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농민 김현권, 7일간의 산불 현장을 기록하다
- planetdami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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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3 정리 이담인 기자
2025년 3월 22일, 경북 의성 안평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단 몇 시간 만에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을 타고 대형 산불이 되어 대한민국을 불태웠다. 의성에 거주하는 김현권은 당시 동네 뒷산에 산불이 크게 났다며 검게 피어오르는 산불 연기를 찍어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게시물을 올린 지 5시간 뒤,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산불 사진을 게시하며 기록이 시작되었다. 3월 22일부터 28일까지, 김현권은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서 산불을 끄러 다녔다. 숲 곳곳을 다니며 잔불을 정리하고, 임도가 없는 곳에 길을 내고, 방화선을 구축했다.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당시 산불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고 위험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산불을 내는 것도, 끄는 것도 사람이라며 그는 "불은 결국 사람이 끈다"고 남겼다.
농민 김현권이 기록한 7일 간의 경북 산불 현장을 재구성한다. * 본 기사에 실린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김현권에게 있습니다

1일차 2025년 3월 22일(토)

17:03 동네 뒷산에 산불이 크게 나서 조금 일찍 우사에 나왔다. 소방헬기만 분주히 오고 간다. 이 정도면 스무 대는 넘겠다. 저수지에서 물을 푸는 헬기를 한참 바라 보았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헬기가 바쁘게 물을 빨아들였다. 조그만 헬기는 바쁘기만 했지 물을 몇 바가지나 담을까 싶었다. 바람은 불고 주변은 온통 시커멓고... 재난 앞에 인간은 참 별 게 아니다.
22:13 산불이 너무 넓은 지역에 퍼져서 불길을 잡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 시각 현재 상황입니다.

2일차 2025년 3월 23일(일)

08:48 날이 밝자 연기가 자욱하고 다시 헬기 소리가 요란합니다. 군용 헬기들이 많이 왔네요. 아무쪼록 사고 없이 빨리 진화되길 바랍니다. 걱정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19:32 많은 분들이 노력하신 덕분에 불길을 많이 잡았는데 저녁이 되자 다시 불길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처음 불이 난 안평면 일대가 다시 불바다입니다. 사진 아래 하얀 불빛은 동네 후배의 우사입니다. 오늘 밤에 우사까지 불길이 내려올 듯 합니다. 무사히 잘 넘어가야 될 텐데요. 그래도 이웃이 좋습니다. 청년들이 함께 밤을 밝힐 모양입니다.
3일차 2025년 3월 24일(월)
12:13 산불이 밤이 되면 살아나고 좀처럼 꺼지지 않아 많은 이들의 애를 태운다. 옆 동네 골짜기 산불은 어젯밤 들어오는 길에 살펴볼 때도 괜찮았는데 오늘 새벽에 또 불이 번졌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단식을 중단하고, 내려 온 임미애(아내, 22대 국회의원)와 함께 갈퀴 하나 들고 따라 올라가 보았다. 불 탄 나무 아래로 곳곳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고 불씨가 살아있는 곳도 많았다. 흙을 퍼서 덮고 나무등걸에 불 붙은 곳은 갈퀴로 긁고 먼저 간 대원들이 정리한 잔불을 한번 더 마무리했다. 그렇게 정상을 지나 면사무소 직원, 소방대원, 마을 이장, 새마을 지도자 등이 불길 차단 작업을 하고 있는 곳까지 따라 올라갔다. 여기저기 불이 타고 있었다. 대원들이 불 속에 들어 가 불을 끄는 것이 아니었다. 불 밖에서 불이 번질 곳을 갈퀴로 긁어 경계선을 만들고 불을 차단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치 불을 태우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구제역도 차단 방역이었는데 산불도 차단해서 진화를 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그렇게 이중 삼중으로 잔불 정리까지 하고 지나간 곳에 다시 불이 살아나 경계선 밖으로 번지고 있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이 불 놓쳤으면 오늘 일은 모두 말짱 도루묵'이라 했다. 천만다행으로 잡고 내려왔다. 결국 불은 사람이 끄는 것이었다. 헬기가 머리 위를 날고 있어도 경계선을 만들어 불을 차단해 나가는 일은 누군가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산 아래에서 물 병 하나와 빵, 우유 하나 맛있게 받아 먹었다. 아침까지 죽을 먹던 임미애도 잘 먹었다.
16:29 의성은 오후 들어 계속 재난경보 메시지가 띠띠~ 정신없이 울립니다. 곳곳이 불입니다. 오후 3시에 낮인지 밤인지 자욱합니다. 산에 불은 예삿일이고 개울도 타고 들도 탑니다. 어젯밤에 날 세워 지킨 후배 우사는 괜찮은지 방향을 틀어 산을 넘는데 우사 바로 앞에 산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고 있었습니다. 우사 주인은 또 어디 불 끄러 갔는지 없고 혼자서 산을 올랐는데 이제 막 발화했는지 번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비렁산이라 잡풀이 많지 않아 다 껐습니다. 숨은 차고 아직 연기 나는 곳들이 있어 주저앉아 지켜보고 있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옆 산으로 또 번질 뻔 했습니다. 그래도 불 하나를 껐습니다.

