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기자 2024-05-30
2030 여성들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실천에 많이 참여한단 말을 자주 듣는다. 채식하는 35살 김가빈(이하 빈), 제로웨이스트를 위해 노력하는 30살 이혜린(이하 린), 새 옷을 사지 않는 빈티지 러버 29살 김서원(이하 원)은 2030여성이며 MZ세대다. 소소하면서도 소소하지 않은 지구이야기를 들어본다.
Q: 어쩌다 채식하고, 쓰레기 안 만들고, 새 옷을 안 사게 되었어요?
채식주의자 빈: 시작은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선천적으로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고, 약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성 위염을 앓았다. 위염의 끝은 식도염이라고 하였나, 위액이 식도를 타고 올라 오는 고통을 겪다 2019년 봄에 건강식을 결심했다. 너무 세속적이고 뻔한가? 원래 사람은 자기 안위부터 시작하는 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채식을 건강과 연관 짓는 경향이 있어 나도 자연스럽게 채식을 접했다.
쓰레기 배출량 0에 도전하는 린: 다르지 않다. 나 또한 뻔한 사연의 소유자다. 결벽증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내게 청결은 제1의 문제이다. 당연히 쓰레기가 싫었다. 옛날에는 짜장면 먹고 그릇을 밖에 내두면 수거해갔지만 이젠 배달 음식 한 번 먹으려 하면 쓰레기가 끝이 없다. 마라탕이 유행이지 않나? 마라탕 배달받아 봐라. 흰 일회용 용기에 빨간 마라 기름이 닦일 때까지 닦고 햇볕에 말려야 한다. 뚜껑도, 국물 흘리지 말라고 덮은 랩도, 그거 시켰다고 주는 짜사이와 설탕 뿌린 땅콩 용기들도 다 정리 대상이다. 그럴 바에는 집에 있는 야채와 곡물로 한 끼 뚝딱 해 먹고 설거지하는 게 편하다. 집안일 해보면 알겠지만, 일회용기에 묻은 양념 닦는 것과 그냥 접시 닦는 것 사이의 난도는 천지 차이다. 분리수거 감이 늘어나는 건 보너스다. 그래서 배달 음식 안 먹는 것부터 시작했다.
빈티지 러버 원: 민망하지만 난 원래 빈티지를 사랑했다. 뭐 거창하게 환경을 생각해서 빈티지 옷을 사 입기 시작한 건 아니다. 무채색 옷을 입으면 영혼이 죽는다. 물론 오늘은 나름 인터뷰라고 칼라가 달린 단정한 회색 옷을 입긴 했다. 보통은 초록, 보라, 분홍 옷을 즐겨 입는다. 그리고 그런 디자인이 빈티지 의류에 많았을 뿐이다. 아, 내가 해외 유학을 했단 사실도 한몫한다. 새 옷을 사는 것보다 헌 옷을 사는 게 더 쌌고, 질도 좋았다. 프로필 사진에서 입은 초록 상의도 외국에서 대충 싸게 건진 허름한 구제이다.
Q: 처음과 비교하면 지금의 생활은 좀 어떻게 달라졌어요?
빈: 채식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육식 산업이 동물을 착취하는 모습과 직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동물을 위해 채식하고 있다. 채식에도 층위가 나뉘는데, 그런 이유로 나는 육류, 유제품, 달걀, 해물을 모두 섭취하지 않는 ‘비건’이 되었다. 솔직히 채식한 뒤로 위염이 사라지진 않았다. 아무렴 육식을 즐기던 때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다. 그래도 엄청난 차도를 보이진 않는다. 이제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의 원인이 류마티스 약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채식이 비교적 건강할 수는 있지만, 나는 정크 푸드를 사랑하는 비건이라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제일 좋아하는 비건 푸드는 파파존스 그린잇 비건 피자와 제로 펩시이다. 이름만 들어도 불건강하지 않나? 산채 나물 비빔밥이나 곰치 장아찌 같은 것들을 매일 해 먹을 기력도 재력도 없다. 이렇게 말했지만 요즘 좀 건강히 먹으려고 다시 노력 중이다. 일을 때려치우고 쉬는 동안 건강을 회복하려 보약을 지었다. 적어도 보약 먹는 동안은 밀가루도 끊고 탄산음료도 끊으려 한다. 그렇다고 진짜 산채 나물을 무치진 않는다. 그냥 샐러드를 사 먹는다. 아, 밀가루를 끊으려니까 대체육을 거의 못 먹게 되어 좀 슬프다. 콩고기에 밀가루가 그렇게 많이 함유되는지 몰랐다.
