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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정진영 | 기후활동가의 하루

 

2025-02-26 이담인 기자

강연 중인 정진영 경남기후위기 비상행동 활동가. 사진 플래닛03 DB
강연 중인 정진영 경남기후위기 비상행동 활동가. 사진 플래닛03 DB
 

석탄 발전소 노동자들과 공존을 꿈꾸는 기후 운동


2020년 삼천포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중, 문득 발전소가 나의 외가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자연이 아름다운 경남 사천의 외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물려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기에, 암울한 미래의 원인인 석탄화력발전소를 하루라도 빨리 멈추게 하는 데 전력투구했다. 그러던 중 나와 똑같이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가장이 되고자 열심히 일하는 발전소 노동자 분들을 만나게 됐다. 그분들은 정부의 탈석탄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운동이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 함께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공존하는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폭우 속 현자’의 등장, 기후위기의 경고


2022년 서울과 경기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한 남성이 침수된 차량 위에서 차분하게 상황을 살피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강남의 현자'라고 불렀다. 단 2년 만에 내가 살고 있는 김해에서 또 다른 ‘강남의 현자’가 등장했다. 무려 2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성동 고분군이 무너졌다. 우리는 더 이상 폭우 속 현자가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린피스가 발표한 ‘한반도 2030 대홍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 2030년까지 국토의 5% 이상이 물에 잠기고, 332만명이 침수 피해를 입게 된다. 시시각각 우리 삶을 위협하는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주범이 바로 석탄화력발전소였다. 석탄화력발전은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발전원 중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61기의 발전소가 있으며, 경남에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14기가 설치되어 있다. 14기 발전소 중 10기는 2031년까지 폐쇄될 예정이지만, 노동자들과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대비는 부족한 실정이다.


정의로운 전환 준비 없이 떠밀린 발전소 노동자들


2021년 정의당이 실시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지역 비정규직 고용 불안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많은 발전소 노동자들이 발전소 폐쇄 일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며 심각한 고용 불안을 호소하고 있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삼천포 석탄화력발전소의 30대 하청 노동자가 고용 불안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고, 2024년 5월 남부발전 하동 HPS에서 전국 최초로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경고 파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20년 충남의 보령화력 1,2호기가 폐쇄된 후 보령시 인구가 10만명 이하로 감소했다. 석탄 화력 500MW(메가와트) 2기가 사라진 대가는 혹독했다. 연간 세수가 41억원 줄었고, 소비 지출도 190억원 감소했다. 충남은 이에 대비해 정의로운 전환 조례를 제정하고 100억원 규모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경남은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더 큰 힘을 모아야 했고, 2020년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을 발족했다.


지역에서 전국으로, 연대로 커진 기후 운동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지난 5년간 많은 일을 했다. 경남도청 앞에서 기후 비상사태 선언을 요구하고, 멸종을 상징하는 신발을 전시하며 석탄 발전 조기 폐쇄를 촉구했다. 2022년 대가뭄으로 울진, 밀양, 합천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하동 발전소 앞에서 조기 폐쇄와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열기도 했다. 태양광 발전 확대를 위한 조례 제정 운동을 벌였고 선거 때는 기후 유권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전국적 연대에도 함께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하동 석탄 발전소 2,3호기의 LNG 전환을 통한 대송산업단지 입주를 막아내고, 대송 하동 LNG 터미널 사업도 경제성이 없음을 주장해 마침내 철회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지역에서 시작한 운동이 전국적인 연대 속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남 곳곳에는 400개가 넘는 기후위기 경고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도민들의 기후 관련 인식을 높여보자 해서 시작한 캠페인이었는데 국토교통부가 이를 시설물 훼손이라 고발했고, 검찰이 약식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정식 재판을 신청한 결과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끝내 벌금형도 거부하여 노역을 살게 됐다. 22대 총선에서는 후보들의 기후 공약을 분석해 발표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선거법상 정책 비교는 가능하지만 서열화는 금지된다는 모호한 기준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기후위기를 알리고자 하는 우리의 몸부림이었다. 


녹색전환연구소의 '탈석탄화 지역의 녹색전환 일자리 창출 방안 기초연구' 자료. 사진 포럼 자료집
녹색전환연구소의 '탈석탄화 지역의 녹색전환 일자리 창출 방안 기초연구' 자료. 사진 포럼 자료집

희망이 있기에 멈추지 않는 경남의 정의로운 전환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이 온몸을 던져 활동하는 이유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녹색전환연구소는 국가의 적극적인 녹색산업정책 틀 안에서 지역의 앵커 조직을 활용한 기초 경제 활성화 전략을 택한다면  탈석탄 충격을 능가하는 녹색 산업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고, 기후솔루션은 탈석탄 지역이 가스로 전환하는 것보다 재생에너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은 생태를 무시하고 한정된 자원을 독식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이제는 지구의 한계를 인정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는 미국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말을 전하며,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의 길에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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