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 진중현 | 기후위기 시대, 벼 육종학자로 살기
- Theodore
-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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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7 최민욱 기자

눈으로 직접 확인한 해수면 상승과 농업 위기
필리핀 국제벼연구소(IRRI)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험 이후, 한국의 서산, 화성, 해남 등 간척지에서 실험을 진행하며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관찰했다. 지난 30년간 약 10cm 상승한 해수면으로 물이 올라오고, 홍수가 증가하고, 염분이 높아지는 현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식물들의 반응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2024년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에 방문했다. 바엘리(스페인 쌀 요리) 생산지로 유명한 간척지이다. 지중해의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같은 수준의 태풍이나 홍수가 와도 피해가 더 심각해짐을 볼 수 있었다. 논은 수평적인 지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바닷물이 조금만 상승해도 재배 면적이 급격히 감소한다. 이는 주요 식량인 쌀 생산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재래종에서 찾은 '세소'의 비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벼의 본고장인 인도 오리사 지역과 방글라데시 같은 극한 환경에서 생존의 비밀을 찾았다. 벼 품종 '오라이자 사티바(Oryza sativa)'는 인도 오리사 지역에서 유래했으며, 이곳은 태풍, 염분, 고온, 건조, 영양 결핍 등 다양한 불량 환경을 가진 '살아있는 지옥'이다. 오랜 기간 이곳에서 자연적으로 살아남은 재래종 벼들을 찾아 교잡을 하고 그 후손들 중에서 침수에 강한 개체들을 선별했다. 이렇게 선별된 벼들은 2주간의 침수에도 살아남는 특성을 보였다. 이 벼들은 침수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참다가 물이 빠지면 부활하는데, 이 장면을 초저속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여주면 누가 봐도 감동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이를 본 빌게이츠가 감동하여 게이츠 파운데이션을 통해 한화로 약 2천억원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침수 내성 연구에 이어 염분 내성에도 주목해 유사한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세소'라는 염분 내성 벼를 개발했는데, 서산 간척지에서 실험한 결과 염수와 담수가 2:1 비율로 섞인 환경(염분 농도 1.2%)에서도 생존이 가능했다. 일반 벼는 모두 고사한 반면, 세소는 건강하게 자라는 놀라운 생존력을 보여 줬다. 이는 현재까지 개발된 벼 중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염분 내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아직은 맛이 좋지 않아 식용보다는 동물 사료용으로 활용 가능할 것이다. 염분이 높은 간척지에서도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인과 질소, 식량안보의 숨은 변수

스톡홀름 레질리언스 센터가 발표한 지구 환경의 주요 위험 요소 중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위기, 생물지구화학적 순환(인과 질소) 이 세 요소를 합치면 식량위기로 직결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식물에게 인과 질소는 필수적인 영양소로, 이 두 요소는 식물의 '밥'이나 다름없다. 인은 순환이 어려워 전 지구적 위기로 부상했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폴 크루첸 박사 또한 인 순환의 위기를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은 곡물의 약 80%를 수입한다. 이때 곡물에 함유된 인과 질소, 물도 함께 유입된다. 질소는 공기 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인은 그렇지 못해 순환에 문제가 생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처럼 곡물을 수입하는 선진국에서는 인이 넘쳐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반면, 곡물을 수출하는 저개발 국가에서는 인이 부족해지는 불균형 현상이 발생한다. 역설적으로 인의 효과는 단순한 영양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식물이 인을 잘 흡수하면 가뭄에 강해지는 놀라운 특성이 있다. 또한 인을 잘 흡수한 식물은 꽃이 피는 시기가 짧아져 생육 기간이 단축된다. 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한 장점인데, 밖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어들면 고온이나 기타 극단적 기후 조건에 노출되는 시간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벼는 기후변화에 더 유리한 특성을 갖게 된다.
트로피칼라이제이션, 식량 구조의 총체적 변화
한반도에서는 기후뿐 아니라 식생활과 인구 구조까지 총체적으로 열대화되는 '트로피칼라이제이션(Tropicalization)' 현상이 진행 중이다. 쌀밥과 국, 채소 중심이던 전통 식단이 변화하면서 쌀과 채소 소비량은 감소하고 고기 소비량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입 사료량도 증가하여 식량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열대 과일 주스 선호와 고기를 구워 먹는 방식 등 식습관이 열대적 요소로 변화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 변화가 아니라 식량 안보와 직결된 구조적 변화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열대 지방의 인디카 벼를 기반으로 비료 효율성과 침수 저항성을 결합한 품종을 개발했고, 해남에서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교배하여 상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서산의 실험 농장에서는 다양한 품종의 벼를 저염분, 고염분 환경에서 테스트하며 생존력이 강한 품종을 선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일본의 쌀 소동과 기후 불평등
일본의 '레이와 쌀 소동'은 고온 피해로 인한 쌀 가격 폭등 사태로, 이와 유사한 사례는 30년 전 헤이세이 시대에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냉해가 원인이었다. 이러한 기후 변동성 증가는 육종학자들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다. 품종 하나를 개발하는 데 20~30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기후에 맞춰 품종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는 단순한 생산량 감소뿐 아니라 낮은 환율, 높은 해외 식량 의존도 등의 경제적 환경에서 쌀 수급 정책과 엇박자가 생기면 불안감으로 인한 가수요와 투기를 유발한다. 이는 주로 저소득층에게 타격을 주는데, 선진국에서는 식량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상승하여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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