형성된 식문화를 교육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은 개인과 집단공동체에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교육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학교 현장에서는 먹거리 교육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진행되는 먹거리 교육은 영양학적 접근, 식품첨가물, 요리해보기 등을 주제로 한 일회적 체험이 주를 이룬다. 생활협동조합이나 먹거리 교육 단체가 개설하는 강좌가 아닌 이상 학교 밖의 공동체에서 먹거리와 관련된 교육 기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협의 교육도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간헐적 먹거리 교육이 주를 이루거나 먹거리 강사를 양성하는 교육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강사는 양성되지만 이 강사가 활동할 먹거리 교육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한 일도 함께 생긴다. 최근에는 학교 안팎 거의 모든 공동체의 먹거리 교육이 약속이나 한 듯 탄소중립을 위한 채식 교육이나 음식물 쓰레기 저감 교육으로 진행되고 있다. 먹거리 체계와 먹거리 체계에서 왜 탄소중립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생략된 채 말이다. 식생활교육지원법이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근거법이 있다는 건 먹거리 교육을 진행하기에 매우 좋은 배경이다.

     

'음식 시민'은 진정한 먹거리 행동 교육으로 탄생한다

     

먹거리는 인간 생존에 있어 매우 필수적이며, 그러하기에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인간의 권리이다. 또한 음식과 식생활은 인류가 이룩해 온 거룩한 문화이다. 식량 보장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권리라는 사실, 농업농촌을 이해하고, 공정한 먹거리 체계와 바른 식생활은 무엇인지, 식문화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고유의 식문화를 이해하면서도 다른 식문화를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음식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농업의 생물다양성을 이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교육을 받고, 성장하고, 이에 맞는 행동으로 지속가능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우리는 ‘음식 시민’이라고 한다. ‘음식 시민’이 탄생하는 먹거리 교육이 필요하다. ‘음식 시민’에게 먹거리는 생명의 근원이며, 관계이고, 사회이고, 즐거움이다.

교육자 존 듀이는 교육은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은 행함으로 배우는 것이다. 먹거리 교육은 사람들이 먹거리 문제를 인식하고, 개인과 공동체를 위한 더 나은 먹거리 체계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어야 한다. 음식 시민이 탄생하는 교육이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일상으로 번져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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