4일차 2025년 3월 25일(화)

16:52 이른 아침에 주먹밥 하나 얻어 먹고 산에 올라 불 끄러 쫓아다니다가 3시가 훌쩍 넘어 내려왔네요. 잔불 정리하는 일인데 내려가면 금방 옮겨 붙을 것 같아 자리를 뜨지 못했네요. 부엽토에 불이 붙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땅이 탑니다. 헬기로 여러 번 때린 곳인데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고 살살 부는 바람에 불이 일고 맙니다. 흙을 긁어도 안 되네요. 땅 속으로 살금살금 타다 저지선을 넘는 순간 발화가 됩니다. 경계를 뚫고 새로 발화되는 불을 열 번도 더 잡았습니다만, 그 능선이라도 오늘 밤을 넘기고 불이 숙질 거란 자신이 없습니다. 어찌해야 하나요? 그 동네 마을회관에서 진수성찬을 받았습니다. 21: 20 어두워지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그렇게 많은 헬기가 동원 되고 전국의 소방차가 다 모이고 소방대원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자사자 노력했건만 온통 불바다다. 어이없고 황당하긴 이것도 계엄 못지않네. 오늘 밤도 잠은 못 들겠다.
5일차 2025년 3월 26일(수) 16:01 산불 진화 과정에 순직한 헬기 조종사를 애도하며 영면을 기원합니다. 화마에 생과 사를 달리 한 모든 분들을 슬퍼하며 많은 피해를 보신 분들에게 위로를 드립니다.
6일차 2025년 3월 27일(목) 18:02 웬일이야 소나기가 온다 20:49 어제까지 싸우던 산불은 모두 진화된 걸로 판단했다. 면 직원들도 아예 철수를 했고 상황실도 ‘종료‘로 분류했다. 마침 서울에서 양이원영 전 의원이 내려 와 산불을 끄러 가겠다 했다. 자기가 마라톤을 뛰는 체력이라고. 면장과 어제까지 함께 산불을 진화하던 선수들이 인근 면에 지원 가기로 했다. 농협 직원들까지 40명이 모였다. 현장을 갔더니 사람 인(人)자 모양의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쪽 모두 불이 타고 있었다. 우리가 높은 봉우리 쪽을 맡았다. 산은 겹겹이 이어지고 있었고 연기도 높았다. 다 끄고 내려왔다. 오후까지 바람이 세지 않았고 나중에 도착한 소방헬기들도 큰 도움을 줬다. 잔불 정리를 하고 방화선을 구축하는데 소방대원이 지나가다 보고 "이렇게 하는 걸 어디서 배웠어요?" 했다. 흐뭇했다. "일주일 동안 불 끄면서 터득한 겁니다." 바람이 불 때는 방법이 없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하지만 바람이 조용할 때도 많다. 대체로 새벽부터 정오까지 바람은 크게 일지 않는다. 산불은 끄는 것이 아니라 태우는 것이었다. 불과 싸우는 일이 아니었다. 타는 불이 어디까지 타도록 둘 것인지 경계를 결정하고 알뜰히 태워 스스로 꺼지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경계 밖은 흙이 나올 때까지 긁어 방화선을 만든다. 사실 이 일이 힘들다. 부엽토가 두껍게 덮여 있어 다 제거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이 작업을 손발이 착착 맞게 함께 하고 내려왔다. 어디에도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마음 속에 성취감이 가득했다. 트럭 짐칸에 올라타고 나오면서 보니 반대쪽 산 등성이는 올라갈 때와 다름없이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불은 바라본다고 꺼지지 않았다.