린: 이게, 완벽주의적 성향이 더해졌다. 기왕 쓰레기 줄이는 김에 제로웨이스트 실천하면 환경도 좋고 나도 좋을 것 같아 그냥 제로웨이스트하고 있다. 책도 구매하기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미세 플라스틱이 나오는 수세미 대신 천연 수세미를 잘라 사용하고, 직장에서 홀로 다회용기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뭐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이다 보니 저절로 제로웨이스트 실천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리고 물건도 그냥 안 산다. 어차피 버는 돈도 적다. 내 직업군은 연봉이 높지 않다. 뭐 2030 청년들이 그러하듯 나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처지다. 중소기업청년 전세 대출이 아니면 독립도 못하는 처지인데, 뭘 사서 지구한테 미안해지기보다, 그냥 안 사고 통장도 맘도 편한 게 좋다. 그리고 난 오래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도 그만 좀 버렸으면 좋겠다.
원: 빈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독서를 좋아하는데 패스트 패션에 대한 책을 읽었고, 그게 얼마나 인류에게 해가 되는지 배웠다. 새 옷을 염색하기 위해 사용하는 염료가 바다를 염색할 정도이다. 아마 구글에 검색하면 나올 거다. 유행이 지났다고 버려지는 옷들의 1할만이 구제 옷이나 업사이클링, 진짜 기부로 새 삶을 얻고 나머지는 그냥 지구에 쌓인다. 그 이후로는 그냥 옷을 사는 빈도도 줄었다. 꼭 사야 한다면 빈티지 의류를 구매하지만 새 옷을 사지는 않는다. 성장기도 끝나서 옷을 살 구실도 남지 않았다. 옷이 생각보다 잘 해지지도 않는다. 6년 전 스위스에서 산 구제 청치마는 아직도 새 옷 같다.
Q: 되게 별 것 아닌 일상처럼 말하네요. 뭐 어려움 같은 건 없나요?
해당 질문에 대한 답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유난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원: 하긴 유독 한국에서 채식하기가 어렵다. 동북아를 제외한 외국의 많은 식당에 비건 옵션이 있고, 사람을 초대할 때도 당연한 듯이 ‘비건이야? 아님 알러지 있는 음식은 없어?’라고 묻는다. 내가 비건은 아니지만, 비건 친구들과 놀러 갈 때 자주 어려움을 느낀다.
빈: 그래도 내 또래 친구들은 내가 그들의 취향을 존중하듯, 나의 비건도 존중해 준다. 다만 이제, 잘 모르는 사람들, 직장 동료라든지 아님 조금 나이가 있는 분들, 같은 또래더라도 남자인 친구들은 날 선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고기 안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 ‘그렇게 따지면 식물은 왜 먹어? 식물은 안 불쌍해?’ 등의 말은 이제 식상하다. 최근 들은 신박한 비난은 ‘채식하면 건강한 애 못 낳는다.’였다. 내가 아이를 낳든지 말든지 알 바인가? 내 취향도, 생각도 존중하지 않는 정말 신선한 무례였다. 예전에는 단체 식사에서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받은 적도 많다. 그래도 요즘은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유난이다’, ‘너 때문에 다른 식당 예약해야 해서 번거롭다.’라고 말할지언정,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상하긴 하다. 난 한 번도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뭐라 한 적이 없다. 그들을 육식주의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비건일 뿐이기에 홀로 채식하는데, 왜 공격적인 반응을 하는지 모르겠다.
린: 비슷하다. 내가 배달 음식 먹으면 나오는 일회용품이 싫다고 다회용기에 도시락 싸서 다니니까 회사에서 유난이라고 단체 생활을 해친다며 화를 냈다. 도시락 싸서 옆에서 같이 먹는 게 대체 왜 단체 생활을 해치는 것인지 납득이 안 간다. 그러면서 한 소리 하더라 ‘네가 다회용기 써도, 우리가 배달 받으면 쓰레기 나오는 건 매한가지다. 뭐가 달라진다고 그러냐?’라고. 그런데 그 작은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비아냥거리는 건 어떤 설득력도 갖지 않는다. 그러는 그들이야말로 왜 내 삶의 방식에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 배달해 먹는다고 일언반구도 얹지 않았다. 염세적이지만 ENFP로서 모두와 화목하게 잘 지내고 싶어 잔소리에도 그냥 다이어트 목적도 있다고 웃어 넘겼더니, “아 그런거야? 살 빼고 싶은 거면 그렇다고 말하지!” 하면서 뭐라고 안 하더라. 제로웨이스트 목적으로 도시락을 싸면 혼나야 하는 거고, 다이어트 목적으로 도시락을 싸면 괜찮은 건 무슨 논리인가?
