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 청년농부 장정우,줄 낟알 세어 농사를 어찌 안다 하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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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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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3월 24일
2025-03-21 최민욱 기자

농부 장정우는 귀농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농사의 가치와 중요성을 익혔다. 고교 시절까지 농촌에서 살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없었으나, 대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군 복무 중에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던 끝에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스물셋, 홍성군 홍동면에 정착해 농부가 되었다. 현재는 아버지와 함께 논 6천 평, 밭 3천 평(약 3헥타르)의 농지를 경작한다. 농민 1인 평균 경작면적이 1.5헥타르이다. 부자는 우리가 딱 대한민국의 농민의 평균이라고 농담한다고 한다. ‘필요한 것을 우선 생산하고, 남는 부분을 판매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작게나마 자급을 실천하고 있다. 홍동에서의 일상은 세 가지 일로 나눠진다. 첫째는 농사, 둘째는 ‘공익법률지원센터 농본’ 사무국장 일, 셋째는 마을 일이다. 마을 활동 영역에서는 홍동초·홍동중·풀무고등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거나,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산림살림에너지사회적협동조합’, 홍성 녹색당 운영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쌀 자급률의 함정
농업 생산량이 줄고있다. 질소나 비료 사용량이 늘어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증가했다. 지난 20여년간 1990년대 후반 약 200만ha에 다르던 농지의 4분의 1이 증발했다. 90년대 까지만해도 40%였던 곡물 자급률이 2020년대에는 20%로 줄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쌀의 양을 단순히 쌀 생산량과 가정용 쌀 소비량만 고려하는 쌀 자급률로 논하는 것은 게으른 계산일 수 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가축의 사료용,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가공용 곡물까지 함께 다뤄야 실제 소비량과 필요량을 파악할 수 있다. 곡물 자급률은 주식으로 직접 소비하는 곡물 뿐이 아니라 사료용과 가공용을 포함해 측정하는 지표이다. 열량 자급률은 국민이 섭취하는 총 칼로리 중 얼마만큼을 국내에서 생산하느냐를 나타낸다. 이 두 지표를 살펴야 쌀 중심 통계만 볼 때 놓치기 쉬운 식량 구조가 명확해진다. 최근에는 가공용이나 산업용으로 쓰이는 쌀 수요가 예전보다 늘고, 축산업에 쓰이는 사료 곡물 의존도 역시 커졌다. 그럼에도 가정용 쌀 통계만 부각하며 충분한 곡물이 남아도는 것처럼 왜곡한다. 전체 곡물 수입량이 상당하며, 사료 자급도 낮다는 현실은 곡물자급률이 20% 안팎에 머무는 배경을 방증한다. 식량 공급의 안정을 위해서는 곡물자급률과 열량자급률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소농 중농 대농,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가
현재 농업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약 300평(천 제곱미터) 이상의 농지를 경작해야 한다. 중대형 농가의 경우 더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위 생업이 아닌 취미로 농사를 짓는 '가짜 농민들'에게도 보조금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농업인 자격조건을 상향하자는 주장은 실제 농촌 상황과 동떨어졌다. 현실적으로 산간·구릉지처럼 기계 작업이 불리한 지역은 관리가 쉽지 않다. 이런 땅에선 여전히 소규모 농민이 발품을 팔아 논둑, 밭둑, 하천 인근 자투리 땅을 일군다. 이런 소농이 줄어들면 적지 않은 땅이 휴경지로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농촌 전체 경관과 식량 생산량을 지탱하는 데 지장이 생긴다. 소농에게도 필요한 만큼 각종 지원과 기술 교육을 제공하고, 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야 마을 단위의 다양성과 생존력이 유지된다.

정부의 상상속 '쌀 쏠림' 시나리오
양곡법 개정안을 두고 ‘벼농사가 과도하게 늘어날 것’이라거나 ‘정부 재정부담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매입가가 안정적이고 영농편의성이 높은 쌀 재배로 쏠릴것이라는 예측이다. 하지만 정부의 예측과 달리 논농사가 실제로 늘어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선 논은 새로 만들기 매우 어렵다. 우선 논의 경제적 가치(거래가 기준)는 보통 밭의 1/3이다. 밭의 경우 농가주택이나 시설 등을 지을 수 있고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등 활용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은 벼농사 외 마땅히 다른 용도가 없다. 밭을 논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밭을 논으로 개발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로 타산이 맞지 않는다. 어찌 타산이 맞다고 해도 논의 경우 경작 규모 자체가 무제한으로 확대될 수 없다. 논이든 밭이든 대한민국에 농지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쌀 중심 농업은 국내 기후와 식문화가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구조
우리나라에서는 벼농사가 오랜 기간 주된 농업이었다. 물을 가두고 담수하는 환경에 맞춰 발전된 관개 시설, 기후 특성과 지형 등이 결합해 쌀 생산이 경제성 있는 농사로 자리 잡았다. 농민들이 논에 자급률이 떨어지는 밀·콩를 잘 재배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기후와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밀과 콩의 경우 수분에 취약하기 때문에 경작할 수 있는 농지가 제한적이다. 전라도와 같은 넓은 평야 지역정도라야 가능하다.
