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6 이담인 기자

찰스 다윈과 석유, 1859년의 아이러니
우리는 오랫동안 환경 문제, 예컨대 산불이나 기름 유출, 태풍이라고 하면 그냥 국지적으로 벌어지는 문제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갑자기 기후변화라는 엄청난 문제가 전지구적으로 나타났다. 나는 진화학자이기에 평생 찰스 다윈을 연구하고 살았는데 참 묘한 것이 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9년이 바로 인류가 석유를 캐기 시작한 해였다는 점이다. 생물의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 출간된 해에, 생물의 다양성의 결과로 만들어진 탄소화합물(석유)을 발견해서 우리 이득을 위해 쓰게 된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작은 뱁새가 코끼리 똥을 치워야 하는 기후변화의 현실
처음에는 일부 과학자들만이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점차 전 지구적인 위협으로 자리 잡으며 기후변화라는 주제가 가짜 뉴스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과학적 데이터와 증거를 보여 줘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게 사실이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의 노력은 국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노력을 인정받아 2007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국제적으로 수많은 기후 관련 회의가 열렸는데, 그중 2009년 참석했던 코펜하겐 기후회의가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한국의 광고 천재라 불리는 이재석 씨가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만들어 주셨다. 그 포스터에는 커다란 코끼리 똥을 바라보는 작은 뱁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포스터를 본 사람들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이해했다. 똥 싼 사람이 똥을 치우지 않는, 그러니까 기후변화의 책임이 크지 않은 작은 국가들이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주요 선진국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다가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탈퇴하지 않겠다고 번복한 바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들은 국제 사회에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하지만 트럼프는 재취임과 함께 진짜로 파리협정을 탈퇴했다. 이 와중에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넘친 2도 욕조, 한계에 다다른 1.5도 욕조
IPCC는 기후변화 대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IPCC를 오랫동안 이끈 이회성 의장은 2018년 송도에서 열린 IPCC 총회에서 전 세계 170개국 대표들을 설득했고,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가 아닌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보고서가 최종적으로 승인됐다. 그의 리더십은 전 세계적인 기후 대응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후 발표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진행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5도 상승 시점이 예상보다 10년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기후 문제를 논할 때 기술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경계해 왔다. 기술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섯 번째 대멸종』의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최근 출간한 『화이트 스카이』에서 기후변화를 욕조에 비유했다. 수도꼭지를 계속 틀어 놓으면 결국 욕조가 넘치게 되는데, 지금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 상황이 바로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이미 2도라는 욕조는 가득 차 있으며, 1.5도 욕조도 거의 넘칠 지경에 이르렀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시도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제기된 다양한 기술적 해결책들, 예를 들면 대기권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리는 방식 같은 것들도 이제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생태적 전환의 시대
인류는 역사에서 두 번의 대단한 전환점을 맞이했었다. 언어적 전환(The Linguistic Turn), 문화적 전환(The Cultural Turn)이 그것이며, 최근엔 기술적 전환(Technological Turn)이라는 개념도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를 겪은 뒤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생태적 전환(Ecological Turn)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미래는 불가능하다. 지속가능성이란 단순히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건강한 환경을 물려주겠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박경리 선생은 소설 『토지』에서 “원금은 건드리지 말고 이자만 가지고 살아보면 안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환경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고, 현재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주신 것이다. 우리 세대가 싼 똥은 우리가 치우고 가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환경 문제를 우리 세대가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다가올 개헌, 헌법에 기후 문제를 명문화하자
최재천 교수는 2022년 대선 때 대한민국 헌법 개정을 통해 기후 및 생물 다양성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숙제를 받고 헌법 제1조 3항에 이런 문장을 추가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를 지닌다.’ 감히 헌법 제1조에 이런 내용을 담아야 하는 시대가 주어졌지만, 아쉽게도 헌법 개정은 처참히 실패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지난 대선 유튜브 채널에 모든 대선 후보를 초청해 기후변화 정책을 논의하려 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참여해 주셨는데 단 한 후보만이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탄핵을 앞둔 지금) 다시 한번 헌법에 기후와 생명 다양성 문제 해결을 명문화하는 것을 관철시키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우리에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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