원: 빈과 린에 비해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며 겪는 어려움이 크진 않다. 나도 의류 폐기물과 패스트 패션 산업이 지구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귀찮다. 그렇게 말했다가 대단한 환경주의자 납셨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을 이미 몇 번 겪었다. 그래서 그냥 취향이라고, 옷 살 돈으로 미국 주식 산다고 말할 뿐이다. 그럼 모두가 끄덕인다. 다만 가끔 가족들이 “넌 회사에 그러고 가니?”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나도 거래처 만날 일 있으면 차려 입는다.
Q: 이야기가 과열되었으니, 분위기 전환하죠. 뭐 재밌는 일화 없어요?
린: 재미있는 일화는 아니지만, ‘고도로 발달한 환경운동가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라는 농담을 아냐?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
린이 보여준 사진 속에는 곰팡이 낀 것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묻자 린이 친구의 지갑이라고 한다.
린: 얘가 환경운동가는 아닌데, 추억이 있는 물건을 못 버려서 9년째 저 지갑을 들고 다닌다. 주변에서는 이 친구한테 ‘거지냐? 내가 하나 사줄게, 지갑 바꿔라.’라고 말하는데, 이 친구는 꿋꿋하게 ‘이미 정든 지갑이야. 바스러질 때까지 쓸 거야, 못 버려. 사줘도 이거 쓸 거야.’라고 말한다. 그 애에게는 그렇게 버리지 않고 쓰는 물건이 대부분이다. 최고의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그냥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눈엔 거지로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엔 그 친구야말로 훌륭한 환경주의자다.
시트콤처럼 다들 자신의 지갑을 꺼내 보여주었다. 왠지 내 지갑이 가장 새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물론 내 지갑이 푸른곰팡이 집처럼 보일 때까지 쓸 생각은 없지만, 지금 가진 지갑을 오래도록 써야겠단 다짐했다.
Q: 본인들이 환경주의자라고 생각하세요?
빈: 동물을 사랑하고 채식을 좀 한다고, 거창하게 환경주의자라는 타이틀을 붙일 순 없다.
린: 마찬가지이다. 그냥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통해 생태계가 덜 파괴되길 바랄 뿐이다.
원: 그냥 옷 좀 안 사 입는 걸로 인류의 영웅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Q: 그럼 본인들의 행동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여기세요?
원: 그럴 리가. 나비 효과를 생각해 봐라.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만들 듯, 개인의 작은 행동이 모여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실천일지언정, 어떻게 그게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나?
빈: 어쨌든 변화를 바라며 하는 일이다. 적어도 세상이 더 악화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몰라서 못하는 건 괜찮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실천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각자의 방식이 다른 거다. 내가 채식해서, 일주일에 하루라도 채식을 한다는 친구를 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것도 하나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린: 어릴 적,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랬다. 답 없다고 그냥 퍼 자지 말고 교과서라도 피라고, 그럼 뭐라도 달라진다고. 백수 시절에도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 보기보다 집 청소하고 음식이라도 만들 때 하루하루 성취감이 쌓였고, 나중에 취업 준비를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비슷하다. 뭐라도 하면 마음가짐이라도 달라진다. 그게 되게 크다.
Q: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나요?
일단 좀 먹을 시간을 달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원과, 남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별로 없다는 빈, 이하 동문이라는 린에게 식사할 시간을 제공했다. 지면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쓸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인 것 같다. 마지막은 원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장식하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조금만 불편하고, 조금만 욕심을 덜면 되거든요. 기왕 살아 있는 거, 깨끗한 세상에서 살면 좋잖아요. 생각보다 별 거 아니예요. 오늘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은 제 친구들 중에서도 작게나마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애들이 되게 많아요. 그렇게 모두가 조금씩만 양보하면 더 나은 세상이 되겠죠. 제가 할 수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을 거예요. 혜린님이 오래 살고 싶다고 했잖아요. 우리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봐요. 제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