7일차 2025년 3월 28일(금)

08:54 어젯밤 쓰러지듯 잠이 들었는데 밤 11시 경에 전화가 왔다. 오늘 불 끈 마을 이장이 산불이 살아났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내일 다시 올라가겠냐 물었다. 그러자 했다. 어디가 터졌지? 아침에 산을 오르는데 우리 면의 면장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선 불은 잡았고 자기는 밑에 가서 지휘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면장도 참 힘들구나 생각을 했다. 이 동네 면장은 어디 가 있는 거야, 저쪽 능선에서 불 끄나? 산에 올라오니 어제 그 팀이 급한 불은 다 잡아 놓았다. 아마 새벽에 올라왔을 거다. 다행히 우리가 작업한 주불 능선에서 발화되지 않고 안쪽에서 불이 나 능선을 타고 돌아서 나오느라 불이 앞으로 번지지 않아 큰 다행이라 했다. 한시름 놓았다. 지금은 잔불 정리도 마무리 들어가고 있고 물 호스를 끌어올려 방화선 주변을 한번 더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 이 불도 잡을 것 같다. 17:16 다 태우고 다 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후에 임미애 의원과 피해 현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자주 찾던 고운사, 인근 농가들의 다 타버린 집, 축사, 농기계 등 참혹하기 그지 없습니다. 위로의 말조차 건네기 어려웠습니다.
2025년 3월 29일(토) 이번 산불을 겪으며 느낀 몇 가지를 정리합니다.
1. 우리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산불이 나면 마을 주민이 너나 없이 나서서 껐습니다. 지금은 가장 먼저 마을의 노인들을 실어내야 합니다. 행정력이 여기에 투입됩니다. 불을 끌 사람이 마을에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고령사회의 재난 대응은 어떻게 다른가? 이걸 깊이 인식하고 대응하는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2. 왜 초기 대응에 실패했는가? 산불은 3월 22일 오전 11시 반 경에 의성의 안평, 금성, 안계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했고 강풍은 25일 불었습니다. 적어도 이틀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봄에 돌개바람이 붑니다. 강풍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진단에 저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초기 대응, 위기 관리 체계의 가동을 시분 단위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적어도 의성이 아닌 인근 시군, 청송 영덕 안동에서 더 많은 고령의 사망자들이 발생한 것은 재난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인재입니다.
3. 소나무는 마녀가 아닙니다 산에서 불을 끄면서 주의 깊게 살펴 보았습니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소나무가 활활 타오르면 불이 튀는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불은 늘 튀지 않습니다. 나무는 강풍이 불어야 활활 타오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바닥을 흐르듯이 타들어 갑니다. 활엽수는 낙엽이 많아 더 빨리 번져나가기도 합니다. 소나무가 화재에 약하다는 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소나무가 원인이라는 진단은 무의미합니다. 소나무가 어제오늘 우리 산에 있었습니까? 건조하고 척박한 우리 산에 적응한 나무입니다. 대부분 누가 심은 나무도 아닙니다. 저절로 씨가 떨어져 자란 나무를 마녀로 지목한다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리하지 않은 산림은 재앙으로 다가온다는 걸 재난을 통해서라도 배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4. 임도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산에서 잠시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SNS 공간에서 어떤 주장이 넘치는지 얘기합니다. ‘임도가 바람길 노릇을 해 불을 키운다’는 주장에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합니다. 임도 없이 무슨 수로 불을 끕니까? 산에 사람이 올라가야 불을 끕니다. 잔불 정리를 모두 소방대원들이 합니다. 산은 우거져 있고 길은 없습니다. 이웃 마을에 불이 시시각각 다가오며 1차 저지선이 뚫리고 2차 저지선이 무너질 때, 산을 가로질러 임도를 냈습니다. 위치를 잡고 밤새 포크레인을 동원해 간이임도를 신설하고 새벽에 불을 잡았습니다. 임도가 있어야 사람도 올라가고 소화전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5. 헬기 지원 없이 주불을 잡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산에서 불을 끄고 있으면 계속 헬기 소리가 들립니다. 그 헬기가 우리가 끄고 있는 불로 오면 반갑고 고맙습니다. 내 머리로 물벼락이 떨어져도 좋습니다. 땀인지 물인지 옷이 다 젖어도 누구도 헬기를 탓하지 않습니다. 분명 한 명도 없을 겁니다. 헬기 없이 주불을 잡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곁불이나 잔불이지, 주불이 아닙니다. 헬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잔가지를 부러뜨리기는 합니다. 그건 사소한 일입니다. 아직도 노태우 전 대통령 때 러시아 차관 지원해 받아 온 낡은 헬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고장도 잦고 부품도 단종된 것이 많아 일 년 중 수리 및 대기인 시간이 더 깁니다. 기획재정부가 이제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6. 결국 불은 사람이 끕니다 현장에 투입된 소방인력, 특수진화대원 등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을 소중하게 인식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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