점점 여름철 이상기후로 논에 대체작물을 경작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위기로 예측불가능해진 날씨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큰 변수다. 안정적으로 식량생산을 할 수 있는 우리 기후 특성에 맞는 작물을 중심으로 자급률을 높이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쌀 소비가 감소한다는 통계 가정에서 소비한 수치만을 기준으로 한다. 간편식이나 각종 가공식품 등으로 쌀을 활용하는 수요는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기타 수요를 포함하면 전체적 필요량은 줄지 않고 오히려 소폭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쌀 중심의 생산이 국내에 뿌리내린 배경에는 단순히 전통만이 아니라 지형·기후적 이점이 크다. 따라서 “벼농사가 많아 문제”라는 지적보다, 쌀 외 곡물까지 두루 살필 수 있는 공급 체계와 농지 확보 방안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농업4법은 농민 생존을 위한 최소 요구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농어업재해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 농어업재해대책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농업4법’은 농민이 어렵게 지켜온 논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장치이다. 가격이 급락했을 때 일정 수준 보장을 해 주거나, 자연재해 피해에 실질적 보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다.
농업4법의 핵심쟁점은 양곡법이다. 쌀 값의 차액을 85%까지 지원해주는 변동 직불금이 2020년 폐지되고 자동시장격리제 제도가 시행되었다. 하지만 시장격리 요건이 충족되었음에도 정부가 의무가 아니라며 시장격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에 개정안의 핵심 골자는 “시장격리를 할 수 있다” -> “시장격리 한다”로 의무화 하는 것이 되었다. 이 외에도 식량자급률 목표를 위한 실태조사를 하는 등 효과적인 식량 자급 정책을 만들기 위한 근거가 되는 개정안이다.
재해보험 제도가 존재하지만, 보상 산정이 까다롭다. 예를 들어 2024년에 농작물 피해를 봤다면, 보험사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5년) 과거 데이터를 합산해 평균 생산량을 산정한다. 그 결과를 기준으로 2024년 실제 생산량이 얼마만큼 줄었는지를 계산해 보상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다음 해인 2025년에 또다시 피해를 입을 경우다. 이미 2024년의 낮아진 생산량이 평균치에 포함되면서 기준 자체가 낮아져,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봐도 보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3년 연속 흉년이 들면, 평균 생산량이 해마다 급격히 하향 조정되어 결국 보험이 무의미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농민이 재해를 겪을수록 보험 가입의 이점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농지를 유지할 동력마저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현실적인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농민 공동체의 주체적 삶을 위한 '읍·면 자치제'
시·군 중심 자치에서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지역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의 면 지역이 행정·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산업 폐기물 매립장, 소각장, 대규모 개발 사업 등이 농촌으로 몰리는 현상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면 단위가 지역 의사결정권을 스스로 가질 수 있다면, 농촌 주민이 직접 “어떤 시설이나 사업을 수용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외부에서 밀려오는 개발이나 기피 시설을 막기 어렵고, 농지 훼손이나 환경오염을 맞닥뜨려도 대응이 제한되는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면 단위 자치력이 필수적이다.
농지은행 운영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군 단위로만 이뤄지면, 고령농이 은퇴해 농지를 맡길 때 그 이후 과정이 지역 주민 의사와 동떨어진 채 결정될 수 있다. 마을 단위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그 땅을 이용할지 함께 논의할 권한이 있어야, 휴경지나 무분별한 용도 전환을 막고 마을에 맞는 활용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면 단위에서 권한을 갖고 농지 관리와 임대 과정을 주도할 수 있다면, 주민들이 직접 밭과 논을 지키고 적합한 인력·방식을 선택하는 자치가 가능해진다.
이런 구조가 보장되지 않으면, 시·군 차원에서 다수의 의견이 우선시되고, 인구가 적은 면 지역은 기피 시설 수용이나 농지 전환에 대한 결정권을 얻기 어렵다. 읍·면 자치제가 도입되어야 마을이 독자적으로 농지와 환경을 보전하고, 필요한 시설을 수용하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소농의 가치는 단순히 농작물의 생산성으로만 환산되지 않는다
농민에게 있어서 농사는 단순히 언젠가 은퇴할 일이 아니다. 농민에게 있어 농사는 삶이고 생활 양식이다. 정부와 도시에서 농사를 하나의 산업으로만 여기는 관점에서 벗어나야한다.
농민은 농사를 통해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물론, 농민이 살고 있는 지역의 토양과 수자원을 보전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며, 전반적인 생태계 균형을 지키는 일까지 함께 책임지는 활동을 한다. 농민이 논밭을 꼼꼼히 돌보는 과정은 곧 마을을 안전하게 가꾸고,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밑바탕이다.
그런데도 농민이 받는 사회적 대우나 경제적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 한 해 농사로 소득을 올리기가 녹록지 않고, 인프라와 인구가 도시보다 부족하다 보니 기본적인 생활 여건도 열악하다. 농민의 공익적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면 젊은 세대가 농촌에 들어오려 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로 농촌이 더 빨리 쇠퇴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식량 안보와 기후 위기 대응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서, 농민을 ‘단순 생산자’가 아닌 필수적인 공동체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전환이 필요하다. 쌀 농사를 좀비 농사라 폄하하며 농지의 규모화만 다루는 데 그치기보다, 농촌의 다양한 현실과 소농·중소농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생활과 생산 기반을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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